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는 무엇을 구매하는가 [문화 전반]

글 입력 2021.06.22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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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구매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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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관련법 개정으로 샤넬 코리아의 매출이 공개됐다. 매출 9,300억 원, 순이익 1,069억 원으로 전 세계 매출의 10% 수준이다. 벤츠 E클래스는 2020년 한국에서 38,888대가 팔렸다. 같은 해 인구수가 6배, 면적은 9배인 미국에서 27,102대가 팔렸는데도 말이다.


우리는 정말 샤넬만이 튼튼하고, 벤츠만이 연비가 좋아서 구매하는가? 아니다. 우리는 사용가치에 기반해 구매하지 않고, 명품이 가진 이미지를 구매하고 있다. 오늘은 이러한 ‘이미지의 허구성’에 관해 날카로운 지적을 전개한 프랑스의 사상가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1929~2007)의 사상을 그의 저서 『시뮬라시옹 Simulacres et simulation』(1981)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보드리야르가 제시하는 '물건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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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기술의 발전과 대량생산 시스템의 구축을 통해 사람들은 많은 물건을 가지게 되었다. 어렵고 힘들 때 형제와 가방 하나를 갖고 다투던 예전과는 달리 사람들은 이제 각자 가방 여러 개를 가지고 취향에 맞게 선택한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회사는 여전히 하루에 몇만 개, 몇십 만개의 가방을 생산해내는데, 사람들은 이미 충분한 양의 가방을 갖게 된 것이다.


회사들은 판매를 위해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내야만 했다. 물건은 이미 충분하기에, 그 물건의 ‘사용가치’에 어필해서는 그것을 팔 수 없다.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그 새로운 방법이란 바로 광고이다. 회사는 광고를 통해 ‘이미지’라는 것을 만들었다.


예컨대 과거의 광고는 이 물건이 어떤 편리함을 가지고 있고, 각 부분의 모양과 기능이 어떻게 되는지 소개하는 식이었다. 즉, 광고 속의 기호가 실제 물건의 본질과 일대일로 매칭되었다.

 

현대의 광고는 그것의 사용가치가 아닌, 이미지를 어필한다. 물건이 등장하면 선망할만한 연예인이 나타나 물건을 사용하고, 연예인과 함께 그 물건이 클로즈업되는 식이다. 그 어느 광고도 노란 바탕에 빨간 글씨로 쓰인 대문짝만한 문구로 광고하지 않는다. 우아하고, 세련되고 혹은 발랄하게. 광고는 더 이상 물건의 사용가치를 강조하지 않고, 회사가 원하는 허상의 이미지대로 전개된다.


이렇게 본질과 대응하지 않는 허상의 기호를, 시뮬라크르(Simulacre)라고 한다. 시뮬라크르란 원본 없는 이미지, 창조된 이미지, 상품에 들어간 환상이다. 그리고 이 시뮬라크르의 동사형이 시뮬라시옹(Simulation)이다. 즉, 현대 사회는 시뮬라시옹의 사회가 된 것이다.

 

 

물건을 사도 사도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

 

보드리야르의 이론은 생산량이 넘쳐나는 풍요의 시대가 되었음에도 어째서 사회가 끝없이 불평등한지, 어째서 풍요 속의 빈곤이 존재하는지를 알려준다. 그것은 우리가 허상의 이미지, 시뮬라크르 속에서 살기 때문이다. 상류층은 하류층과 구분되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들이 원하는 고급의 ‘이미지’를 구매한다. 그 과정에서 하류층은 차별받고 싶지 않은 본능을 바탕으로, 상류층과 비슷해지기 위해 따라가며 소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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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구분되려는 상류 계층과 이를 따라하려는 하류 계층의 끝없는 경쟁이 이어진다. 보드리야르는 이러한 경쟁을 폭력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이런 경쟁에 참여할 때, 우리는 끊임없는 불평등과 좌절감, 괴로움에 시달릴 수밖에 없으며 인간의 자유 의지는 억압당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보드리야르가 소비사회에 대한 대응으로써 제시한 방법이다. 그는 모든 것을 엎어버리는 과격한 혁명을 대안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보드리야르는 그것보다는 무관심의 절정, 즉 자본주의의 매력적인 유혹에도 동요하지 않는 철저한 무관심이 자본주의를 내파(內波, 내부로부터 서서히 파괴함)할 수 있다고 보았다.

 

좋은 브랜드의 물건을 구매하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그 디자이너의 디자인 철학에서 감명을 받고, 아름다움을 느끼며, 그것에 만족하는 일은 미학적으로 대단히 의미 있다. 하지만 남에게 보이기 위한 소비는 곧 당신에게 다가올 폭력과 빈곤, 불평등의 시작이라는 것을 반드시 인지해야 한다. 광고 속 허상의 이미지는 영원히 증식하고, 그것은 결코 자기 자신을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보드리야르가 말한 것처럼, 무관심의 절정으로 이를 대할 때만이 현대 자본주의가 제시하는 이미지의 환영을 초월할 수 있다.

 

 

[조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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