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경성은 낭만의 시대인가

'개화기' 열풍과 '경성시대'
글 입력 2021.06.22 20:1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다. 때문에 요근래 10-20대 사이에서 ‘경성 의복’ 의상대여점, 익선동의 ‘개화기’ 인테리어 스튜디오 등이 인기를 끄는 것을 보며 ‘경성 뉴트로’ 유행에 흥미를 느꼈다. 일명 ‘개화기’ 컨셉이다. ‘개화기’라는 시대를 어떻게 뉴트로 감성으로 녹여냈을 지에 대한 궁금증이 가장 컸던 것 같다. 관련 사진을 보며 처음에는 독특하면서 새로운 유행이라고 생각했고, 별다른 문제점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자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현재 유행하는 ‘경성 뉴트로’ 열풍은 바로잡을 필요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현재의 유행은 쉽지 않은 주제를 다루면서 일말의 고민이 없다.

 

이에 필자는 최근 유행하는 ‘개화기’ 트렌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그에 대한 나름의 개선방안을 이야기 하고싶다. ‘1900년대 대한민국’의 시대를 문화, 그리고 하나의 트렌드로 활용하는 것 자체에 반대하는 글이 아님을 밝히며, 올바른 역사의식을 갖춘 보다 다양한 문화들이 현재와 과거를 잇는 연결고리가 되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정말 21세기 ‘경성’은 낭만의 시대로 남아도 괜찮은 것인가.

 

 

 

뉴트로 문화의 발달과 ‘개화기’ 컨셉의 등장


 

새로움과 복고를 합친 신조어인 ‘뉴트로’는 식품, 패션, 광고 등 다양한 부분에 있어 손꼽히는 마케팅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마냥 화려하고 세련된 현대적 분위기보다는 어딘가 어리숙하고 불완전한 매력의 옛 문화들이 현 1020세대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뉴트로 여파로 최근 젊은 층에게 큰 사랑을 받는 컨셉은 다름아닌 ‘개화기’, 즉 ‘경성시대’이다. 당시 시대를 연상시키는 의상을 대여하고 그 시절을 배경으로 한 스튜디오, 카페 등에서 그 분위기를 즐기는 것이다. 실제 SNS에 개화기 해시태그와 함께 올라온 사진 수는 3만여개에 달하며, 의상대여점 또한 예약하지 않으면 대여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20210622202253_rgiarleg.jpg

[사진: 종로 ‘경성의복’ 의상 대여 및 사진관]

 

 

이 뿐만이 아니다. ‘개화기’ 컨셉은 이색술집이라는 키워드와 함께 20대, 30대를 겨냥한 술집 인테리어부터 ‘개화기 체험 브이로그’, ‘모던걸 메이크업’ 등의 유튜브 컨텐츠까지.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다양한 플랫폼에서 하나의 트렌드로 활용되고 있다.

 

 

20210622202316_annxydhc.jpg

[사진: 홍대 이색술집 ‘개화기요정’]

 

 

 

개화기’ 트렌드의 문제점


 

이런 ‘개화기’ 열풍은 뉴트로 트렌드의 확산을 배경으로, ‘사의 찬미’, ‘암살’, ‘미스터 선샤인’ 등 1900년대부터 일제강점기를 아우르는 시대를 다룬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 흥행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접하는 당시의 의상과 인테리어 등을 새로우면서도 독특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개화기’ 유행을 마냥 웃으면서 즐기기에는 ‘개화기’, 그리고 ‘경성’이라는 단어와 시대가 가진 역사성이 너무 무겁다.

 

 

1) 용어의 적절성

 

개화기 컨셉 마케팅에서 자주 사용되는 단어인 ‘경성시대’는 과연 적절한 용어일까? 사실 ‘경성시대’는 실제 존재하는 단어가 아니며 뉴트로 문화의 확산과 함께 SNS를 통해 새롭게 등장한 용어이다. 그런데 이때 문제는 ‘경성시대’ 속 ‘경성’의 의미이다. ‘경성’은 ‘경성부’를 의미하는데 이는 일본 제국주의가 대한제국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당시 수도인 한성을 격하하여 지칭한 단어이다. 실제 사학계는 ‘경성’이라는 명칭 자체가 식민지의 낙인이 찍힌 단어임을 강조하며, 독립 이후 경성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개화기 컨셉을 선호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나 식민지 현실이 담겨있는 명칭을 상호에 붙이며 하나의 트렌드로 만드는 것은 자칫하면 그릇된 역사의식을 초래할 수 있기에 우리가 경계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2) 시대인식의 오류: 이식된 문화의 상품화

 

그렇다면 ‘개화기’라는 시대 자체는 맞는 표현인가? 앞서 언급한 용어의 적절성 문제와 별개로 ‘개화기’ 트렌드는 시대 인식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최근 인기를 끄는 ‘개화기’ 열풍은 실제 ‘개화기’를 다룬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 사학계는 대한민국의 개화기를 1876년 강화도조약부터 1910년 경술국치, 즉 일본에 의한 국권침탈 이전으로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 1020세대의 인기를 끄는 화려한 의복들은 1930년대 일제강점기 시절의 모던보이, 모던걸 옷차림에 가깝다. ‘개화기’ 열풍은 사실 대한민국의 암울한 식민지 현실을 그 배경으로 하는 유행인 것이다. 이에 따르면 ‘개화기’ 열풍은 역사적 사실과 무관하게 당시 일부 상류층 사이의 의복을 “예쁘다”는 이유로 소비하고, ‘개화기’라는 이름 아래 일제강점기 시대 자체를 상품화한다고 볼 수 있다. 1930년대는 엄밀히 말하자면 개화기가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자본주의의 확산’이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3) 앞으로의 지향점

 

현재 유행하는 ‘개화기’ 컨셉은 일제강점기에 대한 회상을 의도적, 조직적으로 부추기는 등의 의도에시작을 둔 것은 아니다. 단지 최근 영화, 드라마 등 대중 문화에서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모던보이, 모던걸 묘사가 잦았고 당시 시대 속 색다른 문화들에 대한 호기심의 정서가 상업적으로 반영된 현상일 뿐이다. 문제는 쉽지 않은 소재를 너무도 쉽고 가볍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한국관광공사 일본 오사카지사는 2019년, ‘뉴트로 코리아’라는 슬로건의 한국 관광 홍보 영상을 게재했다. 해당 영상은 한 여성이 모던걸을 연상케하는 양장 복장과 함께 용산구에 위치한 ‘해방촌 108계단’을 배경으로 서 있는 모습, 전차를 타는 모습 등이 담겨있다. 본 영상은 “뉴트로 문화와 SNS 사진 명소에 초점을 맞춰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공간을 소개하자”는 의도로 제작되었으나 영상 공개 직후 영상의 배경이 되는 ‘경성’ 간판, 381 열차, 해방촌 계단 등에 대한 논란이 일며 삭제되었다. (381열차는 1930년대에 일본차량제조주식회사에서 제작한 전차이며, 해방촌 108 계단의 경우 일제강점기 당시 경성호국신사 참배를 위한 계단이다.)

 

 

20210622202403_ebuqupdt.jpg

[사진: 한국관광공사 오사카 지사가 공개한 ‘뉴트로 코리아’ 영상 일부]

 

 

해당 지역은 ‘해방촌 흔적 여행길’로 조성하여 지역이 가진 아픈 역사를 되새길 수 있도록 할 계획임을 밝혔으나 관광공사의 홍보영상에서는 ‘사진 명소’로만 소개됐을 뿐 실제 그 시대의 역사에 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단지 ‘경성’과 ‘레트로’ 열풍을 활용하여 유행에만 맞는 영상을 만든 것이다.

 

이 외에도 ‘개화기’를 ‘꽃 화’ 자를 사용해 꽃이 피는 시기로 묘사하는 등의 마케팅은 당시의 시대상을 하나의 홍보전략으로만 활용하는 현실을 극명히 보여준다. 많은 역사를 담고 있는 시대를 일회성으로만 쉽게 쉽게 사용하는 것이다.

 

 

20210622202421_shpnaycy.jpg

[사진: 롯데월드 개화기 이벤트]

 

 

현재 1020세대의 소비과정에 역사적 의의까지 일일이 부여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픈 역사라고 해서 무조건 문화로 소비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도 아니다. 다만 문화는 문화대로 두되 실제 그 시대에 대해 바르게 인지할 필요가 있지않을까? 보다 역사적 가치가 살아있고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방향으로 1900년대의 대한민국을 다룬다면 그야말로 현재와 과거를 잇는 연결고리이며, 결과적으로 진정한 의미의 역사대중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한다. 예를 들어보자. 1930년대 ‘경성’에서 청년 시절을 보낸 구보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는 서울의 중심지였던 명동과 소공동, 정동의 랜드마크 등이 등장한다. 이를 활용해 서울 중구청은 ‘1930년대 경성의 구보씨를 따라 현재의 서울을 돌아보자’는 취지와 함께 “소설가 구보씨, 중구를 거닐다”라는 제목으로 관광 안내서를 발간했다. 소설 속 구절을 직접 인용하여 한국 문학과 더불어 당시 시대상, 다양한 관광명소들을 소개하는 형식이다. 이처럼 같은 주제를 다루더라도 완전히 다르게 표현할 수 있지 않은가? 1900년대의 대한민국을 다루는 취지는 좋지만, 우리는 문화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과정에서 조금 더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그래서 결론?


 

미디어 매체의 발달로 짧은 순간에 보는 이미지 하나하나의 영향력이 커진 만큼 어떤 대상을 이미지화, 상품화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단순한 사진 하나도 반복되고 확산되면, 그것이 많은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서 대상에 대한 일반적, 보편적인 인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개화기’ 열풍은 10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대를 다루는 유행이다.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숙제들이 많고, 그 시대의 아픔은 곳곳에 남아있다. 1900년대가 더 이상 ‘낭만’의 시대로 소비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당시의 시대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하나의 문화로 만드는 모습은 분명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될 것이라 장담한다. 이를 위해 본 글이 ‘1900년대 뉴트로’ 트렌드가 보다 지혜롭게 활용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재고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마친다.

 

 

[이시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