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유언을 남기듯 쓴 시 - 시가 인생을 가르쳐 준다

나태주 시인이 전하는 시의 묵직한 울림
글 입력 2021.07.13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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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어갈 수록 책을 읽기 힘들어지는 것을 느낀다. 어쩐지 문자와 문장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고, 깊은 독서에 빠지기보다 나만의 사색에 사로잡혀 소란한 생각으로 밤잠을 설치게 된다.

 

나태주 시인의 시집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그런 일상 속에 글을 통한 평안을 얻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 줄의 글을 읽기 위해 많은 힘이 필요한 나에게,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라고 따스한 말을 건네는 풀꽃의 시인이 엮어준 시들은 빡빡하게 꽃힌 책장의 책보다는 들풀을 엮어만든 꽃팔찌처럼 느껴질 것 같았다. 그 어느때보다 종이책에서 풀내음의 여유를 느끼고 싶어 한 권의 책을 만나게 되었다.

 

 

나태주 시인 이미지.jpg

 

 

"시에서 인생을 배웁니다"

 

- 나태주 시인의 책머리 中


 

애당초 시는 시인의 삶에서 나옵니다. 그 사람의 하루하루 인생에서 나옵니다. 그러니까 시는 시를 쓴 사람의 삶을 뛰어넘을 수 없고 인생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미 오래전에 산 시인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좋은 느낌이며 생각들을 시라고 하는 아주 짧고도 명료한 문장 형태로 남겼습니다. 후세를 위한 아름다운 선물이지요. (중략)

 

인간의 일생을 네 단락으로 나누었습니다. 유소년, 청년, 장년, 노년. 그것은 유교의 사덕(四德-인의예지)과 통하고 불교의 사고(四苦-생로병사)와 통하는 인생의 단계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는 청년 시절입니다. 가장 왕성한 의욕과 가능성이 살아 있는 시절이지요. 그러므로 이 책에서는 청년-장년-노년-유년의 순으로 시들을 배열했습니다.

 

책을 읽으시며 부디 맑은 마음을 품으셨으면 좋겠고 고요한 마음을 지니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가운데 느낌이 살아나고 생각이 싱싱해질뿐더러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은 나태주 시인이 쓴 시집을 엮은 책이 아니다. 나태주 시인이 시인의 눈과 마음으로 엮은 다수의 시들을 사람의 생애와 연결지었다. 때문에 시마다 지은이가 모두 다르며, 나태주 시인의 목소리는 그 시 옆 반 쪽에서 한 쪽 분량에 걸쳐 산문의 문장으로 묵직하게 전해진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는 청년 시절'이기에 청년에 관한 시를 가장 책 앞으로 두었다는 것이 너무나 벅차고 좋았다. 시인들의 수많은 이름들 중 낯익은 이름도, 낯선 이름도 있었다. 짧게 떨어지는 행들에 머금어지는 마음의 무게는 컸다. 그 중 가장 마음에 박혔던 시는 기형도 시인의 '질투는 나의 힘'이다.

 

 

질투는 나의 힘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 기형도

 

 

가끔 시가 그림같다는 생각이 든다. 친절하게 모든 것을 설명해주어 내용의 맥락이 읽히는 삽화가 아니라, 작가가 무엇을 나타낸 것일까 한참 고민하고 씨름해야하는 그런 미술말이다. 시인이 전하고자하는 메세지를 알아채기 위해 몇 번씩 되뇌여보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행을 빤히 바라보기도 하며 그렇게 감상한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 내게 교수님께서 '우리는 시를 쓰는 사람처럼 그림을 그려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우리는 소설가가 아니라 하셨다. 정해진 플롯 사이에서 기승전결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떠오른 시상을 휘갈겨 한 편의 시로 만드는 시인이라 하셨다. 나태주 시인에게 있어 기형주 시인의 이 시 또한 그렇게 '휘갈겨진' 시였나보다. 다음은 나태주 시인이 〈질투는 나의 힘〉에 달아놓은 여담이다.


 

가끔 나는 문학 강좌 같은 데에 가서, 처음 시를 쓰고자 하는 초심자들에게 이렇게 권하기도 한다. 시를 어렵게 쓰려고 하지 마라. 잘 쓰려고 하지 마라. 다른 사람 눈치를 보지 마라. 싸우듯이 써라. 유언을 남기듯 써라. 지나고보니 조금 섬뜩한 느낌이 없지 않다. 특히 기형도 시인의 이런 시를 읽고 나니 더 그런 생각이 든다.

 

그야말로 이 시는 유언 같은 시다. 자기의 생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부정하고 의문하면서 끝내 사랑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부정을 한다.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자기에 대한 사랑이 온갖 사랑의 근본임을 뼈아프게 깨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놀라운 발언이다. 역시 시인은 앞서서 갔다.

 

 

어렵게 쓰지 않는 것, 잘 쓰려고 애쓰지 않는 것,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싸우듯이 쓰는 것.

 

나태주 시인에게 있어 시라는 것은 마치 유언 같은 것이었고, 기형도 시인의 시가 그런 시라고 했다. 이 표현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라는 시의 마지막 행의 여운이 그 어느 행보다 무게감을 가지는 이유일 것이다.

 

이 해석을 보고나니 '시를 쓰듯 그림을 그려라'하셨던 교수님의 말씀도 나태주 시인과 같은 마음이었겠다는 생각이다. 쉽게 생각하고, 못해도 괜찮다 생각하고, 남보다 나의 생각에 집중하는 것. 나태주 시인이 초심자들에게 이런 마음으로 시를 대하라고 일러주었듯, 교수님께서도 내게 그림을 그렇게 그리라 하신 것이다.

 

어쩌면 나는 그 중요한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내 희망이 내용이 질투뿐이었다는 문장이 마음에 꽃힌다. 수없이 고민하고, 신음하면서 나의 지나온 시간을 세면서 괴로워하고, 동시에 타인의 삶을 바라보며 내 것이 아닌 삶들에 괴로워했다. 그 과정에서 잊고 있던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닌 바로 나였다는 사실. 결국 그것을 깨닫고 스스로와 화해하고 감정을 승화시키는 모든 과정의 통찰이 한 편의 시로 뭉쳐져 툭하니 던져진 것이다. '유언 같은 시'라는 나태주 시인의 표현을 빌려본다.

 

누구나 삶에서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고,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고 후회하고, 자신의 마음 안에서 어리석음을 깨닫는다. 이 미련을 단순히 부정해야하는 감정으로 치부하고 매듭지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부로 겸허하게 수용하고 결국 자기애에 대한 환기로 이어지는 것은 디오니소스적 긍정을 연상시키는 높은 차원의 긍정이다. 부정을 긍정으로 여기고, 그 대상이 자신의 삶과 자아 그 자체라는 점에서 한 편의 시에 담긴 철학이 마음을 깊게 울린다.

 

뒤이어지는 김승희 시인의 〈미완성을 위한 연가〉에서는 시가 주는 삶의 울림이 보다 크게 느껴진다. 나태주 시인이 보기에 이 시에서 전하는 중요한 메세지는 '미완성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다. '인생 자체가 결핍을 극복하는 과정이고, 결핍 뒤에 오는 눈부신 축복이란 것'이다.


 

미완성을 위한 연가

 

(중략)

 

하나의 아름다움이 익어가기 위해서는

하나의 그리움이 시작되어야 하리,

하나의 긴 그리움이 시작되려는

깊은 밤 단애 위에 서서

우리는 이제 연옥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필요치가 않다고

각자 제 어둠을 향하여 조용히 헤어지고 있었네……

 

- 김승희

 

 

나태주 시인은 '그래서 미완성은 미완성이 아니고 완성이 된다. 아니다. 미완성 그대로가 완성인 것이 인생이다.'라고 이 시에 대한 여담을 마무리한다. 앞서 본 기형도 시인의 시와 김승희 시인의 시를 함께 볼 때, 우리 삶이란 결국 부족하고 모자르지만 동시에 그 때문에 아름다울 수 있는 불완의 미를 가진 것이다.

 

그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보듬으며 사랑해갈 때 비로소 삶이 충만해질 수 있다. 이것을 느끼고 나니 글을 읽는게 어렵고, 살아내는 것이 벅차던 나에게 상실되어 있던 무언가를 채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는 참 유언같은 것이다. 짧은 한 마디로 시인의 삶을 일축할 수 있고, 그로서 다른 이의 삶에 울림을 줄 수 있으니 말이다.

 

 

[지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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