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는 용서할래요 같은 도망자니까 [영화]

영화 <해피투게더>(1997)와 <부에노스 아이레스 제로 디그리>(2000)
글 입력 2021.07.19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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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하거나 쫓기어 달아남. 사전에 검색해 보면 나오는 ‘도망’의 정의다. 초등학생 때 친구들과 했던 경찰과 도둑 놀이에서 도둑 역할을 맡게 되면 나는 달아나야 한다는 사실로 인해 필요 이상으로 마음을 졸였다.


앞이 아닌 뒤를 습관적으로 돌아보며 도망이라는 단어를 온몸으로 경험했고 당시 기분은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땡볕에서 땀 뻘뻘 흘리며 도망쳤던 그 중간 놀이 시간도 녹록지 않았지만 지금에 와서 나를 곤란하게 만드는 것은 식은땀조차 나지 않는 도망들이다.


물리적으로 팔을 젓지 않아도 되고 종아리에 순간적으로 힘을 넣지 않아도 되는 그런 도망들. 넓은 운동장 위 누가 경찰이고 누가 도둑인 건지 알 수 없는 그런 놀이들. 사람과 사람이 맺는 관계에서는 그런 것이 가능하다.


항상 붙잡기만 하는 사람, 도망가기만 하는 사람이 없는 이 놀이에서도 사람들은 마찬가지로 필요 이상으로 마음을 졸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때로 이 운동장이라는 것은 텅 비어 버리거나 꺼져 버리는 때가 오곤 한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관계를 만들어 나갈 때 누군가 도망자로 둔갑하게 되면 다른 한 명은 남겨지는 쪽이 되는 수밖에 없다. 남겨진 쪽은 드넓은 운동장에 추억의 씨앗을 심거나 운동장을 갈아 엎어 버리거나 깊은 곳으로 꺼지도록 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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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난 겨울에는 영화 <해피투게더>와 <부에노스 아이레스 제로 디그리>를 보았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제로 디그리>는 보영(장국영)과 아휘(양조위)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해피투게더>의 촬영 비하인드와 편집된 신들을 볼 수 있는 영화였는데, 이 영화는 한동안 아무 생각 하지 않고 있었던 도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들어 주었다.


보영과 아휘는 연인 관계다. 늘 같은 자리를 지키는 아휘와는 다르게 보영은 아휘를 떠나고 싶은 순간이 오면 그를 떠나 버리고 다시 돌아가고 싶을 때 그에게로 돌아간다. 보영은 도망을 반복하고 아휘는 그의 변덕과 이기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운동장이 텅 비어 버리거나 꺼지지 않게 하기 위해 애쓴다.

 

보영이 언제든 자신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아휘는 깊은 불안을 삼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보영이 다시 돌아온 뒤에도 안달복달 마음을 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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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보영을 계속해서 받아 주고 먼저 떠나지 않는 아휘를 보면서 그의 속마음이 궁금했다. 그는 어떤 마음과 어떤 생각으로 보영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일까. 부에노스아이레스 제로 디그리에서는 조금 더 솔직한 그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아휘는 자신도 보영을 떠날 수 있었지만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떠나지 않았을 뿐이라고 독백을 남긴다.


그러나 보영이 자신의 곁에 머물기를 바랐고 그것이 실현되지 않는 것으로부터 오는 불안과 고독을 경험해야 했던 아휘는 감히 보영을 먼저 떠나는 자신을 쉽게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보영은 아휘에게 떠나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못하도록 만드는 사람이었고 아휘는 그렇게 좁아지고 작아지는 본인을 경험하게 된다. 이 좁아지고 작아진 사람들이 나누는 마음은 차갑고 날카로운 편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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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죠

가장 먼저 도망가는 사람은

내가 돼야 해요


남겨지는 건

당신이어야 해요 


당신 베게를 베고 생각해요 


나는 용서할래요

같은 도망자니까

 

- 김사월, <도망자> 

 

 

도망에 몰두하던 중 만난 이 노랫말은 보영과 아휘의 마음을 잘 설명해 주고 있었다. 도망자에서는 남겨지는 것은 당신이어야 한다고 외친다. 뻔뻔하게 이기심을 고백하는 노랫말은 보영의 행동과 닮아 있어 눈길이 갔다. 그러나 곧 노랫말은 같은 도망자라는 이유로 자신을 두고 간 이를 쉽게 용서하는 모습을 보인다.

 

마지막까지도 내가 남겨진 것에 대한 후회를 남기지만 도망가는 사람의 뒷모습을 이해할 수밖에 없는 그 마음이 솔직하게 드러나고 있었고, 이 부분은 아휘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남겨진 처지에서도 보영을 미워하지 못하고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 안아 줄 수밖에 없었던 아휘의 마음이 바로 이런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보영을 이해할 수 있었던 아휘도 언제까지나 그를 안아 줄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같은 도망자라는 사실로 이해할 수 있었지만 같은 도망자이기 때문에 아휘는 보영을 떠난다.

 

이 영화가 남기는 것은 관계에 대한 해결되지 않을 질문들이다. 남겨지는 것이 죽도록 싫은 이 놀이에서 우리는 몇 번을 이기고 몇 번을 졌을까. 얼마나 용서하고 얼마나 용서받았을까. 언급한 것처럼 영영 해결되지 않을 질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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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해피투게더와 부에노스 아이레스 제로 디그리 두 작품의 관계성은 보영과 아휘가 보여 주는 행동들과 닮아 있다. 해피투게더가 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작품이라면 부에노스 아이레스 제로 디그리는 전하지 못한 진심의 응축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 둘은 전자에서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해 언성을 높이거나 상처를 주는 말들을 반복했다면 후자에서는 날 서 있지 않은 진심들을 독백으로 보여 준다. 서로가 없는 곳에서 부록마냥 자신의 영글지 않은 마음들을 이어 붙이는 것이다.

 

보영과 아휘를 떼어 놓을 수 없었던 것처럼 이 두 영화 역시도 떼어 놓을 수 없는 한 쌍이다. 기회가 된다면 두 작품을 함께 감상하는 것을 추천한다.

 

 

[박이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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