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행복한 낯설음_배수아 [도서]

나에게 색다른 독서경험을 준 배수아의 책
글 입력 2021.05.1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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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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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스트 커버스토리 배수아 작가

 

 

절대 길다고 할 수 없는 독서 인생에서 그 경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독서 경험을 주었던 몇 권의 책이 있다. 그중 한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배수아 작가의 『뱀과 물』이다. 배수아는 그중에서도 ‘낯설음’ 카테고리에 분류되어 있다. 책의 띠지에 나와 있듯 ‘한국 문학의 가장 낯선 존재’라는 문장에 끌려 나는 배수아라는 낯선 영토에 기꺼이 발을 들여놓았다.

 

책을 읽으면서 경험할 수 있는 최대의 행복, 특히 독서량이 쌓이면서 더욱 소중해지는 것은 ‘낯설다.’는 감정일 것이다. 영화를 더 오래 봐왔던 나는 이제는 느끼기 정말 힘든 ‘낯섦’ 혹은 ‘신선함’을 주는 영화는 그것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후한 평가를 주게 된다. (하지만 나의 독서 경험은 정말 얕디 얕아서 아직 놀랄만한 경험이 많이 남았다는 것이 행복하게만 느껴진다.)

 

나에게 낯섦을 준 또 다른 작가는 『모래의 여자』라는 책을 쓴 아베 코보 작가이다. 즉 나에게 낯섦은 소재가 시적이거나 (혹은 완전히 초현실적으로 가거나 ex. 프란츠 카프카 변신) 문체가 시적이거나 였다.

 

나 그리고 사람들은 그녀의 글 어디에서 낯섦을 느꼈을까? 그녀의 시적인 문장도 한몫을 하지 않았나 싶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시와 소설의 구분의 모호함 대해 의문을 던진 적이 있다.

 

 

(...) 나는 시와 소설에는 궁극의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신용목 시인은 있다는 의견이었다. 왜냐하면 시에는 운율이라는 요소가 들어가야 하므로 그것은 예를 들어서 스토리 없는 소설은 소설이 아니라는 말과도 유사하게 들린다. 그러면 산문시의 형태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다. 산문시와 산문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나는 소설을 쓸 때 항상 이런 의문을 갖는다. 내가 쓰는 것이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쓰고 있는가? 시인가-소설인가?(...)

 

《Axt》, <이해할 수 없는 너를 해명해봐>, 2018

 


그녀는 글을 쓰면서 시와 소설에 경계를 두지 않기 때문에 그녀의 소설은 긴 시 같기도 하고 시적인 소설처럼 느껴진다(배수아는 사실상 에세이와 소설의 경계도 모호하게 하기에 그녀의 에세이는 소설처럼 느껴진다). 그녀는 자신의 소설 작법에 대해 말하는 것을 매우 꺼려하는데 창작의 과정을 설명할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말은 문학을 배워본 적이 없는 배경의 영향도 있을 것이지만 비교적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거의 본능적으로 자유롭게 자기가 추구하는 글쓰기를 구축해나가기에 설명이 불가한 것일 테다. 그런점에서 문단의 경계에서 벗어나 유일무이한 배수아라는 장르를 개척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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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그녀의 글을 접한 건 등단 후 초기작이 아닌, 비교적 최근 작인 『뱀과 물』(2017)이다. 그녀의 세계를 지켜봐 온 팬들은 작가의 초기작과, 대중성에서 많이 멀어져 실험적이라 평가되는 현재 글이 많이 다르다고 말한다. 편리하게 구분하자면, 그녀의 글은 그녀가 독일로 간 이후에 쓴 글과 이전에 쓴 글로 나뉠 수 있겠다.

 

그녀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으로 취직해 오랫동안 병무청 직원으로 일했다. 1년 휴직계를 독일에 머물고는 한국으로 돌아가서 사직서를 냈다고 한다.

 

 

그래서 지구본을 여러 차례 돌려본 끝에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이 싫어했던 바를 분명하게 깨달았고, 지난해 돌아온 뒤 직장에 사표를 냈다. 가장 큰 이유는 전화를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의 위치를 숨길 수 없는 장소에 있어야 하는 폭력.

 

경향신문, <전업작가로 변신한 배수아>, 한윤정, 2003

 

 

아마 외국에서의 어떤 경험을 기점으로 내재되어있던 무언가가 촉발된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좋아하는 꿈속을 걷는듯한, 현실에서 약간은 붕 떠있는 느낌이 드는 것은 그러한 경향이 두드러진 최근 글들이다. 그녀의 소설은 갈수록 샤머니즘 등 주술성이 느껴져 다소 현실에서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지는데, 난해함의 척도에서 1에서 10까지의 스펙트럼에서 나는 비교적 그 중간을 점하는 7 정도에 있다고 판단되는 『뱀과 물』이 가장 이상적이라 생각한다. 물론 주관적 취향이다. 가장 최근 소설인 『우루는 늦을 것이다』는 나에게도 많이 멀게 느껴졌다.

 

소설의 변화가 궁금해 등단 초기 소설인 일요일의 스키야키 식당을 찾아서 읽어보았는데, 같은 작가가 쓴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달랐다. 하지만 상투적이지 않고, 강렬한 날것의 느낌은 여전히 배수아작가의 글 다웠다.

 

 

 

<뱀과 물> 꿈속을 걷는 듯한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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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체의 여자가 서 있는 흑백의 소설 표지에 끌려 읽은 『뱀과 물』 (작가가 편집자에게 직접 골라서 보낸 사진이라고 한다)은 매혹적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축축하고 음습한 동굴 속을 걷는 느낌이었다. 서로 이어지는 듯 이어지지 않는 여러 편의 단편을 엮은 단편집이다. 첫 번째 단편 <눈 속에서>에서의 아버지를 잃은 아이인 ‘눈 아이’라는 이름은 다른 단편 <노인 울라>에서 눈먼 소녀의 이름이기도 하고, 그 눈먼 소녀는 <눈 속에서>에서 잠깐 뒷모습으로 등장했던 아이이다. 이렇듯, 똑같진 않지만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장면들 이 마치 데자뷰처럼 반복되어 등장하고, 겉으로 봐 선 전혀 연결성이 없어 보이지만 희미한 내적 연결고리에 의해서 이야기들이 이어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런 느낌은 마치 꿈을 꿀 때의 느낌과 비슷해서, 여러 시점을 통해서 풍경을 바라보지만, 마음속의 한 가지 진득한 심상이 있어, 모서리만 맞는 비슷한 이미지들이 나열되고, 극무대에 인물만 바꿔서 세워진 그 특수한 느낌을 독서를 통해서 경험하게 한다. 이 지점이 배수아라는 장르가 나에게 주는 행복함이자 즐거운 착란이다. 어지럽지만 기꺼이 계속 어지러워지고 싶다. 한국소설에서 이처럼 이국적이고 생경하게, 우리가 아는 단어들로 장면을 그려내는 소설가가 또 있을까 싶다. 그녀의 소설의 특별함은 서사의 탄탄함이나 캐릭터의 매력이라기 보단, 낯설게 위치되고 또 반복되는 단어와 장소가 자아내는 신비함과 그로써 점점 선명해지는 유년기의 우울과 기억에 대한 물음이다.

 

배수아의 소설에서 시간의 흐름은 마치 꿈속에서의 시간처럼 한없이 늘어나기도 하고, 고여있기도 하다. 외부의 소음과 시간에서 차단된 신비스러운 동굴 안에 발을 들여놓은 것처럼, 소설 안에서의 시간은 현실의 방해를 받지 않고 독자적인 페이스에 맞춰, 혹은 어떤 이의 조종에 의해 마음대로 움직이는 듯하다.

 

이런 기이한 시간의 흐름 때문인지, 소설 속의 아이는 아이 같지가 않고, 노인 같기도 하고 처녀 같기도 하다.

 

그녀의 책이 받는 평가는 극명하다. 대중들에겐 호불호가 갈린다. 그녀의 글을 다소 모호하고 뚜렷한 서사를 알기가 힘들며, 복문이 많다. 익숙한 작법으로 쓰이지 않았다. 신형철 평론가는 그녀의 책을 추천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녀의 소설에는 상투적인 인물, 상황, 대사, 통찰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배수아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 상황, 대사, 통찰은 오직 배수아의 소설에만 나온다. 그래서 배수아는 하나뿐이다.
 

 

당신이 새로운 독서경험을 원한다면, 꿈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배수아라는 장르에 도전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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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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