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너의 이름에게, 나의 이름에게 : 뮤지컬 '유진과 유진'

글 입력 2021.07.18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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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과 유진, 인물의 다름과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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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유진과 유진> 공연 사진 ㅣ 낭만바리케이트

 

 

이름이 같아 발생하는 해프닝에는 좋은 경우보다 나쁘거나 곤란한 경우가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아니, 나쁜 경우의 뉴스를 훨씬 더 많이 접한다는 말이 정확하겠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는 사건의 당사자와 동명이인이어서 까닭 모를 질타를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국가 기관이 이름이 같은 엉뚱한 사람을 송치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심지어 선거에 나선 정치인과 아이돌 그룹 멤버의 이름이 같아 후자의 생일 광고 게재를 선거 기간 이후로 미뤄야만 했다는 해프닝까지 들려오니, 이쯤 되면 동명인 상대를 만나면 반가움을 느끼기보다는 혹시 모를 해프닝을 걱정하기가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이는 이금이 작가의 장편소설 『유진과 유진』 속 유진이들의 곤란함에 공감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다시피 이 소설에는 '유진'이라는 이름의 두 인물이 나온다. "미루나무처럼 쑥쑥 자라서" "벌써 교복이 작은 듯한"(8p) '이유진'과 "크고 동그란 눈에 몸집이 작아서 인형 같던 아이"(13p) '이유진', 그래서 각각 '큰유진'과 '작은유진'이라고 임의로 구분되는 두 중학생이 바로 그들이다. 두 유진이는 같은 반에 동명이인과 배정되어 나름대로의 해프닝을 겪어가며 서로를 인식하고 의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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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유진과 유진』 카드 뉴스 ㅣ 밤티

 

 

많은 동명이인 서사가 그러하듯, 두 유진 상황에는 대비되는 지점이 많다. 친구들과 사교적으로 잘 지내는 큰유진과 혼자 다니는 작은유진, 중간고사에서 전교 213등을 한 큰유진과 전교 1등을 한 작은유진,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엄마에게 미주알고주알 털어놓을 수 있었던 큰유진과 엄마와 자신 사이에 늘 차가운 강이 흐른다고 느껴온 작은유진. 소설은 장마다 두 유진의 시점을 교차시키며 내면·성격, 가족 관계에서의 차이점 등을 펼쳐 보이는데, 초반 서사를 이끄는 가장 주된 차이점은 큰유진은 유치원 동창인 작은유진을 기억하고 있지만, 작은유진은 큰유진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동명이인 설정과 함께 기억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소설이 나아가는 곳은 바로 상처에 대한 이야기다. 유치원 원장이 두 유진이를 비롯한 유치원 아이들에게 가했던 아동 성폭력은 두 주인공이 공유하고 있는 기억이자 상처였다. 하지만 큰유진은 이를 똑똑히 기억하는 반면, 작은유진은 저도 모르게 기억 저편에 묻어두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같은 사건을 겪었던 두 유진이에게 어른들이 어떤 반응을 해 주었는지에 따라 차이점이 생겨났다는 점이다. 큰유진의 엄마는 딸에게 "사랑한다.""네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해 주며 아이의 상처를 보듬어 주었고, 작은유진의 엄마는 "넌 아무 일도 없었다." "앞으로 다시는 그 얘기 꺼내지 마."라며 다그쳤다. 어른들로 인해 상처를 다른 방식으로 안고 살아온 두 아이의 이야기, 『유진과 유진』 이 만드는 두 유진의 궁극의 차이점은 바로 여기서 비롯한다.

 

 

이 아이는 또 다른 나인 것만 같다.

 

- 소설 『유진과 유진』, 밤티, 2020, 248p

 

 

하지만 큰유진에게도 상처는 아예 없던 것이 되지 못한다. 작은유진이라고 상처로부터 한 발자국 나아갈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같은 사건으로 상처를 입었다는 공통점을 가진 두 유진은 서로 상처를 나누고 공감하면서 자신 안에 있는 생채기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름만 같을 뿐, 키도, 성격도, 성적도, 엄마와의 관계도 다른 두 아이는 그때야 비로소 서로를 '또 다른 나'처럼 느끼게 된다.

 

『유진과 유진』이 만드는 '다름'이 두 인물의 상처와 이를 각자가 어떻게 안고 살아왔는지를 보여 주었다면, '같음'은 바로 두 유진의 공감과 연대를 그려내며 상처 이후의 회복 가능성을 암시하게 된다. 이 '같음'의 대목에서 소설 속 두 유진이는 상처를 안고 사는 세상의 수많은 '유진'이들로 확장되며, 독자들에게 위로와 공감의 메시지를 전한다. 소설  『유진과 유진』이 이름이 같은(그것도 어떤 세대에서는 아주 흔한 이름의), 두 중학생 여자아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뮤지컬이 된 소설, 형식의 같음과 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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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유진과 유진> 공연 사진 ㅣ 낭만바리케이트

 

 

동명이인을 통해 보여 주는 이 다름과 같음의 미학은 소설을 동명의 뮤지컬로 재탄생시킨 <유진과 유진>의 형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뮤지컬은 2인극의 형식으로 원작 소설의 무대화를 꾀했다. 두 명의 배우가 끌어가는 서사에서 소라 등 주변 인물의 비중은 줄어들었지만, 뮤지컬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를 직면하고 서로 연대하는 소설의 큰 줄기를 '같이' 따라간다.


그러면서도 뮤지컬 <유진과 유진>은 소설과는 '다른' 공연만의 특성으로 이 줄기를 표현하는 데 성공한다. 이 작품은 소설과 달리 자신들이 유치원에 다닐 무렵 엄마의 나이 정도가 된 성인 유진이들로 오프닝을 열며, 이들이 중학교 시절의 이야기를 '재연'하는 형식을 취한다. 정신과 심리요법 중 하나인 사이코드라마와 같은 형식인 것인데, 유치원생 때보다 20여 년, 중학생 때보다 10여 년은 더 지났을 나이에서 복기하는 과거에는 여전히 생채기가 있고 종종 돌아보기에 괴롭지만, 성인이 된 유진이들은 훨씬 의연하게 그 상처를 돌볼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해 있다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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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유진과 유진> 공연 사진 ㅣ 낭만바리케이트

 

 

특히 작품 말미에 보여 주는 멀티 롤 플레잉은 소설의 확장성을 공연만의 언어로 적극적으로 재해석한 사례다. 2인극이기 때문에 작품 내내 큰유진의 엄마 역할은 작은유진이, 작은유진 엄마 역할은 큰유진이 재연해 왔는데, 마지막 장면에서는 큰유진 엄마 역할을 큰유진이, 작은유진 엄마 역할을 작은유진이 맡기로 하면서, 유진이들은 때로는 든든했고 또 때로는 원망스러웠던 자신의 엄마를 재연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중학생 유진이들은 이해할 수 없었던 엄마의 강함과 나약함을 성인이 된 유진이들은 비로소 제대로 깨달을 수 있게 된다.


그때 무대 위에 서 있는 두 인물은 10여 년 전 중학생 시절 엄마와 딸이었을 수도 있고, 그때를 재연하는 성인 큰유진과 작은유진일 수도 있으며, 그것도 아니면 과거의 나에게 위로를 전하는 미래의 나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여러 갈래로 해석될 여지를 남긴다. 그래서 작품의 첫 넘버에서 지칭했던 "나를 위해 울어 주었던 또 다른 나"는 오롯이 자신만을 가리키지 않게 된다. 이 '또 다른 나'는 자신을 놓지 않고 날갯짓을 멈추지 않았던 스스로이기도 하고, 다르지만 또 같은 나의 친구 유진이기도 하며, 나를 사랑해 준 엄마이기도 하고, 또 이 세상 어딘가에서 상처를 안고 살고 있을 수많은 '유진'이가 되기도 한다. 나와 타인, 타인과 나를 지속적으로 교란시키는 이 작품은 결국 '상처를 받은 우리, 상처를 안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라는 질문에 손을 내밀고, 그 손을 잡으며 살아갈 수 있다고 답한다. 나에게 난, 너에게 난, 나에게 넌, 그렇게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고 위로가 된다.


이금이 작가의  『유진과 유진』 이 세상에 나온 지 약 2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소설 속 결말 이후 두 유진이들이 어떻게 삶을 헤쳐나갔을지 궁금해했을 독자들에게 동명의 뮤지컬 <유진과 유진>이 보여 주는 봉합적인 엔딩은 또 다른 위로의 메시지를 수놓는다. 우리의 동명이인 두 유진이는, 또 이들과 다르고 또 같은 수많은 유진이는 그렇게 상처 이후를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때로는 과거를 떠올리며 울고, 웃으면서,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이 아예 없었던 일이 되진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상처를 모아 만든 날개로 퍼덕거리면서. 소설 속 마지막 문장, 작은유진이 내다보는 유진이들의 미래가 그러하듯 말이다. "다시 또 떨어질지라도 그는 높이높이 날아오를 것이다.(288p)"

 

 


 

 

뮤지컬 <유진과 유진>

 

 

일시 : 2021년 6월 19일(토) ~ 8월 22일(일)

 

시간

평일 8시

주말 및 공휴일 3시/6시30분

(월요일 공연 없음)

 

장소 : 드림아트센터 3관

 

티켓가격

전석 5만 5천 원

 

기획/제작 : 낭만바리케이트

제작투자 : ㈜아떼오드

 

 관람연령 : 8세 이상

 

 


 

 

*원작 : 「유진과 유진」, 이금이 작 / 밤티

*크리에이티브팀 : 대본_김솔지, 작곡_안예은, 연출_이기쁨,

음악감독_양지해, 안무_이현정, 제작PD_김희래

무대/영상 디자인_고동욱, 조명디자인_정유석, 음향디자인_송선혁,

의상디자인_오현희, 소품디자인_노주연, 분장디자인_정서진, 무대감독_김은비

 

*출연 : 큰유진 / 강지혜 이아진 임찬민

작은유진 / 임찬민 김히어라 정우연

 

 


 

 

[김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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