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를 걷다
‘본다’가 ‘걷다’가 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다. 영화는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꿈결 같은 풍경들을 눈앞에 펼쳐 보여준다. 그리고는 마치 내가 그 세계를 직접 겪어내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을 선물처럼 안겨준다.
물론 그것은 고작 해봐야 2시간을 겨우 넘기는 찰나에 불과하다. 심지어 그 시간 속에 오직 행복만이 가득한 것도 아니다. 영화 속에서 누군가는 끝내 이뤄낸 성취에 행복해하기도 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결국 이겨내지 못한 슬픔에 허덕이기도 한다. 그렇기에 나는 어떤 영화를 볼 땐 행복 속을 나는 듯 걸었지만, 어떤 영화를 볼 땐 슬픔 속을 기어가듯 걸었다.
그 걸음과 걸음 사이에서, 나는 행복과 슬픔을 배울 수 있었다.
좀 더 나은 행복, 좀 더 아픈 슬픔. 행복인 줄 몰랐던 행복, 슬픔인 줄 몰랐던 슬픔. 행복이나 슬픔이라는 단어만으로는 담을 수 없는 그 무언가에 대해서도. 영화는 그렇게 나를 걷게 했고, 그와 함께 내 삶을 조금 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했다. 거기에 좋은 영화라거나 그렇지 않은 영화라거나 하는 식의 구분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모든 걸음은 항상 나름의 발자국을 남기는 법이니까.
그럼에도 종종 아쉬움은 남았다. 항상 엔딩과 동시에 암전 속으로 몸을 감추는 영화에 대한, 이제 너의 세계로 돌아가라고 꾸짖는 듯한 그 단호함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그 길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또 다른 길과 맞닿아 어우러진다면 또 어떤 새로운 풍경이 완성될 것인지, 나는 늘 궁금했으니까.
그렇기에 고전에서 현대까지, 조지 루카스에서 웨스 앤더슨까지, SF에서 판타지까지. 그 모든 길 위의 순간들을 담아낸 화폭들로 가득한 맥스 달튼의 전시회는 나의 오랜 아쉬움과 호기심을 동시에 충족해주는 진귀한 풍경들의 연속이었다.
세로로 잘라낸 주택의 단면 안에 영화 속의 순간들을 아기자기하면서도 빼곡하게 배치해놓은 작품. 한 감독의 세계관을 각자만의 매력으로 밝혔던 캐릭터들이 한때 관객이기도 했을 관람객들을 마주 보며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담고 있는 작품.
그것들은 하나 같이 내가 그 영화 속을 걸으며 보고 배웠던 어떤 것들을,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버린 탓에 차츰 흐릿해지고 어쩌면 나도 모르게 잊어버리기도 했을 것들을 다시금 떠오르게 해주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영화관을 잘 찾을 수 없게 되어버린 요즘, 나는 정말 오랜만에 영화 속을 제대로 걷다가 돌아왔다. 그 걸음이 또 내 안에 어떤 발자국을 남겼을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굳이 재거나 따지지는 않겠다. 걸음이 딛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듯, 발자국도 남는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일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