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망상과 공상의 끝에는

글 입력 2021.07.0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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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유명한 명언처럼 꿈은 ‘명사’가 아닌, ‘동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나 역시 그 말을 믿고 꿈을 ‘동사’로 설정한 적이 있었다.

 

내 꿈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엄청난 거물급의 위인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니고, 한 개인의 세상을 변화할 수 있게 하는 영향력이 있는 사람 정도만 되고 싶었다. 돌이켜보니 이것 역시 거창한 꿈이었지만 말이다. 난 그런 자신도, 용기도, 능력도 없다.

 

“꿈이 있으신가요?”라는 물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전직 혁명가 지망생이자, 한때 매일같이 꿈을 고뇌하던 사람에게 가장 어려운 질문이다. 물음에 대답하는 즉시 “왜?”라는 2차 질문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일까.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도 누군가에게 내 장래를 말하기가 어렵다. 나는 누구보다 즉흥적인 사람이라 하루아침에 진로를 바꾸기 선수였기 때문이다. 예컨대 “너 어제는 선생님 하고 싶다며?”라는 친구의 말에 “역시 난 파일럿이 되고 싶어.”라는 말을 다음날 답할 정도였다.

 

충동적이다 못해 산만한 내게, “꿈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어떤 답을 해야 할까.

 

 

 

망상과 공상 그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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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만 나오는 내 산만함의 기원을 거슬러 가보자면, 내 최초의 꿈은 ‘해적왕’이었다.

 

한창 TV에서 해적왕이 될 거라고 외치던 만화가 나오던 시절이었다. TV 속 주인공은 해적왕이 꿈이면서 정의로워 보였다. 수많은 동료가 생기고 끝없는 바다를 건넜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들이 현상금이 걸린 범죄자였다는 걸 알았다. 내 최초의 꿈은 법 앞에서 허무하게 끝났다.

 

어린 시절의 철없음으로 내 꿈을 포장하고 싶지만, 난 여전히 헛된 꿈을 자주 꾼다. 목표든 잠 속의 꿈이든 말이다.

 

어제는 지금 모습 그대로 고등학교에 다시 입학하는 꿈을 꿨다. 성인이 된 내가 고등학교 재입학하는 과정이 너무 생생해서 두려울 정도였다. 얼마 전에는 공룡에게 쫓기는 꿈을 꿨다. 전날 공룡이 나오는 게임 광고 영상을 보고 잠들어서였을까. 꿈에서 깨고는 공룡학자가 되고 싶었다. 아는 공룡이라고는 티라노사우루스뿐이면서 나는 여전히 정신 못 차렸다.

 

 

 

사춘기는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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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다행인 건 짧다면 짧은 사회생활을 이어가면서 내가 서비스업에는 지독하게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바라던 회사에 운 좋게 근무했을 때는 사무실에 앉아 시계만 노려보았다. 업무가 수월했음에도, 지루함의 연속이었다. 최근 한 문화재단에 근무했을 때는 환멸이나 순식간에 그만두었다. 합격했던 날의 기쁨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후련한 속으로 학교 수업을 들으며 생각했다. “역시, 난 연구직이 맞아!”

 

큰 진전이라 생각한다. 내게 맞지 않는 일을 걸러냈으니까. 그러나 다시 문제가 생겼다. 나는 ‘무엇’을 연구하고 싶은 걸까?

 

지금 몸담고 있는 전공으로 박사과정까지 가고 싶지는 않았다. 매일 수많은 전공을 찾아보고 연구하고 싶은 전공과 분야를 골랐다. 연구하고 싶은 분야가 너무 많아 힘들었으나 수많은 토너먼트 전 끝에 목표를 정했다. 그러나 뿌듯함도 잠시 일주일 전, 다시 새로운 전공에 관심을 두게 되고…….

 

이젠 나도 나를 모르겠다.

 

 

 

마지막이 있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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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현재 꿈은 무엇인가. 무수한 자기혐오 끝에 도달한 결말은 의외로 간단했다. 미래에 무엇이든 하고 있으면 된다.

 

나는 공부를 하거나 글을 쓰다가도, 심지어 결과물이 호평을 받더라도 흥미가 식으니 전혀 의욕이 들지 않았다. 일시적으로는 이른 성과에 취할 수 있으나 결국 마지막까지 그 자리에 내가 있지는 않았다.

 

욕심도 많고 궁금한 분야도 많다 보니 수많은 일을 저질렀다가도 금방 흥미가 식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나만 느린 사람 같고 꿈이 모호하고 여겼다. 그러나 이젠 누군가의 이른 성공을 동경하기보다 마지막까지 버티고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앞으로도 내 꿈은 백 번 넘게 바뀔 것을 안다. 그러나 그 사이에서 결국 마지막이 있다면 나는 기꺼이 산만한 삶을 살아가고 싶다.

 

 

[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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