[에세이] 일기를 쓰다가 창작을 합니다

문보영 시인의 <일기시대>를 읽고
글 입력 2021.08.01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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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쓰는 사람과 쓰지 않는 사람이 있다.

 

나는 2년 전까지만 해도 일기를 쓰는 사람이었다. 매일매일 하루를 소유하겠다는 욕망을 펜에 담아냈다.


기록은 핸드폰 앱으로 했지만, 일기는 꼭 종이로 된 일기장에 썼다. 손이 아프도록 쓰고 또 썼다. 1박 2일로 어딘가를 가는 날엔 일기장을 꼭 가방에 챙겼다. 어깨를 혹사하지 않기 위해 다른 물건들을 뺄 때도 일기장만큼은 지켜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하루라도 일기 쓰는 것을 빼먹는 날도 있었지만, 다음날 속죄하며 어제를 더듬더듬 복원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꾸준히 일기를 썼다. 쓰기는 썼다. 매일에서 스물여덟 번으로, 그다음 열 번으로, 이제 한 번 쓸까 말까로 바뀌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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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쓰는 사람에서 쓰지 않는 사람으로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수순처럼 느껴졌다. 콕 집어서 말하자면 지키고 싶은 하루가 줄었다. 일상은 소중하고 간직하고 싶은 것이라기보단 미련 없이 흘려보내는 것이 됐다. 어쩌면 야망의 변화와도 연관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을 소유할 것처럼 굴다가 세상에 흠집 내기도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내 야망은 뭐든 될 수 있다, 에서 뭐라도 되고 싶다,로 소심해졌다.


일기장은 한동안 잠잠하다가 난데없는 새로움이 흔들어 깨울 때에만 시끄러워진다. 가끔은 일기장의 신세도 딱하다. 왜 하필 일기장으로 태어나서. 너무 비관적인가? 사실 그렇지 않다. 내가 지금부터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지금까지의 이야기와 다르다. 나는 다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쓰고 싶어졌다. 문보영 시인의 에세이 <일기시대>를 읽고 일어난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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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시대>는 문보영 시인의 일기를 엮은 책이다.


에세이로 표기돼 있지만, 사실 에세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일기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일기이면서 에세이고, 에세이면서 창작론이기도 하다. 2016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하고 그 후 1년 만에 김수영 문학상을 받은 젊은 시인 문보영. 유튜버(채널명: 어느시인 a poet’s vlog)로도 활동하고 있는 힙한 시인이다. 그가 쓴 일기를 읽으며 시인의 일상을 슬쩍 보는 것이 재밌었고, 일상에 대한 시인의 독특한 감각도 좋았다.


앞서 말했듯, 일기에 대한 이야기부터 창작론까지 다루는 책이라 쓰기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다. 문보영 시인이 시를 쓰기 시작하고 배우고 고민하고 등단하기까지. 시인이 뿌려 놓은 일기 부스러기를 따라 그 여정을 따라가 볼 수 있다. 시인의 스승, 낙엽 인간에 대한 글도 있고, 함께 글을 쓴 동아리 사람들에 대한 글도 있고, 시인의 상상의 친구 뇌이쉬르마른에 대한 글도 있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일기 반사’다. 시인은 꾸준히 ‘일기 딜리버리’를 하는데, 이것은 일정의 구독료를 내고 우편이나 메일로 문보영 시인이 손으로 쓴 일기를 받는 구독 서비스다. 대개는 일기를 받고 끝이지만, 한 독자는 ‘일기 딜리버리 반사’로 본인의 일기를 보내주기도 한다고 한다. 독자의 일기. 시인의 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결국 자신의 이야기로 바뀌어 나간 글.


시인은 답장을 보내지만, 그 답장에 대한 답장은 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저 묵묵하고 꾸준하게 글을 보낸다고. 글도 써 본 사람이 쓴다고, 결국 그 사람은 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어쩌면 그에겐 시인의 답장이 아니라 매일 글을 쓰게 할 동기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계속해서 쓰게 하는 동력이.

 

 

그녀는 오늘도 내게 편지를 보낸다. 내일도 보낼 것이다. 나는 그녀의 편지를 가끔은 안 읽는다. 왜냐고? 중요한 건 누가 읽느냐, 혹은 누가 듣느냐, 가 아니라 누군가 끊임없이 ‘쓰고 있다'는 사실이기 때문에.

 

- <일기시대> 중에서

 


시인도 매일 일기를 쓴다. 일어나면 씻고 도서관에 가서 가장 먼저 일기장을 편다고 한다. (불면증이 있는 시인은 동틀 무렵 잠자리에 들어 정오쯤 일어난다.) 차곡차곡 쌓인 일기가 시의 바탕이 된다고 한다. 어쩔 때는 일기를 쓰고 시라고 우긴다고. <일기시대>는 ‘방에서 살아남기’로 시작해 ‘방에서 탈출하기’로 끝이 난다. 시인의 방 탈출을 가능하게 한 건 일상을 단단히 뭉친 일기의 힘이 아니었을까.


다른 사람의 일상이 나로 하여금 내 일상을 돌아보게 했다. 일반적으로 쓰는 교훈적인 의미는 아니고, 그저 ‘보게’ 만들었다. 쓰기로 마음먹으면, 쓰고 싶어지면 사건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쪼개고 붙이기. 사건의 재구성. 수동적 일기 쓰기가 아니라 능동적 일기 쓰기가 가능해진다. 이제까지는 보내기 아쉬운 하루를 붙잡기 위해, 그것을 되살리고자 일기를 썼다. 일기는 기록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있었던 일을 묶어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한다.


오늘 있었던 일을 받아 적는 것이 아니라, 재밌게 편집해서 재구성한다. 일기를 쓰면서 전혀 다른 시선으로 나를 돌아볼 수 있게 됐고, 무엇보다 그 과정을 즐기게 됐다. 무조건 써야 한다는 부담은 내려놓고, 살아있다는 사실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즐기기로 했다.


나는 이제 내 일기장을 일기장이라고 부르지 않고 창작 노트라 부른다.

 

 

[임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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