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배움의 발견' ② 다름과 틀림의 발견 [도서/문학]

글 입력 2021.06.11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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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배움의 발견' ① '배움'의 둔갑]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윗글을 먼저 읽으신 후에, 아랫글을 읽기를 권장해 드립니다.

 

타라 웨스트오버의 ‘배움의 발견’ 시리즈는

다음 주 세 번째 이야기로 마무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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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만들어낸' 사실


 

타라의 아버지가 처음부터 자녀들이 학교 교육을 받는 걸 전적으로 금지했던 것은 아니다. 정부에 대한 아버지의 적개심에 불을 지핀 것은 타라가 아주 어릴 적에 일어난 '랜디 위버 일가 사건'이었다.

 

어느 날, 공포에 떨며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같은 마을에 사는 랜디 위버가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교육한다는 이유로 정부의 공격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한다. 무장한 군인들이 랜디 위버의 집을 둘러싸고, 밖으로 나오는 그의 아이를 총으로 쏘아 죽였다는 것이다.

 

공포에 질린 가족들은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군용 가방을 이용해 ‘산속 피신용‘ 가방을 꾸리고, 복숭아 병조림을 만들며 집이나 근처 산에 갇혔을 때 먹을 수 있는 비상식량을 준비한다. 타라는 어차피 비상시에 무거운 병조림을 들고 산으로 도망갈 수는 없을 것이라는 아주 상식적인 생각을 하면서도, 공포에 떨며 끊임없이 복숭아 껍질을 벗긴다.


 

“랜디 위버가 총에 맞았다.” 아버지가 가느다랗고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들 시신을 되찾아 오려고 집 밖으로 나갔다가 정부군 총에 맞은 거야." 그때까지 한 번도 아버지가 우는 것을 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 눈물이 코끝까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 “총소리를 들은 부인이 아기를 안은 채 창문으로 뛰어갔지. 그리고 두 번째 총알이 날아왔어.” (p.32)

 


랜디 위버 일가 사건 이후, 아버지의 정부에 대한 불신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바뀐다. 전에는 자녀들이 원한다면 조금씩 학교에 보냈지만, 이 사건 이후로는 타라를 포함한 형제 자매들 중 누구도 정부가 운영하는 학교 근처에 얼씬도 할 수 없었다. 또한 비상식량과 연료를 축적하고 무기를 사들이는 일에 온가족을 동원하는 등, 종말에 대비하고자 하는 아버지의 강박도 더욱 심해진다.

 

 

 

새롭게 알게 된 진실


 

어릴 적부터 아버지에게 귀에 박히게 들어온 이 사건이 어느 날 타라가 듣고 있던 수업에서 언급된다. "알고 나면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지만, 타라는 수업이 끝난 후 컴퓨터실에서 사건에 관해 알아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버지의 말과는 달리, 랜디 위버가 군의 표적이 된 것은 그가 공교육을 거부했기 때문이 아니라, 민족 우월주의 모임에서 만난 요원에게 개조한 총을 팔아넘겼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는 그 문장을 ... 여러 번 읽었다. 그제야 이해가 됐다.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홈스쿨링이 아니라 백인 우월주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아이들을 공교육에 참여시키지 않는다고 해서 사람들을 살해하는 습관을 정부는 애초부터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는 너무 명백히 보이는 사실이어서, 그때까지 왜 그걸 몰랐는지조차 이해가 안 될 지경이었다.
 

 

그동안 타라가 믿어왔던 것과는 달리, 당시 총격으로 사망한 것은 랜디 위버의 아내와 아들뿐이었고 다른 세 딸과 위버 자신은 그때까지도 살아 있었다. 심지어는 국가로부터 거액의 보상금을 받고 책을 펴낸 후, 총기 전시회를 돌며 전문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타라는 순간적으로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의심하고 분노하지만, 곧바로 공포에 사로잡힌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가 실로, 사건에 대해 스스로가 말한 대로 믿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에 대한 설명을 찾으려고 애쓰던 내 머리에 이상한 단어들이 떠올랐다. 바로 들은 지 몇 분 되지 않은 단어들이었다. <편집증>, <조증>, <과대망상>, <피해망상>…. 아버지는 … 사건에 관한 뉴스를 읽었거나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열에 들뜬 아버지의 두뇌를 거치면서 더 이상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이야기로 둔갑했을 것이다.
 



‘다름의 존재’와 ‘자신의 틀림’을 마주하는 태도


 

이 장면에서 타라는 여러 가지 사실을 한 번에 깨닫는다.

 

첫째, 자신이 알고 있던 사실이 틀렸다. 둘째, 세상의 전부이던 아버지가 틀릴 수 있다. 셋째, 아버지가 피해망상 등을 앓고 있는 환자다.


놀라운 점은 타라가 “잘못 알고 있던 규모가 너무도 커서 그것을 바로잡으면 세상 전체가 변할 정도”인 틀림을 마주하면서도, 이를 회피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자신의 틀림을 받아들이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그에게 절대자와 다름없던 '아버지의 틀림' 역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를 바탕으로 '아버지가 환자다'라는 바로 잡힌 세계를 보기에 이른다.

 

반면 타라의 아버지는 완벽하게 반대의 사고를 보여준다.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정부에 대한 의심을, 누군가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아주 견고하게 만든다. 파편적으로 조각난 정보를 자신의 세계관에 맞추어 받아들이고 발전시키면서 자신만의 사실을 만든 것이다. 이런 아버지의 모습은 억지스럽고 우습다. 상식적인 인간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종류의 사고의 흐름일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우리 사회에서는 각자의 입맛에 맞게 사실을 각색하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라고 믿고 싶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가짜 뉴스’가 우리 사회의 문제로 떠오른 것은 오래되었다. 사람들이 유튜브와 SNS를 중심으로 퍼지는 이 가짜 뉴스를 믿는 것은, ‘속아서’이기도 하지만 ‘속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이상우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는 사람들이 가짜 뉴스를 믿는 이유를 “인지 부조화 해결, 자신이 진실이기를 원하는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행하는 모든 종류의 동기적 추론 등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가짜 뉴스의 소비자들은 ‘믿고 싶은 것을 믿기 위한 수단’으로 가짜 뉴스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믿고 싶은 것을, '믿을 만하게' 말해주는 목소리를 찾기 위해서. 이런 상황은 알고리즘을 통해 강화된다.

 

유튜브와 SNS의 알고리즘은 이용자의 취향과 최대한 비슷한 것을 분석하여 추천하고, 지속적인 시청을 유도한다. 덕분에 이용자들은 계속해서 자신의 입장과 비슷한 의견만을 접한다. 이는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의견과 사실들을 외면하게 하고, 종국에는 자신의 관점만이 옳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비단 허술하게 만들어진 뉴스를 소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어떤 종류의 목소리를 듣더라도 우리는 점점, 자신의 입장과는 다른 목소리 앞에서는 귀를 막고, 비슷한 목소리를 향해 귀를 연다. 지금의 한국이 온갖 혐오와 갈등의 단어들로 점철된 것은, 수많은 '타라의 아버지'가 쌓여갔기 때문이 아닐까. 자신의 틀림을 찾으려 하기보다는, 그로부터 고개를 돌려버리는 쪽을 선택하는 사람. 그래서 결국엔, 나의 세계가 틀릴 수 있음은 모르고, 타인의 세계가 틀릴 수 있음만 아는 사람. 틀리지 않은 것도, 틀리게 보는 눈을 가진 사람.

 

틀렸음을 인정하고, 누구나 틀릴 수 있다는 법칙을 가슴에 새기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를 바로 보려는 노력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타라는 집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자신의 가족과는 다르게 세상을 보고 쓰고 기억하는 존재를 만나며 자신이 틀렸음을 알게 된다. 그 과정에는 혼란과 공포, 당황스러움과 갈등이 가득했지만 타라는 도망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의 세계를 구석구석 뒤집었다.

 

우리 역시, 억지로라도 ‘다름’을 지속적으로 접해야만 할 것이다. 나와 내가 진짜라고 믿는 모든 게 틀릴 수 있음을 명심하며, 그를 바탕으로 세상의 진실을 보려 노력해야 한다. 홈스쿨링을 한다고 정부가 사람을 총으로 쏘아 죽인다고 믿는 사람이 되는 것은, 이를 게을리하는 순간 무섭도록 쉬운 일이 되어버리고 말 테니 말이다.

 

 

*이정현. (2019). ‘유튜브 확증 편향성, 정치 편향성에 무감각하게 만들어’,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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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음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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