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세상의 모든 폴에게 띄우는 비밀편지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실벵 쇼매, 2013)
글 입력 2021.07.05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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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일종의 약국이나 실험실과 유사하다.

 

아무렇게나 내민 손에 어떤 때는 진정제가, 때론 독약이 잡히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감당하기 어려운 기억이 하나쯤은 존재할 것이다. 들여다볼 자신이 없는 그런 기억들을 마음속 깊숙한 곳에 숨겨두면 한동안은 아무 일 없는 듯이 그럭저럭 지나갈 수 있다.

 

하지만 그것들을 언제나까지 그냥 그렇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서서히 우리의 마음을 갉아먹고 자라나 마음속을 헤집고 돌아다닐 것이니까. 결국 우리는 언젠가 수면 위로 올라올 거대한 물고기와 마주해야 한다.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은 주인공 폴이 자신의 무의식을 되짚으며 기억에 관련된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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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은 실어증을 앓고 있는 33세의 남자이다. 쌍둥이 이모들의 춤 교실에서 내내 무표정하게 피아노 반주를 치는 일이 그의 일상이다.

 

어느 날, 누군가 떨어뜨린 물건의 주인을 찾아 주려다 우연히 마담 프루스트의 정원에 발을 내디딘 폴은 프루스트 부인을 만난다. 우연히 폴의 상처를 들여다보게 되는 프루스트가 그를 돕기로 결정하면서 영화는 이야기의 물꼬를 튼다.

 

 

“네 기억의 뿌연 물 속에 기억은 물고기처럼 물 속 깊숙히 숨어 있단다. 네가 낚시꾼이라면 기억들이 좋아할 만한 미끼를 던져야지.”

 

 

폴에게는 기억들이 있다. 귀퉁이가 지워지고 바래진 장면들 때문에 행복했던 순간들이 폴에게는 상처로 기억된다. 중요한 기억들은 폴에게서 사라져 버렸고, 그렇게 영영 잃어버린 채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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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는 최면 치료를 통해 폴이 기억을 바로잡는 일을 돕는다. 미끼를 던져서 추억을 낚아 올린다. 폴이 어렸을 때 자주 들었던 음악은 미끼로 사용되고, 허브차와 마들렌은 낚싯바늘 역할이다.


 
“기억은 마치 이런 거란다. 겉으로 보기엔 연못이 너무 평평하고 어두워서 안에도 고요할 것 같지. 그러나 이 안에는 저런(마담의 정원 벽에 걸려있는 무시무시한 물고기 박제) 물고기가 살고 있지. 엄마를 찾으려면 그 기억(물고기)을 수면으로 떠오르게 하는 작업이 필요하단다.”
 


프루스트의 대사이다. 겉으로 보이는 연못은 폴의 의식을 의미하고 어두운 연못 속은 폴의 무의식을 의미한다.

 

 


아파도 괜찮아.



폴이 잃어버렸던 마지막 기억은 2층에 있던 피아노가 추락하는 사고로 인해 그의 부모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 장면이다.

 

 

나쁜 추억은 행복의 홍수 아래 가라앉게 해. 네게 바라는 건 그게 다야. 수도꼭지를 트는 건 네 몫이란다.

 

 

원래 없었던 것처럼 그 부분만 싹둑, 가위로 잘라내고 싶은 기억이 누구에게나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들여다보면 더 아프고 비참할 거야’, 두려움에 잠식되어 때때로 그런 기억들을 부정하기도 할 것이다.

 

폴 또한 마찬가지였다. 마침내 기억을 되찾은 폴은 역시 깊은 슬픔과 상실감에 잠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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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폴은 상처를 천천히 극복해 나간다. 프루스트와의 치료를 통해 폴은 상처를 직면하게 되었고, 그 때문에 더 이상 도망칠 필요가 없었다. 프루스트는 상처는 시간으로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한다. 당장은 아플지언정, 천천히 더 건강해질 거라고. 다만 너의 몫은 마음 한구석에서 상처를 들여다볼 준비를 마쳐놓는 것이라고.

 

 

 

Vis ta vie(네 인생을 살아)!



프루스트는 폴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남긴 후 긴 여행을 떠난다. 뒤늦게 프루스트 부인이 암으로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을 알게 된 폴은 생전 그녀가 좋아하던 우쿨렐레를 가져와 자신이 간직한다.

 

프루스트가 마지막으로 남긴 쪽지에는 ’Vis ta vie(네 인생을 살아)!’라고 쓰여 있다.

 

남이 제시해 주는 삶에서 벗어나 자신이 선택하고, 만들어 나가는 삶을 살라는 조언이다. 프루스트 부인의 죽음은, 가장 중요한 사실을 전하고 있는 듯했다. 남의 도움을 받는다 해도 결국 상처는 스스로 치유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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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가 되는 게 네 꿈이었어?' 영화 속에서 프루스트가 폴에게 물었다. 하지만 폴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지나온 33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피아노를 쳤지만 그것은 폴의 꿈이 아니었다. 영화는 에필로그에서 명성, 전통, 형식을 버리고 우쿨렐레를 치면서 살아가는 폴의 삶을 보여준다. 더 이상 피아노를 치지 않지만 폴은 누구보다도 행복해 보인다. 영화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우리에게, 우리의 삶에 대해서 묻고 있는 것이다.

 

 
과연 당신이 주체가 되어 흘러가는 삶을 살고 있나요?
 

 

"폴 얘가 말을 하려나 봐. 아빠라고 말하려나 봐"

 

미셸(폴의 부인)이 폴을 부른다. 그러자 실어증을 앓아 영화에서 대사 한 마디 없던 우리의 폴이 천천히 뒤돌아보고 아기를 향해 ”파파“라고 속삭인다. 폴이 말하는 장면을 끝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폴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만 변화할 우리들의 이야기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부터 시작된다.

 

VIS TA VIE. 이 글을 읽게 될 세상의 모든 폴들이 자신만의 이야기로 삶을 살아가기를 기대하며 이만 글을 줄인다.

 

 

[이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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