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때때로 미숙하지만 그래서 더 솔직하고 사랑스러운 그들의 이야기, 플립 [영화]

글 입력 2021.07.02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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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립’이란 영화는 내가 중, 고등학생 때 처음 알게 된 영화였지만, 너무 좋은 영화라며 감탄하셨던 엄마에 비해 나에겐 사실 크게 와닿지는 않았던 영화였다. 그 당시의 난 하이 스쿨 뮤지컬, 말할 수 없는 비밀, 트와일라잇과 같은 판타지 로맨스 영화에 푹 빠져있었기에 그저 잔잔하고 내 또래의 이야기같이 느껴졌던 플립이 조금 지루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우연히 넷플릭스에서 이 영화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보다 보니 점차 아이에서 청소년으로 넘어가며 성장기를 겪고 있는 아이들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와 그들만의 솔직한 표현력에 나도 모르게 흠뻑 빠져들어 버리고 말았다. 어릴 적 엄마가 말씀하셨던 ‘플립’의 매력을 알아버린 것이다.
 
영화 플립은 브라이스가 줄리의 앞집으로 이사 오게 되면서 첫 만남이 시작되는데, 어쩌면 우리도 한 번쯤 겪어보았을 평범한 그 나이대 아이들의 사랑 이야기를 독백이라는 조금 독특한 전개로 관객들에게 재밌게 전달해 주었다. 하나의 사건을 가지고도 각각의 입장에서 다시금 풀어내 보여주는데, 줄리와 브라이스가 서로에게 느꼈던 시선, 생각, 관점, 감정들이 너무나 달라 그들의 독백 형식이 반복된다 해도 전혀 지루하지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미묘하고도 복잡한, 섬세하고 여린 감정들이 너무나 솔직하고 사랑스러워 나도 모르게 간질간질한 어릴 때의 추억이 떠오르다가도 때론 정곡을 찌르는 듯한 풍부한 표현력에 또 한 번 감탄하고 말았다.
 
 
 
한결같던 그들의 관계에 생겨난 작은 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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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이고 활기차며 자신이 느낀 감정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보여줄 줄 아는 줄리에 비해 브라이스는 감정 표현에 서툴고 솔직하지 못하며 남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쓴다. 그렇기에 늘 한 걸음 먼저 다가오며 아낌없이 사랑을 표현하는 줄리가 브라이스는 그저 부담스럽고 귀찮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녀를 떼어내기 위해 온갖 수작을 다 부리며 마주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만 브라이스의 예쁜 미소와 맑은 눈에 흠뻑 빠져버린 줄리는 그런 브라이스가 그저 수줍어서 피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계속해서 그에게 다가가고 따라다닌다.
 
그렇게 줄리의 외길 사랑이 언제까지고 쭉 이어질 듯싶지만, 6년이 지나 그들이 중학생이 되면서 그들의 관계에도 미묘한 변화가 시작된다.
 
그들의 관계에 틈이 생기게 된 첫 번째 계기는 ‘플라타너스 나무'로 시작된다. 줄리가 화가인 아빠의 그림을 보던 중 “풍경 전체를 봐야 해. 초원은 그 자체로 잔디와 꽃이고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햇살은 그저 빛줄기일 뿐이지만 모든 게 한데 어우러지면 마법이 된단다.”란 아빠의 말씀을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지만 플라타너스 나무에 올라갔다가 그 의미를 깨닫게 된다.

 

 

“그 이후로 거기는 내 장소가 됐다. 거기에 앉아서 몇 시간이고 세상을 바라봤다. 어떨 땐 석양이 보라와 분홍인데 어떨 땐 강렬한 주황으로 지평선의 구름에 불을 지폈다. 그렇게 석양을 보던 어느 날 부분이 모여 아름다운 전체를 이룬다는 아빠의 말씀이 떠올랐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옮겨졌다. 해 뜨는 걸 보려고 일찍 가기도 했다.”

 

 
브라이스의 연을 내려주려다 얼떨결에 나무 위로 올라갔던 줄리였지만, 끝없이 펼쳐지는 풍경을 통해 깊은 감동을 얻게 된 후론 매일을 그 풍경을 보기 위해 나무 앞을 찾아갔다. 하지만 얼마 후 새 집을 짓기 위해 나무가 잘리게 되는 상황이 찾아오자 줄리는 나무 위에서 끝까지 버텨보기도 하고, 브라이스에게 도움을 요청해보기도 하지만 결국 줄리의 울부짖음에도 나무는 무참히 잘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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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애를 써도 나무 위에서 보았던 풍경에 대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던 줄리는 모든 게 그저 허무하고 하찮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너무 괴로웠다. 너무나 소중했던 나무가 잘린 그 자리에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 그런 줄리를 유일하게 이해해 주며 존중해 준 아빠는 그녀를 위해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를 그려 선물해 주게 되는데, 그제서야 줄리는 그 나무와 나무 위에서의 경험이 진정 어떤 것이었는지 깨닫게 됐다. ‘주변을 보는 눈’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부분보다 전체가 나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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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와 브라이스의 관계에 두 번째 틈이 생기게 되는 계기는 ‘달걀 사건’으로 시작된다. 줄리가 마당에서 기른 닭들이 알을 낳자 기쁜 마음에 브라이스에게도 늘 달걀을 전해주었지만, 병균이 있을지도 모르니 다시 돌려주라는 아빠의 말에 브라이스는 이도 저도 못하다 몰래 달걀을 버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결국 줄리에게 사실을 들키게 되는 상황이 찾아오는데, 말주변이 없던 브라이스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너네 집 뒤뜰 너무 지저분하잖아. 병균이 있을지도 몰라.” 라며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줄리에게 상처 주는 말을 건네게 된다. 줄리는 그런 그가 실망스러우면서도 속상한 마음을 참을 수가 없자 그를 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의 집 뒤뜰을 차츰차츰 정돈하기 시작했다. 잡초들을 뽑고, 나뭇가지들을 정리하며 울타리들 페인트로 채색해나가며 점차 그녀의 뒤뜰은 깨끗해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줄리는 사람들을 볼 때 이 사람은 진정 부분보다 전체가 나은 사람인지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 그러면서도 브라이스에 대한 감정은 너무나 헷갈렸다.

 

"그는 정말 부분보다 전체가 나은 사람일까?

 내가 그렇게 느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의 사과는 정말 진심인가?”

 

반대로 브라이스는 속상해하는 그녀가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원래라면 더 이상 자신을 쫓아다니지 않는 이 상황이 그저 신날 뿐이지만, 이상하리만큼 그녀의 빈자리가 너무나 허전하다. 그녀의 풀이 죽은 모습도, 자신을 피하는 모습도, 자신 때문에 상처를 받은 모습도 그저 너무나 미안했다. 그런 감정을 느끼는 자기 자신이 어색하기도 하고 부정하고 싶지만 그럴수록 자신의 눈은 줄리를 향할 뿐이다.

 

결국 브라이스는 줄리에게 상처 준 자신의 못난 점을 인정하며 그녀에게 사과하려 여러 번 찾아가지만, 줄리는 그에게 쉽사리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다. 한땐 그녀의 마음속 한 부분을 커다랗게 차지했던 그이지만, 상황은 역전되며 브라이스는 그저 그녀에게서 멀어질까 조바심 날 뿐이다. 그리고 그때, 어떻게 해야 그녀의 마음을 풀어줄 수 있을까 고민을 하던 그는 생각지도 못한 전개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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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위한 플라타너스 나무를 그녀의 정돈된 뒤뜰 가운데에 심게 된 것이다. 줄리가 보는 앞에서 그녀가 너무나 사랑했던 나무를 가져와 정성스럽게 땅을 파며 나무를 심자 줄리는 그의 마음에 진정성을 느끼게 되었고, 다시 그들의 관계에도 또 다른 미묘하고도 사랑스러운 변화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영화는 마무리된다.

 

 

 

성장해가는 그들에게 다가온 작고도 커다란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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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려나간 플라타너스 나무와 달걀 사건은 줄리와 브라이스에게 작고도 커다란 변화를 안겨주었다. 줄리는 한층 더 성숙해지며 사람의 내면을, 그리고 전체를 바라보는 눈을 키우게 되었으며 무엇보다 브라이스를 향한 자신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될 정도로 단단해져갔다. 반면 브라이스는 그저 피하고만 싶었던 그녀에 대한 자연스럽고도 솔직한 감정을 점점 인정해나갔고 받아들이게 되면서 그녀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네게 된다.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며 삐걱거렸던 순간들도 분명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성장해나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주변 인물들의 역할의 컸다고 생각한다. 줄리의 집은 때때로 여유롭지 않은 형편으로 힘든 순간들이 찾아오곤 했지만 가족들 간의 관계가 굉장히 화목했고, 줄리가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그녀의 생각을 언제나 존중해 주었으며, 무엇보다 줄리를 아낌없이 사랑해 주었다. 줄리에게 가족이 주는 힘은 누구보다 따뜻하고 강했을 것이다.

 

반면 브라이스의 집은 풍족하고 여유로웠으며 그를 사랑해 주는 가족들이 있었지만, 때때로 그의 아빠는 어린 시절 포기했던 꿈으로 인해 채워지지 못한 갈증을 날 선 모습들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가족들에게 화풀이하기도 하고 다른 이들에게 선입견을 가지고 다가가기도 했다. 하지만 브라이스에겐 그가 못난 행동들을 보였을 때 잘못된 것임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때때로 단호하고도 다정한 모습들을 보여주는 할아버지와 무한히 사랑해 주는 엄마가 있기에 엇나가지 않을 수 있었다.

 

줄리와 브라이스 모두에겐 그들을 있는 그대로 아끼고 사랑해 주는 든든한 가족이 있기에 때때로 슬프고 화난 순간들이 찾아와도, 미안함과 죄책감이 몰려오는 순간들이 찾아와도 언제든 이겨낼 수 있었다.

 

 

 

솔직하고 순수한 그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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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을 생각해 본다면 줄리가 플라타너스 나무에 올라가 풍경 전체를 바라보는 장면과 브라이스가 줄리에게 미안한 마음을 플라타너스 나무를 통해 전하는 장면이었다.

 

두 장면 모두 그들의 감정선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줄리가 나무에 올라갔을 때 느낀 감정을 황홀한 듯한 표정과 함께 섬세하면서도 깊이 있게 드러내서 좋았고, 브라이스가 그녀에게 사과할 때는 그녀가 가장 기뻐할 만한 방법을 고민하고 또 고민하면서 결국 진정성 있게 전달해 주어 너무 좋았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가장 좋았던 점은 솔직하고 순수한 그들의 감정 표현이다. 점점 어른이 되어가면서 우린 감정 표현에 서툴러지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 걸까, 때때로 우리의 감정을 숨기고 억누르며 살아가기에 억울하고 분한 순간들도 있지만, 때때로 미안하다는 말이 민망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순간을 아끼며 살아가기에 비겁한 순간들도 분명 존재한다. 그래서 솔직한 이 영화가 더욱 좋았는지도 모른다.

 

갈대처럼 금세 휘둘리고 변하는 그 나이만의 미묘한 감정 표현들이 귀엽고 예쁘기도 했지만, 때때로 옳은 방향으로 성장해나가는 그들의 용감한 선택에 놀라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저 순수하고 따뜻한 그들의 감정선에 흠뻑 빠져들고 말았다. 때 묻은 내 마음이 녹아 사라지는 느낌이었던 것 같다. 서서히 그들의 상처가 아물어져가면서 해피엔딩으로 이어지는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여러분의 마음속도 함께 잠시나마 평화로워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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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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