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격자들의 집합, 제니퍼 바틀렛의 예술 [미술]

질서와 자유로움 사이에 놓이다
글 입력 2021.05.23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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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예술 작품’하면, 작가의 자유로운 붓질과 경계 없는 형태가 연상된다.

 

하지만 정확성과 규칙, 법칙이 느껴지는 작품이 있다. 바로 제니퍼 바틀렛(Jennifer Losch Bartlett)의 작품이다. 반듯함과 일정함으로부터 나오는 쾌감은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작품을 주목하게 했고, 확고한 그녀만의 예술 철학이 주목받는 현대 예술가로 거듭나게 했다.


제니퍼 바틀렛은 미국의 예술가이다. 개념예술 기반의 미학 그리고 신표현주의의 회화적 형식이 결합되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녀의 예술은 격자 형태들의 집합이다. 격자 형태의 작은 정사각형은 에나멜 코팅의 강철판에서 제작된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야만 제니퍼 바틀렛의 예술이 시작된다.


추상적이고 구상적인, 제니퍼 바틀렛의 작품 세계를 만나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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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use : large grid, 1998

 

 

제니퍼 바틀렛은 집을 주제로 많은 작품을 제작했다. 그녀의 작품을 쭉 찾아보면 다양한 형태로 표현된 집을 살펴볼 수 있다.

 

그녀에게 집은 ‘세상의 모든 불완전함에서 완전한 우주를 대표하는 모티브’였다고 한다. 이밖에 산, 나무, 정원, 바다, 수영장 등 사람들에게 익숙하고 친밀한 소재를 많이 다뤘는데 이들로부터 안정감과 완벽함을 찾고자 했다.


완전하고 완벽한 것을 바틀렛의 눈으로 찬찬히 살핀다. 매우 단조롭고 추상적이다. 먼저 단조로움은 모든 것을 단순화시켜 바라보고자 하는 의도가 담겼다. 세상과 인간의 존재는 결국 단순한 것이라는 메시지는 초연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이어서 안정감과 평화로움을 느끼게 만든다.


또한 추상성은 그녀의 작품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포인트다. 그녀는 추상 예술이 비유적 예술보다 더 비유적이라고 말했다. 이는 곧 추상 예술이 묘사하는 것이 비유적 예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더 가깝다는 의미이다. 그녀는 추상 예술이 가진 잠재력을 알고 이를 여러 작품에 활용하고자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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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hapsody, 1975-76


 

제니퍼 바틀렛의 작품 중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다. 이 작품이 처음 전시되었을 때 폴라 쿠퍼의 맨해튼 갤러리 공간 전체를 차지했다고 한다. 총 987개의 정사각형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총 넓이가 150피트가 넘는다. 거대한 이 작품은 바틀렛이 만들고 싶었던 ‘모든 것이 담겨진 그림’에 대한 시도이다.


작품 속 정사각형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산, 선, 집, 나무, 바다, 도형 등이 보인다. 그녀가 자주 사용했던 소재들이 모두 담겨있다. 이미지는 정사각형 안에서만 국한되기도, 여러 정사각형에 걸쳐 있기도 한다. 이렇게 추상적인 요소와 구상적인 요소들이 모두 한 작품 내에서 일체감을 이루는 동시에 다양성을 이룬다.

 

그래서일까, 작품을 이루는 정사각형 간에 친밀한 상호작용이 느껴진다.


‘랩소디’는 자유로운 형식, 서사시를 뜻한다. 제목에 걸맞게 작품은 바틀렛만의 자유롭고 특별한 스타일이 담겨져 있다. 또한 작가는 <랩소디>를 보는 것은 ‘대화와 같다’고 말한다. 이 자유로운 형식의 작품을 읽는 것이, 작가가 자주 사용했던 소재들을 읽는 것이 마치 우리가 작품 또는 바틀렛과 대화를 하려는 시도처럼 느껴져서 였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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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lantic Ocean, 1984


 

이 작품은 103×363 인치의 거대한 규모와 함께 바틀렛의 트레이드마크인 제작 방식을 다시금 보여준다. 에나멜 코팅의 강철판을 활용해 격자무늬를 만드는 것이다. 이 격자무늬는 잘 정돈된 질서를 자랑한다. 이 질서 위에 역동적인 파도가 펼쳐진다. 질서와 자유로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이 작품의 매력에 빠져든다.

 

강렬한 파도와 바다의 첫인상은 매우 강렬하다. 이 강렬함은 감상자들을 작품 앞으로 끌어당긴다. 그리고 이내 작품을 이루는 작은 정사각형들을 하나 하나 뜯어보게 된다. 이 작은 정사각형들이 각각의 작품으로 느껴지기도, 전체를 이루는 작은 구성품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해체와 연결을 반복하게 만들어 작품을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감상자들은 질서와 자유로움 사이에서 밀고 당기는 것을 반복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 과정에 놓인 감상자들은 묘한 긴장감과 쾌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이 바로 제니퍼 바틀렛의 작업을 성공적으로 만드는 요인이자 계속해서 많은 이들이 주목하게 되는 핵심일 것이라 추측해본다.


*


제니퍼 바틀렛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집중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작은 점과 선들을 따라가기도 하고, 가까이 다가가 작은 구성들을 살펴보기도 하고, 뒷짐 지고서 넓게 바라보기도 한다. 한 작품을 유심히 또 깊게 파헤쳐보게 만드는 건 제니퍼 바틀렛의 작품이 가진 매력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녀가 부여한 격자의 규칙 내에서 크고 작은 조형 요소들을 마음대로 조립하는 기분이다. 철저하게 짜인 규칙만이 존재할 것 같지만 오히려 무한한 자유를 선사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상반되는 묘한 매력에 다시금 사로잡힌다.


단순함, 추상적인 감각 그리고 이에 내제된 자유로운 표현 형식 속에서 마음껏 누비고 헤엄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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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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