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망각의 행복 : 이터널 선샤인 [영화]

카페에서 영화 마시기, 두 번째 잔.
글 입력 2021.07.18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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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깨고 싶지 않은 꿈'을 꾸어 본 적 있는가? 사실 이 질문은 꽤 어려운 조건을 담고 있다. '꿈을 꾸었다'는 사실과 그 꿈의 '내용'을, 꿈이 깨고 난 후에도 기억하고 있어야만 응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필자의 경우에는 그러한 경험이 없다. 정확히는, 그런 꿈을 꾼 적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하지만 필자 주변에는 그러한 꿈을 하나씩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한다. "그런 적이 있었어. 그런데 아무리 기억하려고 해도, 일상의 소음들 사이에 묻혀 구체적인 기억들은 사라지더라."

 

이것은 굉장히 기이한 일이다. 아니 꿈이 다 거기서 거기지 무엇이 기이하냐, 고 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자. 필자는 '깨고 싶지 않은 꿈'에 대한 기억은 없어도, 꿈을 꾸어 본 경험 자체는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꿈'이라는 것을 살면서 한 번쯤은 꾸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가령 어렸을 적에 좋아하는 사람이 꿈에 나왔던 기억이라든가... 무서운 꿈을 꾸어서 엄마에게 달려갔던 기억이라든가... 그런데 잠깐, 그 꿈의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이 나는가? 꿈이니까 당연히 기억이 안 나지! 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질문을 바꾸어 보겠다. 그렇게 울며 불며 엄마를 찾을 정도로 무서운 꿈이었는데, 어째서 그 '꿈'은 당신의 트라우마로 남지 않았는가?

 

우리는 수많은 '트라우마' 혹은 'ptsd'의 존재를 주장하면서 살아간다. 어렸을 적 물에 10초 정도 잠겨 있었던 경험 때문에 평생 물 공포증을 겪기도, 북적이는 마트에서 부모와 5분 남짓 떨어져 있었던 경험 때문에 평생을 불안정 애착 속에 살아가기도 한다. 여기서 필자는 이상함을 느낀다. 이러한 것들 ― 물에 빠지고, 낭떠러지에서 떨어지고, 부모를 잃어버리고 ― 은 꿈 속에서는 매우 흔한 것인데, 우리는 어째서 "꿈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겼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일까?

 

 

 

"당신의 기억을 지워드립니다."


 

*경고!! 하단 내용에는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타임루프물의 고전과도 같은 영화다. 여러 가지 복선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으며 2005년치고는 매우 야심찬 CG효과 투입을 보여준다. 너드미(nerd美) 넘치고 신중한 남자 주인공 조엘과 충동적이고 엉뚱발랄한 여자 주인공 클레멘타인의 사랑 이야기인데, 이 사랑 이야기가 연출되는 방식이 매우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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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조엘이 갑자기 회사를 가다 말고 충동적으로 몬탁행 열차를 잡아 타면서 시작된다. 그는 기차 플랫폼에서 파란 머리의 여자 클레멘타인을 마주치게 되는데, 클레멘타인은 초면인 것을 고려하면 매우 놀라울 정도로 그에게 과감히 들이대는(?) 모습을 보여준다. 조엘은 그런 클레멘타인을 밀어내지 않고 두 사람은 급속도로 친밀해져 연인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여느 커플이 그렇듯 권태기가 찾아온 조엘-클레멘타인 커플은 한바탕 말다툼을 벌이는데, 갈등을 풀고자 클레멘타인이 좋아할 만한 목걸이를 들고 그녀의 직장에 찾아간 조엘은 당황스러운 광경을 마주한다. 클레멘타인이 자신을 전혀 모르는 듯한 반응으로 일관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다른 어린 남자와 입맞춤을 하는 것까지 목격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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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은 이게 무슨 상황이냐며 괴로워하던 도중 친구 부부를 통해 클레멘타인이 변한 것은 바로 '기억 삭제'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클레멘타인이 충동적으로 자신을 지워 버렸다는 것을 듣고 열받은 그는 "야, 나두 너 없이 살 수 있어!"를 외치며 기억 삭제 회사에 냅다 찾아가 자신의 기억을 지우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조엘의 기억 삭제 역시 속전속결로 진행된다.

 

 


'망각'의 행복?


 

영화에서 '기억 삭제'는 매우 기괴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몇 명의 기술자가 고객의 방에 상주하고, 고객이 밤에 잠이 든 틈을 타 미리 기록해 두었던 서사를 바탕으로 상대에 대한 기억들을 하나씩 떠올리게 한 후 그것을 지워 나가는 식이다. 이튿날 고객이 잠에서 깨면 상대와의 기억은 하룻밤의 '꿈'이 되어 휘발돼버린다. 이것은 꿈(=상대와의 기억)이 아무리 강렬한 사건이었더라도 한 번 잠에서 깬 이상(=기억을 삭제한 이상) 우리가 꿈을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하는 현상과 매우 유사하다.


이때, 기억을 삭제하러 온 회사 여직원 중 한 명이 잠든 채 기억이 지워지고 있는 조엘의 앞에 앉아서 알렉산더 포프의 시 일부를 읊는 장면이 나온다. 다음은 그 시를 받아적은 것이다. (국문의 경우 필자가 임의로 해석한 것이다.)

 

 

How happy is the blameless vestal's lot!

결백한 수녀의 운명은 얼마나 행복한가!

The world forgetting, by the world forgot.

자신이 잊어버린, 바로 그 세상에게서 잊혀져간다.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순수한 영혼을 비추는 영원한 햇빛이여!

Each pray's accepted, and each wish resigned.

모든 기도는 받아들여지고, 모든 욕망은 물러난다.

 


알렉산더 포프의 시를 읊기 직전, 직원은 "망각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자기 실수조차 잊기 때문이라.(Blessed are forgetful, for they get the better even of their blunders.)"는 니체의 문장을 먼저 인용했다. 바로 이 점에서 필자는 위 시(詩)의 인용이 본 영화의 주제의식에 있어 매우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한다. 원작자인 알렉산더 포프도, 그리고 그의 시를 인용하고 있는 직원도 이 구절을 "망각의 행복"을 표현하기 위하여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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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영화에서, '망각'은 정말로 행복한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단적으로 포프의 시를 인용한 당사자, 여직원 메리 스베보의 행보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녀가 니체의 문장과 알렉산더 포프의 시를 인용하면서까지 '망각'을 찬양하고자 했던 이유는 바로 자신이 사랑하는 회사 대표 하워드에게 잘보이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고객들에게 '망각'을 제공하는 하워드를 치켜세우기 위해 망각이야말로 "순수한 영혼을 비추는 영원한 햇빛"이라는 극찬을 보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자신도 하워드에게 기억 제거 시술을 받았던 고객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녀는 순식간에 "망각 때문에 불행해진 영혼"이 되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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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의 역기능은 조엘-클레멘타인 커플에게서도 발견된다. 클레멘타인을 망각해가면서, 조엘은 처음에는 신나한다. "너는 곧 없어질 존재야!"를 외치며 자신의 기억 속 클레멘타인에게 조소를 날린다. 하지만 기억이 하나씩 떠오르고 삭제되는 동안 그는 수많은 행복했던 순간들과 마주하게 되고 더 나아가 자신이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잘못들까지 함께 마주하게 된다. 그는 클레멘타인에 대한 거의 모든 기억을 지워버린 후에야 그녀가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기억이었는지를 깨닫고, 현실 세계에서 기억을 삭제하고 있는 기술자들을 향해 "제발 이 기억만은 간직하게 해주세요.(please let me keep this memory.)"라고 뒤늦게 절규한다.

 

이러한 장면들을 보았을 때, 적어도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망각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시럽 추가: 우리는 지금도 꿈꾸고 있다.


 

'이 꿈이 깨면 상대를 망각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 몸부림치는 등장인물들을 실컷 보았으니, 다시 꿈 이야기로 돌아와 보도록 하자. 망각이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이라면, 우리는 어째서 꿈을 망각해야만 하는가? 그리고 어째서 꿈으로 인해 트라우마가 생긴 사례는 본 적이 없는 것일까?

 

필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인간에게 꿈은 '예방접종'이다. 현실은 (그것이 고통이든 기쁨이든) 너무나 크고 거대한 차원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인간은 항상 그 거대함에 압도되고 만다. 마치 <이터널 선샤인>의 첫 장면에서 소심한 조엘이 갑자기 회사를 째고 몬탁행 열차에 오른 것도, '패트릭'이 등장한 것도 인간 개인의 의지처럼 보이지만 실은 '예정되어 있었던 사건'인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이러한 세상의 거대함에 압도되기 전에, 우리는 예방접종을 맞을 필요가 있다. 그것이 바로 '꿈'이다. 다시 말해 꿈이란 미리 고통을 겪은 후 그것을 별 것 아닌 것처럼 잊어버림으로써, 현실에서 더 큰 고통이 발생했을 때 그 트라우마를 조금이나마 덜어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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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꿈'이라는 예방접종 ― 즉 미리 겪은 고통/기쁨 ― 들이 모여서 우리의 면역력을 형성한다고 본다면,  우리는 일종의 '확장된 꿈' 속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과거의(=꿈 속의) 자신에게 큰 상처를 주었던 조엘의 대사를 녹음 테이프로 다시 들었음에도 클레멘타인이 조엘에게 선뜻 붙잡혀 주는 것은, 그리고 꿈에서 깨어 기억을 모두 잃은 조엘이 클레멘타인의 말("몬탁에서 봐")을 기억한 듯이 몬탁으로 달려가는 것은, 현실과 꿈이 융합된 그 어딘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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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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