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더 이상 노력에 상처받지 않기 위해 - 노력의 기쁨과 슬픔

글 입력 2021.05.27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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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기계발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릴 때는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는데 어느 정도 머리가 큰 뒤로 자기계발서를 읽는다고 해서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멀리하게 되었다. 책에서 추구하는 인간상이 나와 거리가 멀면 멀수록 변화의 의지보다는 패배감만 느껴졌다.

 

원인은 나 자신한테 있다. 나는 너무 쉽게 자책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와 맞지 않는다면 흘려들어도 될 조언에도 그를 따르지 못한 나를 부끄러워한다. 내 자책의 주된 원천은 게으름이다. 테트리스의 블록을 쌓듯이 무리하게 일정을 쌓는데 계획적이지 못한 성미로 완벽히 완수하는 경우는 드물다. 사실 소화하기 힘든 일정을 기획한 것부터가 잘못이라는 걸 알지만, ‘열심히 사는 나’만큼 도취하기 쉬운 것도 없기 때문에 적절한 휴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자꾸 망각한다.

 

<노력의 기쁨과 슬픔>은 표지에 적힌 ‘너무 열심인 나를 위한 애쓰기의 기술’이라는 말부터 나에게 꼭 맞는 책이라고 느껴졌다. 열심히 살고 싶은데 내가 정한 ‘열심히’의 기준을 충족시키기란 어렵고 육체만 피로해지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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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의 기쁨과 슬픔>은 저자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겪은 경험을 참고삼아 그동안 신성하게 여겨졌던 ‘노력’의 양면성에 대해서 깊이 있게 파고든 책이다. 어렸을 때 학교와 미디어에서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교훈을 들어보지 않은 이가 없을 것이다. 이 교훈은 몹시 달콤하다. 어떤 재능을 타고났든, 어떤 상황에 놓여있든 노력만 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 많은 이가 달콤한 교훈의 이면을 깨닫고 무력감에 젖곤 한다. 나 역시 어린 시절 힘든 환경을 딛고 노력 끝에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했다. 이야기 속 그들처럼 고난과 시련 끝에 눈부시게 성공할 ‘언젠가의 나’를 꿈꾸며 초라한 현재를 버텼다. 그러나 그 ‘언젠가’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자기 위로도 더 이상 효과가 없자 성공하지 못한 원인을 노력의 부족으로 돌렸고, 그럴수록 자책은 더욱 심해졌다.

 

독서가 의무로 느껴질 때가 있다. 나에게 독서는 분명 즐거운 취미지만, 생산성 있는 시간을 보내야 해서, 교양을 쌓아야 해서, 결정적으로 ‘책 많이 읽는 나’에 심취하기 위해서 꾸역꾸역 읽을 때도 많다. <노력의 기쁨과 슬픔>을 읽기 전에도 아무리 내게 필요한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해도 어쨌든 외피는 자기계발서인데 의무감으로 읽게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이런 걱정이 무색하게 기대 이상으로 너무나 재미있게 책을 읽었다. 책 내용 자체가 알차기도 했고 의무감과 긴장감을 내려놓으라는 메시지도 독서를 편하게 즐기는 데 큰 몫을 했다.

 

내가 자기계발서에 거부감을 느꼈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성공적인 삶을 단호하게 정의하는 태도가 나와 맞지 않아서였다. 사람마다 가치관도 다르고 좋은 삶의 기준도 다른데 정답처럼 특정 방식을 제시하는 모습에 위축되곤 했다. 그러나 <노력의 기쁨과 슬픔>은 이미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충분히 고생했음을 인정하고 효과적인 다른 방식으로 제시하는 책이어서 위축보다 위안을 많이 느꼈다.

 

책을 읽으면서 표지 뒷면에 적힌 ‘철학자가 쓴 자기계발서’라는 문구가 단순히 홍보만을 위해서 쓰인 문구가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다. 철학의 사전적인 정의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인데, 노력과 목표에만 집착하는 태도를 버리라는 책의 메시지가 우리 삶의 본질을 일깨워주었기 때문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라 삶 자체가 되는 것. 그것뿐이다. 일반의 삶이 아니라 나의 삶, 나를 통과해 흘러가는, 나 자신인 삶 말이다. …(중략)… 만일 나 자신이 문제라 해도, 그 문제는 자신이 그런 것처럼 훨씬 더 큰 무언가, 바로 ‘삶’이라는 거대한 총체 안에서 차츰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지만, 차분하게 있으면 많은 일이 벌어진다.”

 

-P.188

 

 

이 부분을 읽고 다르덴 형제 감독의 영화가 떠올랐다. 작년 온라인 생중계로 다르덴 형제가 직접 본인들의 영화를 얘기하는 GV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다르덴 형제 감독 영화의 특징 중 하나는 인물의 뒷모습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는 분석에 대해 인간은 이미 벌어진 일을 뒤늦게 파악하고 쫓아갈 수밖에 없다는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미래를 예측하지 못할 때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워낙 걱정과 불안이 많은 성격이라 항상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전전긍긍한다. 재밌는 건 막상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상황이 확정되기만 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는 것이다. 내가 두려운 건 안 좋은 결과가 아니라 미지의 상태였다. 어차피 인간은 미래를 알 수 없고 세상은 내 맘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할 만큼 했다면 결과는 운명에 맡기도록 두어야 한다.

 

많은 사람이 열광하는 ‘목표’에 대해서도 본질을 꿰뚫는 문장이 나온다.

   

 

목표를 가진다는 건 이미 일정 부분 실패하거나 실패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해.

 

-P.209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하지만 그게 모든 사람이 마땅히 따라야 하는 의무는 아니다. 목표만큼 강력한 동기부여도 없지만,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고 삶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 무엇이든 너무 집착하면 도리어 멀어지는 법이다. 성공은 애써 추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충만한 삶을 살 때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다.

 

책은 여러 사람의 경험담과 탁월한 비유로 철학적인 메시지를 쉽고 간결하게 전해준다. 복잡한 생각 없이 줄을 타는 현재에만 집중했던 외줄 타기의 귀재 필리프 프티, 바다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누구보다 깊이 잠수했던 프리다이빙 선수 자크 마욜처럼 삶으로써 핵심 메시지를 증명해낸 인물들의 경험담이 책의 신뢰감을 더한다.

 

가장 와닿았던 비유는 불에 탄 프라이팬 비유였다. 탄 프라이팬을 씻을 때 수세미로 박박 문지를 것이냐, 물에 담가놓고 차분히 기다리느냐에 따라 삶의 태도가 갈린다. 항상 전자의 마음가짐으로 살았던 나는 후자의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경험담을 읽으면서 나를 둘러싼 세상이 좀 더 편안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책 초반부에서부터 나는 내가 이 책을 좋아하게 될 것을 직감했다.

   

 

살아있음은 서술 가능한 경험의 일부가 되어 세상과 연을 이어가는 것이다.

 

-P.27

 

 

목표를 이루지 않아도, 불타는 열정에 나를 갈아 넣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살아있다. 앞만 보는 달리기를 멈추고 잠시 주변을 살펴보면 미처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풍경에 놀랄 것이다. 그 아름다움을 잊지 않는다면 노력 때문에 슬픈 날보다 기쁜 날이 더 많아질 것이다.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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