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잔잔한 당신은 이 맘을 넘치게 하지 않을 거야 [음악]

자꾸만 들여다 보게 되는 계절 - 뮤지션 신온유
글 입력 2021.08.02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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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라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개념이 처음으로 잡혔던 것은 음악 시간이 아닌 국어 시간이었다. 국어 선생님은 시를 가르치시다가 이 한 문장 한 문장에 음이 붙으면 노래가 되는 거라고 했고 그 얕은 말을 무의식중에 기억하고 있었던 나는 어떤 노래를 접하든 가사부터 곱씹는 사람이 되었다.


기어코 와닿은 가사들은 시가 되었고, 기억되는 사람들은 시인이 되었다. 자꾸만 들여다 보게 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노래하는 시인이란 것은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구나 했다.


‘잔잔한 당신은 이 맘을 넘치게 하지 않을 거야. 그대로도 편히 안길 수가 있으니까.’ 우연히 밴드 <신인류>의 노래를 듣게 되었을 때를 기억한다. 포근한 목소리가 전하는 ‘잔잔한 당신’이라는 두 단어가 마음 속에 들어앉게 되었고 두 단어만으로 이 사람이 보여 주는 문장들은 모두 근사할 것이라 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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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류의 보컬이자 전곡의 작사, 작곡을 해왔던 신온유는 이 가벼운 예감을 정답으로 만들어 주었다. 신인류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문장에 음이 붙으면 노래가 된다'고 했던 선생님의 말씀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글에서는 밴드 <신인류>로 활동했고, 현재는 프로젝트 그룹 <신온유와 김강>과 음악 동아리 <작은 평화>로 활동하고 있는 뮤지션 신온유의 음악들을 소개하려 한다.

 

 

 

안식처

당신의 파도가 인도하는 곳은 나의 집, 안식처 - [우리에게 여름은 짧다]


 

 

 

잔잔한 당신은 이 맘을 넘치게 하지 않을 거야

그대로도 편히 안길 수가 있으니까

모든 게 당신 편이야 어디든 가서 쉴 수가 있어

흘러가는 곳이 내 안에 안식처야


 

[우리에게 여름은 짧다] 중 마지막 트랙인 <안식처>에서는 목소리가 마치 카세트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듯 시작한다.

 

낮은 음질의 목소리는 신인류만의 안식처로 듣는 이들을 초대한다. 축축하고도 포근한 목소리는 모든 것들이 당신 편이라 말하고, 어디든 가서 쉴 수 있다 한다. <안식처>에서의 신온유는 이 포근함 속에서라면 마음을 놓아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도록 한다.


안식처에 흠뻑 빠져들다 보면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범람하지 않을 만큼의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있다는 것을. 안식처는 거품과 함께 밀려오는 파도를 떠올리게 만들고 이 파도는 잔잔하게 나를 다독이며 어디든 함께 가 줄 것만 같다.


나와 어디든 함께 가 줄 수 있을 것 같은 파도, 나를 편히 쉴 수 있는 곳으로 인도하는 파도. 당신이라는 파도에서 안식을 취하는 순간을 꿈꾸게 만드는 것은 <안식처>로 우리를 초대하는 신인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올해 6월까지 ‘랏도의 밴드뮤직’에서 라디오 <신온유의 심야식당>을 진행했던 신온유는 ‘작년에는 여름이 마치 푸른색 같았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신인류의 첫 정규 앨범 [우리에게 여름은 짧다]에 수록된 곡들을 듣고 있으면 유난히 쾌청한 파랑이 떠오르는 이유는 신온유가 여름에게 느낀 것들을 있는 그대로 투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신인류는 우리에게 군더더기 없는 여름이 되어 준다.

 

 

 

허밍

언젠가 텅 빌, 이 밤을 채우는 선언처럼 - [허밍]


 

 

 

내가 아는 말을 다 쓸 수 있을 때

나 그대에게 가장 가벼운 말을 해요

다른 건 아마 기억하진 못해도

오랜 숨 섞인 대화는 멈출 수가 없어


그냥 하는 말을 너의 의미로 가득하게

아무런 음 하나 대고 온종일 흥얼거려요

언젠가 텅 빌 이 밤을 채우는 선언처럼

얼어붙은 입김에 우연을 담을게

  

 

어떤 순간에는 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 많아 입을 다물게 된다. 부여한 의미가 크고 깊을수록 자꾸만 작아지고 얕아지는 스스로를 경험하는 것은 그리 놀랍지도 않은 일이었다. 아는 말을 다 쓸 수 있을 때, 그 모든 말을 또박또박 소리 내어 읽어 버리는 것은 내가 모르는 먼 세계에서나 가능할 것만 같다.


그러나 먼 세계가 아닌 이 세계에 사는 우리들은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가벼운 말을 전한다는 것은 단 한 번도 가볍기만 했던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가볍고 단순한 허밍을 하는 우리들이 그 자리에 존재하기까지는 두터운 순간들을 여럿 지나왔을 거란 사실을.


이 사실들은 단순한 흥얼거림 속엔 확장성이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신인류의 허밍을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이유다. 허밍에서의 신인류는 아무 말 하고 있지 않아도, 가벼운 흥얼거림만으로도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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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싱글 앨범 <너의 한마디>로 데뷔한 신인류의 활동은 남과 여 OST로 참여한 발매를 끝으로 2020년 6월 막을 내렸다. 짧고도 긴 약 2년이라는 시간 동안 활동하며 신인류는 많은 이들에게 넓고 포근한 곁을 내어 주었다.
 

'단순한 흥얼거림이 점점 커져 노래가 되어 누군가에게는 깊은 의미로 다가간다.' 신인류의 활동이 막을 내린 시점에서 <허밍>이 담고 있는 이 의미는 더 크게 와닿는다. 보컬 신온유, 기타 이지훈, 베이스 문정환, 드럼 이예찬, 키보드 하형언.

 

이들의 단순한 흥얼거림은 노래가 되었고, 이 노래는 신인류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깊은 의미가 되어 언제까지나 살아 숨쉴 것이다.

 

 

 

<신온유와 김강>, 사계절 캐롤 프로젝트


 

 

 

캐롤은 겨우내 사람들을 열심히 설득한다. 설레라고, 설레라고. 그러면 우리는 마지못하는 척 넘어가고 그 계절의 낭만을 누린다. 계절은 넷인데 캐롤은 하나다. 계절의 설렘은 각각 다르게 존재하니까, 나머지 계절에도 노래하려 앨범을 만들게 되었다.

 

허밍버드 앨범 소개 中


 

신인류의 활동이 막을 내린 이후에도 신온유는 활발히 새로운 활동들을 이어가며 자신의 음악 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우리는 네 개의 계절을 지나오지만 주로 겨울의 캐롤만을 기다리고, 또 노래한다.


이에 대한 아쉬움을 계기로 결성된 프로젝트 그룹이 바로 <신온유와 김강>이다. 대학 시절부터 인연을 이어온 이들은 지난 겨울, 유튜브 활동을 시작으로 사시사철 캐롤을 노래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활동하고 있다. '계절의 설렘은 각각 다르게 존재한다'고 말하는 이들의 사계절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고요한 나뭇잎 불규칙적인 리듬

스며든 사랑을 노래하네

익숙한 멜로디 결국 내가 닿을 종착지에 나를 데려다주오

 

 

<허밍버드>는 신온유와 김강이 지난 5월 발매한 봄 캐롤이다. 차가운 공기가 서서히 걷히면 마침내 도래하는 봄은 셀 수 없이 많은 갈래로 읽힐 수 있지만 이들은 사랑을 가장 먼저 읽었다. 이 곡의 제목인 허밍버드는 사랑을 전달하는 새를 의미하고, 또 사랑이 널리 퍼져 식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넣고 있기 때문이다.


허밍버드를 듣고 있으면 노오란 꽃가루가 퍼지는 따뜻한 봄이 떠오른다. 화자는 이 산란한 봄 속에서 ‘결국 내가 닿을 종착지에 나를 데려다 달라’고 말한다. 그 종착지가 어디인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사랑을 노래하는 새, 허밍버드는 더 따뜻하고 깊은 계절 속으로 우리를 인도해 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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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대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쏟아내는 사람들에게는 어디에든 내놓을 수 있는 '무기' 같은 이야기가 있기 마련이다.
 
푸른 여름으로 기억되는 <신인류> 활동을 시작으로 현재에는 <신온유와 김강>을 통해 사계절을 노래하는 신온유의 무기는 ‘계절’인 것이 아닐까. 근사한 문장으로 인해 자꾸만 찾아 듣게 되었던 노래 속에는 늘 깊은 의미를 품은 계절이 기다리고 있었다.

 

신온유 그리고 김강이 <허밍버드>를 통해 보여 주었던 봄의 단면을 지나 어느덧 한여름이다. 이번 달인 8월, 신온유와 김강은 여름 캐롤의 발매를 앞두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알렸다. 쾌청하고 군더더기 없다가도 우리를 한없이 가라앉게 만드는 이 계절 속에서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만나게 될까.

 

캐롤을 기대하는 잔잔한 마음으로, 또 다시 가슴 뛰는 여름이다.

 

 

이미지 출처: @oonnyyuu

@ratbanmu

@seoswim

 

 

[박이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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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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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IRO
    • 안녕하세요. 에디터 백나경입니다.

      작년에 지인의 카톡 프로필 뮤직을 통해 신인류의 '너의 한마디'를 들은 후 몇 주동안 그 노래만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니 반갑네요. '너의 한마디'라는 곡이 좋았지 신인류라는 밴드가 좋았던 것은 아니기에 딱히 정보를 찾아보지는 않았는데 이 글 덕분에 신인류라는 밴드가 2020년에 해체했으며 보컬의 이름이 신온유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소개해주신 곡들을 듣다 보니 제가 '너의 한마디'를 좋아한 이유는 보컬 신온유 님의 목소리를 좋아했기 때문인 것 같군요.

      설명해주신 것처럼 신온유님의 노래는 조금 남다른 감성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아요. 노래에 목적이 있다고 할까요. 자기 이야기를 하려는 느낌도 아니고, 한 천재가 영감이 떠올라서 휘갈긴 느낌도 아닙니다. 다만 다른 사람을 편하게 해 주어야지, 하는 의지가 깃들어 있는 느낌이에요.

      특히 '사람들이 사계절에서 모두 낭만을 찾을 수 있도록, 4개의 캐롤을 만들겠다'고 말씀하신 부분에서 그것을 확신했습니다. '쉴 수 있는 순간'을 정해 두고 그것만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일상 자체를 쉬는 순간으로 만들어 주는 그런 느낌이랄까요. 휴가를 쓰고 떠난 바다와 산에서가 아닌 사무실에서도 신온유의 캐롤을 들으면 휴가를 떠날 수 있을 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 (그래서인지 곡들이 모두 비슷비슷한 것 같기도 하네요.)

      저는 밴드에게 주로 J-Pop스러운 화려하고 중독적인 기타 리프를 기대하기 때문에 즐겨 듣는 열성 팬이 되지는 않을 듯하지만, 가끔씩 '너의 한마디'를 틀어 두고 신온유만의 고유한 감성을 찾게 됩니다. 이번에 여름 캐롤이 발매되면 한 번 들어봐야겠네요. 덕분에 멋진 아티스트를 알게 되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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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뽀로예
    • 안녕하세요. 컬쳐리스트 신지예입니다.

      저는 지독한 K-POP 팬인지라, 음악을 들을 때는 주로 차트 HOT 100에 있는 노래를 듣거나, 2010년대 가요계를 휩쓸었던 (예전) 인기곡을 듣는 편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빈님의 글을 계기로 아주 신선한 곡들을 3곡이나 들었습니다. 좋아하는 노래를 듣더라도 갑자기 수틀리면 바로 꺼버리는 제가, 이번 문화 초대를 통해서는 3곡 전부를 끝까지 들어보았습니다. 신인류, 그리고 신온유와 김강의 음악을 듣고 있자니 '휴식'을 하는 기분이었어요. 올해 여름은 너무나도 바빠서 여행을 가지 못했는데, '허밍'의 음악을 듣고 뮤비를 보고 있으니 마치 바닷가에 놀러온 느낌이 들었어요. 부유물처럼 떠다니던 마음은 차분히 내려앉고 깊은 안정감을 느꼈습니다.

      기억하는 자는 기록을 하고, 기록하는 자는 기억한다는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이번 글을 통해 이빈님이 하마터면 전혀 알 수 없었던 멋진 아티스트를 기억했고, 기록해주셨네요. 신인류의 짧은 활동 기간을 뒤로하고, 신온유와 김강 아티스트가 보여줄 앞으로의 모습이 더욱 기대되는 오늘입니다. 음악을 들으며 한강 걷기를 참 좋아하는데 머지않아 '안식처' 또는 '허밍'을 재생하고 걷거나 달릴 제 모습이 훤히 보이네요.

      소개해주신 사계절 캐롤 프로젝트도 인상깊었습니다. '계절의 설렘은 각각 다르게 존재한다'는 구절이 특히 와닿았는데요. 매 순간에서 설렘을 찾고 싶은 사람인지라, 이번 여름이 끝나기 전에 또 어떤 설렘을 찾을 수 있을지 생각해보게 되어 산뜻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저 또한 여름 캐롤이 발매되는 것을 기대하며, 고대하겠습니다. 좋은 음악과 아티스트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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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hinso43
    • 안녕하세요 컬쳐리스트 신소연입니다.

      문장에 음이 붙으면 노래가 된다는 말이 푹 와 닿네요. 그 한 문장에 가사부터 곱씹는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참 따뜻해요. 어떤 문장은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남아있곤 하잖아요.

      저는 가사보다는 멜로디에 더 집중하며 듣는 사람이거든요. 수백 번 들은 노래도 잘 따라 부르지 못한 경우가 허다할 정도로요. 그런데 에디터님의 문장을 따라 음악을 들으니 가사가 더 집중하며 들을 수 있었어요.

      오래 전엔 음악을 정말 열심히 찾아 들었어요.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신보가 나오면 꼭 찾아듣고 남들은 잘 모르는 보석같은 아티스트를 발견하면 괜히 자부심을 느끼기도 하고요. 스트리밍 대신 항상 곡을 소장하고 앨범도 사모았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듣던 음악만 듣거나 적막을 채우기 위한 용도로 음악을 틀어놔요. 그래서 이렇게 집중하며 음악을 듣는 게 정말 오랜만이라, 또 옛날에 열심히 음악을 찾아듣던 시절이 떠올라 이 글이 참 반가웠어요.

      여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첫 곡 안식처를 자주 듣게 될 것 같아요. 악기들이 만들어내는 선율에서 반짝이며 부서지는 파도를 떠올리고, '편히 안길 수 있는' 잔잔한 파도를 안식처 삼아 곧 발매될 여름 캐롤을 기다려야겠어요. 다가올 계절의 캐롤들도 기대가 됩니다. 좋은 아티스트 소개해주셔서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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