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죽음에 붙여진 숫자 [사람]

글 입력 2021.05.18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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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실 죽음


 

얼마 전 장례식이 있었다. 내 인생에서 처음 맞는 죽음이었고, 처음 치르는 장례였다. 그에 관한 세세한 이야기들은 여기서 나열하기는 조금 그렇고 그 안에서 내가 느꼈던 아주 기이하고 애달픈 무엇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거기서 머무르던 3일 동안 내가 있던 곳은 8호실이었다. 옆엔 7호실이 있었고, ‘ㅁ’자 모양의 건물의 코너를 돌고 또 한 번 돌면 나오는 맞은편에는 특실이 있었다. 7호와 8호, 특실은 2층에 있었고, 아래층에는 가보진 않았지만 우리 이전의 숫자들로 불리는 방들이 늘어서 있었을 것이다.


나와 내 가족들이 8호실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누군가는 특실 장례식을 치른다. 그 앞에 붙은 숫자는 가격의 차이일 테다. 우리는 특실보다 덜 값을 치러서 8호실이고, 누군가는 우리보다 덜 값을 치러서 더 작고 성의가 덜한 죽음을 맞이할 테다. 인생의 끝점까지 따라붙는 지독한 숫자가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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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를 치르는 동안 어른들은 중간중간 계속 돈 얘기를했다. 영수증을 들고 하나하나 검토하고, 코로나로 인해 찾아오는 조문객과 함께 줄어든 조의금이 장례의 값을 충당할 수 있을지, 형제들이 그것을 어떻게 부담해야 할지, 각자의 손님이 얼마나 왔고 얼마나 냈는지를 이야기했다. 그리움에 울고, 불현듯 찾아온 이별에 아파하다가도 그랬다. 울분이 뜨겁게 마음과 눈을 적시는 공간에서 차가운 숫자들이 오고 갔다.

 

장례업체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메인에는 ‘상조상품,’ ‘장례상품’이라는 카테고리로 장례 서비스를 소개한다. 프리미엄 서비스, 고품격 장례, 고급형 장례. 산 자들이 부담할 값이 높아질수록 장례업체는 더 많은 것들을 제공한다. 도우미도, 상복도, 수의의 재질도 더 많이 더 좋은 것을 주겠다 약속한다. 아주 일반적인 경제 순리겠지만 그 상품들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를 생각하면 마냥 당연히 여길 수 있는 것일까.

 

 

 

죽음과 숫자


 

우리는 처음 날 때부터 죽는 순간까지 우리에게는 주민번호 이외에도 늘 따라다니는 숫자들이 있다. 환희와 기쁨, 슬픔과 절망을 추스르는 데에 드는 돈이다. 그런 것들이 마음을 대변하게 된다. 나는 너에게 이만큼의 돈을 써도 아깝지 않다고, 너를 생각한 나의 마음의 크기가 이 정도라고 말이다. 추상적인 말이나 잡히지 않는 행동으로는 내 마음을 온전히 전할 수 없어서 계산이 되는 물질로, 돈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애정에 값을 치르는 것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그런 것들이 전할 수 있는 진심이 있으니 말이다. 다만 탄생과 죽음이라는 초월적인 상황조차 인간이 만들어낸 돈에 얽매여야 한다는 것이 주는 허탈함이 있다. 내가 생각한 장례식은 순위와 경쟁 속에 놓인 인간이 유일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순간이자, 이를 마무리 지어야 하는 남은 사람들이 지난 시간과 나눴던 사랑을 회상하는 마지막 단계이다. 그 시간을 다른 상념이 방해할 수 없게 지켜줄 수는 없는 것일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어른들이 장례 비용에 대해 나누던 이야기를 아마 다 들었을 테다. 장례식장은 그렇게 크지 않았고, 조문객이 떠나간 공간은 꽤나 적적했으니까 말이다. 생전에 그분은돈을 많이 아끼시던 분이셨다. 만약 계셨다면 당신의 장례를 보며 어떤 말을 하셨을까,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자연스레 나의 죽음에 대해 생각을 했다. 아직은 막연한 미래에 내 옆에 남은 이가 있을까, 그들은 날 위해 장례를 치러줄까. 그들이 나를 위해 특급 장례를 치러준다면, 반대로 장례 없이 빈소만 차려준다면, 세상에 미련을 버리고 날아가는 순간에 나는 어떤 마음이 들까. 둘 중 어느 것도 미안하거나 고맙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럼 내가 누군가의 장례를 책임지게 되었을 때, 지금처럼 무능하게 참가하는 것이 아니라 상주가 되어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하는 책임자가 되었을 때는 어떨까. 특급 장례도, 간소한 빈소도 미안하지 않을 것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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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이 땅에 태어났다면 다시 되돌아가야 한다. 아직까지는 영생을 실현해 줄 기술도, 마법도 없다. 어떤 삶을 살았든 똑같이 죽음을 만난다. 다른 출발선에서 시작하더라도, 끝은 맞춰줄 수 있는 것 아닌가. 적어도 마지막을 기념하는 순간만큼은 숫자가 사람을 방해할 수 없었으면 하는 좋겠다. 떠나는 사람도, 남겨진 사람도 오로지 서로가 나눴던 시간과 애정을 돌보느라 여념이 없을 3일이 지켜지기를 소망한다.

 

 

[오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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