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도서]

글 입력 2021.07.17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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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관계이든 타인과 함께 산다는 것은 강렬한 경험이다. 단순히 몸과 짐을 합치는 데에 더해 각각의 라이프스타일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결혼은 단순한 개인과 개인의 만남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의 확대로 이어진다. 하고 싶다고 바로 가능한 것도 아니고 부부가 되는 순간 여러 책임과 의무가 따라온다. 때문에 결혼해서 새 가정을 이루기보다 독신을 선호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1인 가구도 나름의 고충이 있는 법이다. 혼자 있을 때 느끼는 외로움과 경제적 부담감 등을 이겨내야 한다. 혹여 누군가와 함께 산다고 하더라도 그건 일시적인 형태로 보는 경우가 많아 하나의 가구로서 인정받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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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현실 속에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도서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이다.

 

책은 1인 가구와 2인 가구의 장점을 동시에 누리고 사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김하나, 황선우는 모두 70년생 여성이다. SNS를 통해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던 두 작가는 우연히 만나 공통된 취향을 발견해 서서히 가까워진다. 비슷한 나이에 같은 고향, 무엇보다 두 명 다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는 점에서 마음이 맞은 이들은 직접 대출을 받고 발품을 판다. 마침내 그들은 망원동의 한 아파트에 공동명의로 입주한다.

 

야심차게 시작한 동거는 첫날부터 만만하지 않다. 맥시멀리스트와 미니멀리스트가 만났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다툼이 일어났을 때 바로 대화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과 생각을 정리한 후에 말하는 사람, 빨래가 마르면 바로 개야 하는 사람과 그대로 펼쳐놓는 사람이 함께하는 여정은 순탄하지 않다. 온몸으로 서로의 다름을 느낀다.

 

동시에 이러한 차이는 각자의 부족한 점을 메우고 일상의 새로운 자극이 되기도 한다. 요리를 못하는 김하나는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못하는 황선우는 맛있는 요리를 뚝딱 만들어낸다. 동거인을 보며 황선우는 정리하는 법을 배우고, 김하나는 운동을 이어갈 자극을 얻는다. 입원했을 때 보호자가 되어줄 사람이 바로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하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신이 났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자취를 시작했었는데 처음에는 마냥 즐겁기만 했다. 단순히 혼자만의 방을 얻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나만의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 주체적인 삶을 꾸려갈 수 있다는 것이 신선했다. 세탁을 마친 옷에서 내가 고른 섬유유연제 향이 난다거나, 직접 고른 예쁜 식기와 컵이 가득한 찬장. 그리고 동네를 탐방하면서 새로운 지역에 정을 붙이는 게 즐거웠다. 누구의 의지가 아닌 내 의지로 꾸려가는 삶을 만끽했다.

 

그렇게 자취 생활을 즐기는 동안 종종 외로움을 느끼는 순간이 찾아왔다. 하루를 끝내고 들어온 빈집은 적막했고 마음은 공허했다. 감정적으로 허기진 상태였던 것 같다. 그리고 냉장고에 사놓은 재료가 좀처럼 소진되지 않거나, 혼자 밤에 있는 게 무서울 때가 생길 때 옆에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마침 방 계약 기간이 끝나올 무렵, 둘이서 살던 친구의 룸메이트가 방을 비운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틈새를 놓치지 않고 적극적인 공세를 펼친 끝에 빈자리는 내 차지가 되었다.

 

평소에도 잘 맞았던 친구였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시작한 동거였다. 설령 안 맞는 점이 있더라도 이야기하면서 맞춰나갈 자신도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사소한 부분에서도 차이가 나는 점이 조금 놀라웠다. 식기를 놓는 방식부터 시작해 청소 횟수, 밤에 자는 시간까지도. 이미 몸에 배어 자연스러워진 행동까지 맞춰야 한다는 점이 조금 어색하기도 했다.

 

 

직접 만든 요리.jpg

방에서 만든 요리

 

 

하지만 이런 것들은 금세 잊혔다. 서로 성향이나 취미도 비슷해서 주말에는 함께 영화를 보고 밖으로 놀러 다녔다. 요리도 하고 시험공부도 함께하면서 우리는 즐거운 2년을 보냈다. 지금은 졸업을 앞두고 방을 정리해서 각자 본가로 돌아갔다.

 

친구와 살았던 시간을 돌아보면 고맙다는 감정이 가장 크다. 즐거운 추억을 만든 것도 고맙지만, 특히 대학에 올라와 생겼던 감정적인 결핍을 완벽하게 메워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와 산 덕분에 내가 가진 고유한 성향을 더욱 알아갈 수 있었다. 친구에 대해서도, 그리고 스스로에 대해서도 깨달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2년이라는 시간을 같이 보내도 이렇게 많은 추억을 쌓고 여러 가지를 알아갈 수 있다. 벌써 몇 년째 같이 사는 저자들은 나보다 더 많은 것들을 느끼고 경험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나 저자들은 한국에서 흔치 않은 동성 2인 가구라는 형태를 선택해 남은 생을 살기로 결심한 사람들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만나서 한때 같이 살았던 우리와는 그 무게가 다를 것이다. 결혼만이 가정을 꾸리는 방법이 아니라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이들의 선택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외롭지만 결혼은 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 한 번쯤 고려할 대안이 되어줄 것이다.

 

다른 이와 함께 살아본 사람한테는 공감을, 살 예정인 사람들에겐 새로운 가이드라인이 되어줄 책이다. 한 번쯤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최예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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