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인: 대담하게, 솔직하게 [음악]

진실을 찾든가, 대담해지든가
글 입력 2021.05.2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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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 'TRUTH OR DARE' 앨범 자켓

 

 

학창시절, 내 교복 치마 끝에 '내가 아닌 나'가 따라다녔던 적이 있다.

 

나는 참 눈물이 많다. 슬픈 영화를 보면 무조건 울고, 기쁜 영화를 봐도 벅차서 울고, 친구가 울면 슬퍼서 따라 울고, 가끔은 힘들어서 혼자 울고. 커 가면서 자연스레 눈물도 많이 줄었지만 학창시절에는, 더 눈물이 많았던 것 같다. 그걸 나도 알았고, 내 주변 친구들도 다 알았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나는 다수에게 이미 '눈물은 커녕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애'가 되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얘기 좀 할까요

그렇게 나를 잘 안다고요

참 이상해요 눈 앞에서는

한 마디 못하면서

뒤에선 참 말이 많아

 

가인 - 진실 혹은 대담

 

 

나도 모르고 있던 내 기말고사 성적이 남들 입에서 오르내렸고, 난 이름도 모르는 옆 반 애가 날 가지고 한 농담이 내 귀에까지 들어왔다. 어디서 출발했는지도 알고, 어디서 퍼졌는지도 아는 소문이었지만 그걸 밝힐 수는 없었다.

 

 


 

 

그때 이 노래를 들었다. 가인의 '진실 혹은 대담'. 소문과 루머와 찌라시의 시작과 끝, 연예계. 가인은 어린 시절 데뷔했을 때부터 그 안에서 느낀 경험과 감정을 고스란히 곡에 담았다.

 

 

아이, 그러지 말고 얘기를 해봐

이런 거 기대했었나요

이름만 겨우 아는 사이에

어머나 그대랑은 정말

손끝만 스쳤다간 아주 난리 나겠어요

 

가인 - 진실 혹은 대담

 

 

'진실 혹은 대담' 뮤직비디오 속의 가인은 가상의 인물이다. 여러 명의 지인과 동료들은 소위 가인의 '실체'에 대해 하나둘 털어놓는다. 뒤끝이 있다, 이중적이다... 온갖 뒷담화들이 쏟아져 나온다. 가인이 듣는 게 아니라는 생각으로 마음껏 내뱉는 사람들의 말은 가인의 직설적인 가사와 함께 교차 편집되고, 가인의 '페이크' 다큐멘터리는 마지막 몇 초 남짓한 가인의 인터뷰, 그리고 '그냥 살아가는 게, 다들 연기 아닌가요?'라는 대사로 끝이 난다.

 

우리가 페이크 다큐멘터리(fake documentary)를 만들고, 보는 이유는 완전히 '페이크'여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페이크 다큐는 모큐멘터리(mocumentary)라고도 불린다. '조롱하다'라는 뜻의 영단어 'mock'을 더한 표현이다. '진실 혹은 대담' 뮤직비디오는 그 형식이 완전한 극이 아니고, 페이크 다큐라는 점에서 가장 씁쓸한 영상이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은 싫어도 해야 하고, 미운 사람 앞에서 웃어야 하고, 남들이 싫어하는 나의 모습을 숨기고, 그리고 그렇게 했음에도 퍼지는 모든 소문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고통스러워한다. 특히 연예계 종사자의 경우 그 정도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심하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내용이 담긴 영상을 모두 가인이 볼 거라는 말에 별안간 '이거 다 거짓말이에요', '편집해주세요'를 남발하는 뮤직비디오 속 사람들. '진실 혹은 대담' 특유의 대화하는 듯한 가사는 마치 그들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답하는 듯 냉소적이고 솔직하다. 또, 안무 내내 가인의 주변을 떠나지 않고 모두 같은 옷을 입은 6명의 백댄서는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는 소문을 표현하는 듯하다. 그들은 노래가 끝난 후 가인이 무대 중앙에서 벗어나고서야 그녀의 곁에서 떨어져 나간다.

 

가인은 어차피 모든 소문을 진실로 바꾸지 못할 거라면, 차라리 대담해지기로 했다. 가인이 이 노래를 부르게끔 한 장본인들은 과연, 또 다른 소문이 퍼질 것을 각오한 가인의 이 대담한 메시지를 들었을까?

 

내가 만들지 않은 '나'를 애써 무시한 채 주렁주렁 달고 다니던 나는 졸업 후, 당시에 그것들을 떼 버리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나에게 필요한 것도 '진실 혹은 대담'이었는데.

 

이 노래가 발표된 후 6년이 지났다. 우리는 진실을 찾았나? 혹은 대담해졌나?

 

*

 

가인의 노래들은 오랜 시간이 지난 최근 재조명받고 있다. 이 노래가 2021년에 재평가된다는 건, 2014년의 '페이크 다큐멘터리' 속 '다큐멘터리'가 2021년에도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 그녀가 보여줬던 씁쓸한 상황들이 자꾸만 생각나기 때문.

 

어쩌면 '진실 혹은 대담'이 재조명받는 건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꽤 슬픈 일일지도 모르겠다.

 

 

[이건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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