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의 값 [도서]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캐롤(Carol)』, (주)그책, 2016.
글 입력 2021.06.15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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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캡처 2021-06-15 200348.png

 

 

최근 차별금지법 국회 청원의 동의자 수가 상임위 회부 기준인 10만 명을 넘겼다. 차별금지법이란 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성적 지향성,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언어 등을 이유로 차별을 받지 않도록 보장하는 내용을 담은 법률이다. 차별금지법이 인권위의 권고가 있었음에도 지난 15년간 지지를 받지 못했던 주된 요인이 '성별 정체성'의 문제 때문이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사실 지금도 인터넷에 '차별금지법'을 검색하면 각종 종교 단체 및 학부모 연대가 작성한, '우리 아이에게 동성애를 가르칠 수 없다'고 호소하는 게시글이 더 많다. 세상이 많이 개방적으로 변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동성애(혹은 양성애)'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불쾌한 주제다.

 

여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문득 이런 의문이 뇌리를 스쳤다. 그런데 그 '동성애'라는 것, 정확히 무엇인가? 그것이 도대체 무엇이관대 이토록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인정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울고 웃는가? 필자는 어떤 대상에 대하여 논하고자 한다면 우선 그것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주의다. 우리의 몽상과 짬뽕된 동성애에 대하여 '동성끼리의 사랑이라니 너무 징그러워!'라고 평하는 것은 상상속의 유니콘에 대해 '뿔 달린 말이라니 너무 징그러워!'라고 외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즉, 현실적인 효용이 없다는 것이다.

 

'이성애'가 무엇인지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하다못해 동성애자들도 이성애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을 것이다.) TV를 보면 드라마에서 남자와 여자 주인공이 사랑을 하고 있고, 라디오를 들어도 남자와 여자 사이의 사랑이 사연으로 소개되고 있다. 사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고개를 들어 당신의 부모님을 보면 세상에 만연한 이성애의 존재를 새삼 깨달을 수 있다. 그렇다면 동성애는? 그것은 TV에도, 라디오에도 나오지 않으며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아, 광화문 언저리를 배회하면 '동성애는 죄악이다' 라는 팸플릿 몇 개는 발견할 수 있을지도? 그러나 그 팸플릿 역시 '동성애'가 정확히 어떤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며 어떤 양상을 보이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해주지 않는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세상에 언급되는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들 중 8할은 이성애자(혹은 이성애자와 구별되지 않는 숙련된 동성애자)가 만들어내거나 간접적으로 주워 들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당사자인 동성애자들은 언제나 숨어 있는, 혹은 숨어 있어야만 하는 존재다.

 

나의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동성애는 도대체 어떤 모양으로 생겨먹은 사랑인거지?

아니, 애초에 사랑이 뭔데?

 

나는 그 길로 서점에 가서 이 책을 골랐다.


 

 

What is Love?


 

테레즈는 프란켄버그 백화점 장난감 코너에서 일하는 19세 여성이다. 그녀는 세상에 대단히 회의적인 시각을 가졌으며 연인은 아니지만 자신을 열렬히 사랑하는 남자 리처드, 그리고 그의 친구들과 주로 교류한다. 그녀는 백화점에서 일하고는 있지만 무대 디자이너를 꿈꾸고 리처드는 그녀에게 인맥을 제공한다. 여느 날처럼 백화점 카운터를 지키던 테레즈는 우연히 늘씬한 몸매의 금발 여성  캐롤 에어드(나는 처음에는 ‘캐롤’이 크리스마스 캐롤을 의미하는 제목인 줄 알았는데, 읽다 보니 주인공의 이름이었다)를 만나 그녀에게 첫눈에 반해 버린다. 그리고 몇 차례의 교제 후, 테레즈는 캐롤과 둘이서 여행을 떠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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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즈는 굉장히 이중적인 인물이다. 특히 서술이 테레즈의 입장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독자에게 그것이 더욱 부각된다. 그녀는 리처드를 연인으로 여기지 않지만 겉으로는 연인과 다름없이 대한다. 비주류(여성)인 그녀가 무대 디자인계에서 경력을 쌓기 위해서는 주류(남성)인 리처드의 인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테레즈는 갑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해 겉과 속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을의 위치에 놓여 있는 인물인 것이다. 더 나아가 테레즈는 리처드를 좋아하지 않는 것에 대해 상당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여성은 남성을 사랑해야 한다.’라는 사회적 통념 속에서 자란 동성애자의 모습으로 볼 수도 있고, ‘여성은 남성의 뜻을 따라야 한다.’와 같은 남성우월주의 속에서 자란 여성의 모습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리고 테레즈는 자신이 그러한 사회적 압박 속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하게나마 인지하고 있다. 테레즈는 리처드를 이렇게 평가한다. ‘자신(리처드)이 테레즈의 첫 남자라서, 자신이 테레즈의 인생에서 난공불락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녀가 자신과 영영 묶인 몸이라고 생각하기에 리처드가 저런 태도를 보이는 것 같았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캐롤과 테레즈의 사랑은 그 시작부터가 험난했으며, 힘겹게 시작한 사랑을 지속하기 위해서 또다시 수많은 사회적 압박을 감당해야 했다. 테레즈의 짝사랑이 시작되었을 때, '바로 좀 전까지 캐롤은 리처드에게 보내려고 테레즈를 계속 밀어냈다.’ 는 서술이 등장할 정도로 캐롤은 테레즈의 성적 지향을 보통 사람(이성애자)처럼 돌려놓으려고 애쓴다. 동성애자 자신조차도 본인의 성적 지향이 잘못된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후에 그들을 쫓는 탐정은 동성 연애에 대한 당대의 사회적인 인식을 대변하는 존재로서 ‘말로는 자기는 아무 편도 아니라고 했지만’, ‘두 여자를 떼어 놓고 싶은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을 내보이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사실들이 작품의 배경이자 창작 시기인 1950년대의 동성애에 대한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동성애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본 작품은 사랑 그 자체의 이중성에 대해서도 묘사하고 있다. 리처드와 테레즈는 서로 다른 대상(테레즈, 캐롤)을 정열적으로 사랑한다. 그리고 이 대상들은 그들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캐롤의 경우, 처음부터 작품 극후반부까지 상대에게 진심을 드러내지 않는 사랑을 하는 인물이었다. 테레즈조차 ‘캐롤은 극히 일부만을 자신에게 헌신했다’ 고 느낄 수 있었을 정도로, 캐롤은 테레즈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절대로 온전히 드러내지 않았다. (심지어 테레즈가 “사랑해요.” 라고 수차례 애정을 표현할 동안 캐롤은 “나도 사랑해.” 가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거 몰랐어?” 로 대답을 대신한다. ‘꼭 말해야 알아?’ 라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리처드와 테레즈는 둘 다 사랑하는 사람의 부탁에는 무조건 “Yes”라고 대답하는 사랑을 했다. 리처드는 자신을 좋아하지도 않는 테레즈를 무척이나 아끼고 배려하며 친절을 아끼지 않는다. 테레즈는 캐롤이 밥을 사준다고 할 때도, 자신의 집에 초대할 때도, 함께 여행을 떠나자고 할 때도 절대 거절하지 않았다. 이것은 언뜻 보면 그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내용이 무엇이든 거절할 수 없다는 점에서, 사실상 '사랑하는 사람의 요구'는 그들에게 절대적 가치를 지닌 명령이자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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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압박이 해제되는 순간 두 사람의 사랑의 판도는 완전히 바뀌게 되는데, 먼저 자신의 마음이 거절당했음을, 혹은 좌절되었음을 알게 된 순간, 테레즈와 리처드의 사랑은 순식간에 산산조각난다.열정적인 사랑은 너무나도 빨리 식고, 꺼져 버리기 쉽다. 캐롤과 여행을 떠난 테레즈에게 보낸 리처드의 편지들이 이 과정을 잘 보여준다. ‘넌 여느 여자와는 달라. 그동안 기다렸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기다릴 거야.’, ‘아직도 널 사랑해. 네가 날 사랑한다면 편지해서 제발 그렇다고 말해줘.’ 라며 애원하던 리처드는 답장 없는 2주를 보낸 후 ‘지금 너에 대한 내 감정을 말해주지. 맨 처음 내게 인 감정은 역겨움이었다. 너와 난 남남이다.’ 라고 적힌 마지막 편지를 보낸다. 테레즈 역시 시도 때도 없이 사랑을 속삭이던 캐롤이 양육권 때문에 자신을 포기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도서관 입구 위 초상화조차 캐롤의 모습으로 저를 비웃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니를 만나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캐롤 말고 아무도 보이지 않는 마법에 걸렸던 사실’ 을 깨닫는다. 이것은 리처드와 테레즈가 사랑에 멀었던 눈을 다시 되찾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리처드와 테레즈의 태도 변화는 인간이 사랑이 식은 후에 겪게 되는 자기 객관화와 그에 따른 정서 변화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리처드의 사랑, 그리고 테레즈의 사랑이 모두 이러한 객관화(또는 증오)의 단계로 나아갔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랑의 결말은 매우 큰 차이를 보인다. 리처드의 사랑과 테레즈의 사랑이 서로 정반대의 결말을 맞이하게 된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캐롤의 변화였다. 리처드의 '테레즈'가 끝까지 그에게 응답하지 않았던 것과 달리 테레즈의 '캐롤'은 그녀에게 마침내 응답한다. 캐롤은 양육권마저 포기하고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던 테레즈를 찾아와 함께 살자고 제안한다. 이것은 캐롤이 처음으로 사회의 압박에 맞서 자신을 되찾고자 한 것이다. 동시에 그녀와 다시 마주한 테레즈는 프로포즈를 단호하게 거절한다. 이것은 테레즈가 “Yes”만 말해왔던 이전과 달리,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한 것이다. 이 재회는 캐롤은 사회라는 외적인 압박에서, 테레즈는 맹목이라는 내적인 압박에서 벗어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이야기는 몇 시간 후, 테레즈가 마음을 고쳐먹고 캐롤을 찾아감으로써 해피엔딩을 암시하며 끝난다.

 

이 책은 캐롤과 테레즈의 변화를 통해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을 넌지시 암시하고 있다. 압박에 의한 맹목에서 벗어나 주체적으로 자신의 열망을 인정하고 지키고자 노력할 때, 비로소 진정한 사랑이 시작되는 것이다.  요컨대 작가는 캐롤과 테레즈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은 무조건 상대에게 맞춰주거나 본인의 감정을 속여가며 주위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겉과 속의 벽을 허물어 솔직하게 서로에 대한 감정을 털어놓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랑의 값(The Price of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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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의 원제는 '소금의 값(The Price of Salt)'이다. 작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원제 ‘소금의 값(The Price of Salt)’을 성경에서 따온 것이라고 직접 밝혔는데, 정확한 성경 구절을 밝히지 않아 인터넷에는 사용된 구절에 대한 여러 가설들이 떠돌고 있다. 네티즌들의 추측에 따르면 1) 약속을 어기고 뒤를 돌아봐 소금 기둥이 되어 버린 롯의 아내에 대한 구절, 그리고 2)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5:13)라는 구절이 유력한 후보였다. 나는 두 가설 중 후자를 택하겠다. 후자의 성경 구절은 사람은 본인의 본질(자아)을 잃어서는 안 되며, 만약 본질을 잃게 된다면 그는 다른 이들에게 묻혀 결국 사라질 것이라는 교훈이 담겨 있다. 이것을 반영하듯 작가는 본질을 잃고 남성들 사이에 묻혀 있던 캐롤과 테레즈가 적지 않은 대가, 즉 ‘사랑의 값(The Price of Love)’을 혹독히 지불하면서도 자신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의 자아실현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본질을 잃지는 않았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 부록: 인상적인 문장들



‘이게 옳은 거냐고 물을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아무도 대답해줄 필요가 없었다. 이건 더 이상 옳을 수도, 완벽할 수도 없는 일이었기에.’(299p 18번째 줄)


“네가 가면 난 망가질 것 같아. 같이 있으면 좋겠어.”(329p 8번째 줄)


‘어찌 해야 이 세상을 되살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이 세상의 소금을 되찾을 수 있을까?’(412p 4번째 줄)


‘그런데 캐롤은 테레즈를 배신한 적이 없었다. 린디보다 테레즈를 더 사랑했다.’(443p 18번째 줄)

 

 

[백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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