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전투기와 숨, 피오나 배너의 '프라나야마 타이푼' [미술/전시]

글 입력 2021.07.04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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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con, 2021

 

 

전시장을 가득 채운 거대한 전투기가 숨을 내쉰다.

 

조금씩 들썩이는 모습이 편히 숨을 고르는 것 같기도, 사냥감을 노리며 숨을 죽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바람을 넣어 만든 가짜 형상이지만 상공을 가로질러 전쟁에 참여하는 전투기를 마주하는 것은 묘한 기분이다.

 

섬뜩하고도 흥미로운 이 `팔콘(Falcon, 2021)`은 어떤 이유로 이곳에 놓이게 되었을까.

 

 

 

잔혹하고도 아름다운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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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캇 컨템포러리에서 선보이는 이번 전시 《프라나야마 타이푼 Pranayama Typhoon》(2021.06.16-08.15)은 피오나 배너 Fiona Banner의 아시아 첫 개인전이다.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배너는 인간의 다양한 욕망과 폭력의 관계를 조명하며 조각, 드로잉, 설치, 텍스트 등의 작업을 해오고 있다.


특히 그의 작품에서 자주 보이는 오브제는 전투기다. 중력을 거스를 수 없는 인간의 불가능을 넘어 과학으로 띄운 기체, 그중 전쟁 무기로 사용되는 것. 언제나 꿈처럼 드높았던 하늘을 인간이 피로 물들인 도구다. 그러나 이름만 들어도 두려운 전투기를 배너는 단순한 무기로만 인식하지 않는다.

 

배너는 어렸을 적 아버지와 함께 산책하던 중 하늘을 조각내는 듯한 굉음을 들었다고 한다. 그 사이로 솟아 나온 것은 전투기였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괴물처럼 날아가는 전투기에 배너는 강렬한 충격을 느꼈다. 공포를 동반한 일종의 숭고가 아니었을까 싶다.

 

잔혹한 학살 도구였지만 그것은 동시에 인간이 만들어낸 매혹적인 기계였다. 그 뒤로 그는 전투기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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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ona Banner, Harrier and Jaguar (detail), 2010. All images courtesy of Tate Britain.


 

전투기가 남긴 상반된 인상은 작품 곳곳에서 드러난다. 2010년, 테이트 브리튼에 전시되었던 배너의 `Harrier and Jaguar(2010)`는 실제로 군대에서 사용되었던 두 대의 전투기를 설치해 눈길을 끌었다. (해리어와 재규어는 전시된 전투기 기종-Sea Harrier, Sepecat Jaguar-이다.)

 

해리어는 추락하는 한 마리 새처럼 거꾸로 매달린 모습으로 박제되었다. 부리와 날개 깃털을 그려 놓은 모습은 전투기가 아니라 거대한 새를 연상시킨다. 인간이 만들어 낸 새는, 형태만 놓고 보자면 경건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재규어는 복종할 대상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전투기의 배가 하늘로 드러나 있다. 거칠고 투박한 표면을 벗겨 광택을 나게 했기 때문에 관람객이 전투기를 보려 다가가 있는 동안 거울처럼 그 모습이 비친다. 그 자체로 조각품 같다.

 

그러나 지금의 세계가 평화를 가장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이 오브제가 복종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재규어를 바라보려다 스스로와 눈이 마주치는 얼굴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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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ona Banner, Harrier and Jaguar (detail), 2010. All images courtesy of Tate Britain.


 

언제나 인간이 원한다면 복종하도록 만들어진 이 살인 기계에 어렴풋한 그림자들이 중첩된다. 인간의 과학적 욕망과 비인간적인 폭력성, 그들이 저질렀을 학살과 전쟁들까지. 유려한 곡선의 이면에는 절대 지워지지 않는 폭력이 있다.

 

전투기의 이름이 동물에서 유래한다는 점도 인상적인데, 이들이 절대 자연과 공생하려 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배너는 그렇게 잔혹하고도 아름다운 괴물, 전투기로 자연과 문명 사이에 놓인 인간의 욕망 혹은 폭력에 관한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전투기와 숨


 

이번 전시의 중심에 놓인 것도 바로 전투기다. 더불어 인간의 욕망은 `숨`이라는 행위로 더욱 가깝게 가시화되었다.


전시 제목인 《프라나야마 타이푼 Pranayama Typhoon》은 인도의 명상 호흡법인 프라나야마와 재해를 불러오는 태풍-타이푼을 결합한 단어다. 타이푼은 전투기의 이름이기도 하다.

 

프라나야마는 살아있는 생명체의 근원적 에너지인 프라나를 안정시키는 호흡법이라고 한다. 문명을 일으키고 만물의 영장이라 스스로 칭호를 내린 인간이 뱉어온 모든 숨에 욕망이 묻어 있었기에 부끄럽지만, 이는 인간의 숨을 상징하는 단어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전시 서문에 따르면 "프라나야마 타이푼은 예측 불가하고 파괴적인 자연의 힘과 인간의 호흡 사이의 충돌을 암시한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여기에 덧붙여, 인간 중심의 숨이 만들어낸 태풍이 초래하는 결과를 상징하는 제목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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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con, 2021

 

 

전시장을 가로질러 엎어져 있는 `팔콘`은 꼬리 쪽에 연결된 기계로 들어오는 바람에 의해 조금씩 커졌다가 작아진다.

 

앞선 작품들-해리어, 재규어, 타이푼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 역시 팔콘 전투기를 그대로 옮긴 모습이다. 팔콘이라는 이름은 매의 형상을 닮았다는 점에서 붙여졌는데, 실제로 생김새가 비슷하다. 살상용 무기보다 자유롭게 하늘을 비행하는 새처럼 생겼다.

 

명령을 기다리며 잠들어 있는 듯한 짐승의 주위를 조심스럽게 둘러본다. 애초에 전투라는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풍선이니, 축 늘어져 있는 모양이 귀여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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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con, 2021

  

 

그러다 어느 순간 거센 숨과 함께 `팔콘`이 부풀어 오른다. 의도한 타이밍인지 알 수 없었지만, 뒤쪽으로 상영되는 영상 속에서 팔콘이 날아오르려는 순간과 맞물린다. 방금까지 숨을 죽이고 있던 모습과는 다른 완연한 전투기의 위용을 보인다.

 

장엄한 배경음악이 깔린다. 실제가 아님을 알면서도 이상한 기분이 든다.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에 아무렇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기 때문이다. 잠시 뒤, `팔콘`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사그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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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anayama Organ, 2021

 

 

아까부터 커다란 숨으로 음을 뱉어내고 있는 영상을 자세히 보기 위해 몸을 돌렸다.

 

네 개의 빈백 사이에 파묻혀 시청할 수 있는 이 영상은 `프라나야마 오르간(Pranayama Organ, 2021)`이다. 모든 것이 메말라 잔해만이 남아 있는 해안가와 대비되어 서서히 몸집을 키워가는 두 대의 전투기가 보인다. 각각 팔콘과 타이푼을 딴 형태의 의상을 작가와 행위자가 입고 있다.

 

그들은 무서운 것 하나 없이 자라나, 서로를 해치기도 보듬기도 하며 그치지 않는 춤을 춘다. 전투기들의 춤과 춤 사이에 파이프 오르간이 엄중한 성가를 노래한다. 불어넣은 숨으로 공기를 가르며 소리를 내는 파이프 오르간은 다시 한 번 `숨`의 이미지를 강조하며 새로운 신화를 완성한다. 그 사이로 거친 인간의 숨이 얽혀있다.

 

결국 `팔콘`과 `프라나야마 오르간`에 숨을 불어넣고 있는 것은 인간의 욕망이다. 자연을, 혹은 생명체를, 같은 인간을 정복하려는 야망을 숨길 생각조차 없는 것 같다. 배너가 이 프로젝트를 코로나로 영국이 봉쇄된 시기에 시작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시작된 고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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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 Review, 2021

 

 

코로나로 인간의 숨이 막히고 나다니는 발걸음이 끊기자, 빠른 속도로 자연이 부활하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들린다. 숨 쉬는 전투기라는 프로젝트에서 배너가 생각한 인간의 호흡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인간이 뱉어낸 모든 숨들이 자연과 스스로를 갉아먹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전투기는 분명히 우리가 어떤 호흡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되돌아 보게 한다. 욕망으로 약해질 줄 모르는 그 거센 숨으로, 이 순간에도 몸을 부풀리고 있는 무언가를 위해서.

 

방금 뱉은 숨은 어떤 태풍을 만들어내고 있을까.

 

 

[최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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