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를 환영하는 찬란한 죽음의 세계: 유령신부 [영화]

글 입력 2021.05.15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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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하고 기괴한 환상의 세계를 보여주는 팀 버튼의 애니메이션 영화 <유령신부> 속에는 소심한 성격을 가진, 귀족의 사돈이 되려는 부모님의 야망 섞인 등쌀에 못 이겨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신부와의 결혼을 앞두게 된 예비 신랑 빅터가 등장한다. 빅터는 생선 가게를 하는 부잣집 상인의 아들이고, 그가 결혼하게 될 예비 신부 빅토리아는 몰락한 귀족 집안의 딸이라는 설정이다.


빅터와 빅토리아의 결혼을 통해 이익을 얻으려는 두 사람의 부모님은 첫만남부터 서로를 견제하고 낮잡아보기에 바쁘다. 그런 부모님과는 다르게 빅터와 빅토리아는 이전의 숱한 걱정이 무색하게도 서로가 마음에 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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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 당일 이루어진 그들의 결혼 리허설. 어둡고 우중충한 분위기의 공간 안에서 잔뜩 기죽어 있던 빅터는 서약을 위한 대사를 외우지 못해 애를 먹다 결국 쫓기듯 그곳을 벗어나게 된다. 그것이 문제였던 것일까. 어둠이 드리운 숲을 정처없이 거닐며 결혼 서약을 계속해서 읊조리며 외우던 그가 마침내 완벽하게 리허설을 성공한 바로 그때, 빅터의 삶을 혼란으로 뒤흔드는 인물, 유령 신부 에밀리가 등장하게 된다.


에밀리는 빅터가 자신에게 결혼을 청한 것으로 오인해 지하 죽음의 세계로 그를 데려가게 되고, 이를 시작으로 빅터가 그곳으로부터 벗어나 빅토리아와 무사히 결혼을 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이야기가 화려하고 기묘한 색감의 공간연출, 어딘지 음산한 음악과 함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탄생하여 기괴하고도 사랑스러운 분위기로 보는 이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어떤 죽음 이후의 세계



<유령신부>를 재밌게 느껴지는 지점 중 하나는 바로 이승과 저승의 극명한 대비이다. 보통 이렇게 사후 세계에 휘말리게 되는 이야기들을 보면 결국 대부분의 주인공들이 '그래도 이승이 낫다.'는 식의 깨달음을 얻고 돌아와 행복하게 살게 된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삶에 대한 감사와 안도를 보다 생생하게 전하기 위해 현실 세계에는 갖가지 설정이 세워진다. 사랑이 넘치는 따뜻한 가족과 친구들, 삶에 대한 환희를 돋보이게 하는 밝고 화사한 색감으로 둘러진 이미지 연출 등 주인공이 모험을 끝내고 비로소 완벽하게 다시 현실세계로 복귀했을 때 정말 '돌아왔다'는 느낌을 온 힘을 다해 관객에게 전달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달랐다. 오히려 빅터가 속해야만 하는, 돌아와야만 하는 현실 세계가 더 음산하고 어둡게 보인다. 오로지 집안의 이득을 위해 결혼해야 했던 빅터와 빅토리아. 욕심 많고, 일말의 배려도 없음은 물론 가식적으로 축 늘어진 입꼬리를 바들바들 떨며 올려 웃어주는 부모님들은 머지않아 그마저의 가면조차도 던져버린 채 본색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기 시작한다. 심지어는 집 안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까지도 큰 소리로 외쳐 알리는 타운 크라이어 때문에 갖은 망신을 당하기도 한다.


반면 어쩌다 우연히 끌려들어온 지하세계는 전혀 다르다. 너무 어둡고 우중충해 거의 흑백으로 보이던 현실세계와는 반대로 지하세계는 다양한 색들이 휘황찬란하게 그들을 밝히고 있다. 그곳에서 살고 있는 여러 해골들과 벌레, 시체들은 유쾌하게 술을 마시거나 노래를 하며 그들의 사후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었고, 살아있는 사람인 빅터를 겁주거나 쫓아내지도 않으며 오히려 반갑게 맞이하기까지 한다. 앞서 말했던 삶의 상징이었던 환영과 빛의 세계가 죽음 이후의 세계로 반전되어 보이며 앞으로 빅터와 에밀리, 그리고 빅터와 빅토리아의 관계가 어떻게 회복될 것인지에 대해 주목하게 된다.


이렇게 두 세계는 서로 상반된 저마다의 방식으로 돌아가며 빅터를 혼란스럽게 만들며 상황을 절정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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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은 누구의 몫인가



에밀리는 죽음에 대한 특별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 이는 빅터가 지하세계로 끌려오게 된 것과 연관이 있다. 에밀리의 사연은 지하세계의 흥 많은 해골의 노래를 통해 유쾌하게 그려지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어느 날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진 에밀리는 집에서 결혼을 반대하자 그와 함께 도망가기로 결심했다. 에밀리는 엄마의 웨딩드레스를 챙겨 입고 보석을 몰래 훔쳐와 남자를 기다렸지만 그는 오지 않았다. 그렇게 하염없이 남자는 기다리던 에밀리는 결국 어두운 밤, 그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보석도 빼앗긴 채 유령이 되어 자신의 영혼을 자유롭게 해줄 사랑을 하염없이 기다리게 된 것이었다.


영화를 가만 들여다보면 서로 다른 모양의 필연적 종속이 계속해서 보인다.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반드시 맺어져야 하는 인연과 그런 집안의 이득만을 위해 강요되는 결혼, 자기도 모르게 그야말로 우연히 이루어진 서약과 그를 위한 죽음, 억울하게 맞이한 죽음 탓에 여태껏 놓지 못하고 헤매던 꿈과 같은 것들. 서로 다른 형태를 띄지만 결국 이 모든 것들은 정말 우연이거나, 아니면 의도치 않게 벌어진 인과에 의해 영화 속 여러 인물들의 자유를 제한한다.


따라서 어쩌면 이 영화가 혼돈으로 점철되는 과정은 다만 빅터가 죽음의 세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 기가 막히는 운명의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발버둥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에밀리는 빅터와의 결혼이 이루어지면 자신의 영혼이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자유로워진 것은 과거로부터 해방된 순간이었다. 그를 살해한 남자에게 (의도치는 않았지만) 복수를 하고, 빅터가 원하는 결혼을 할 수 있도록 물러난 뒤에야 진정한 자유를 찾고 나비가 되어 소멸했다. 그 회색빛 도시에 남아 유일하게 빛나는 푸른 날개를 지닌 나비들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을 빅터가 바라보며 영화는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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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에밀리를 자유로 이끈 것은 에밀리 자신이었으며, 그의 발목을 붙잡던 과거로부터의 해방이었다. 동시에 빅터 또한 지금껏 그를 옭아매고 있던 타의를 벗어나 사랑에 의한 결혼을 성사시킬 수 있게 되었으니 이것 역시 그에게는 해방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저마다의 이유로 속박을 풀어낸 인물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마냥 속이 시원하지는 않다. 그래봤자 그들에게는 되돌릴 수 없거나, 어찌할 수 없는 삶의 구속이 기다리고 있을 것을 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에밀리는 잃어버린 삶을 되찾을 수 없고, 빅터와 빅토리아 역시 집안을 일으켜야 하는 존재로서의 목적을 끝끝내 달성해야만 할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단지 화려하고 즐거운 지하세계를 벗어나 지루하고 칙칙한 현실세계에 죽기 전까지 정착해야 한다는 사실이 퍽 판타지스럽지 못하기 때문일수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 법

슬퍼할 필요는 없어

죽음을 피해 도망 다녀도

마지막엔 모두 한줌의 재

 

 

이쯤 되니 그 어떤 해골의 노랫말이 다시금 떠오른다. 결국 한줌의 재가 될 세상의 모든 존재들. 덧없는 생을 어떻게든 이겨내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 해야만 하는 일들 속에서도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내기 위해 분투하는 존재들. 어쩌면 먼지 낀 현실 세계만큼은 판타지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극사실주의 다큐멘터리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에밀리가 떠오르면 마음이 달라진다.


어디라도 매여 있지 않겠다는 생각. 그게 과거든, 타의로 뭉쳐진 선택이든지간에 말이다. 물론 어쩔 수 없는 날이 태반이겠지만 그렇다고 내게 주어진 속박의 굴레에 몸을 맡기기에는 하루하루 빠르게 지나는 시간이 너무나도 아쉽기 때문이다. 어차피 모두 한줌의 재가 될 것이라면, 오히려 매순간에 진심을 다해야만 하지 않을까. 바로 에밀리처럼 말이다.


에밀리는 빅터에게 말했다. 빅터가 약속을 지킴으로써 자신에게 자유를 주었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해방은 셀프다. 누구도 타인을 대신 구해줄 수는 없다. 따라서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에밀리가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결말이 그런 이유로 더욱 빛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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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산하고 기괴하면서도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영화라고 <유령신부>를 정의하고 싶다. 삶과 죽음 사이를 맴도는 빅터의 시선을 따라 가면서도 무겁고 진지하게 생과 사에 대한 주제를 다루지는 않는다. 다만 아주 매력적이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세상의 그 어떤 자유에 대해 가장 아름답게 서술한다.


그렇게 죽음과 자유라는 어울리는 듯하면서도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통해 보는 이들로 하여금 흥미진진한 세계를 상상하도록 만들 것이다.

 

 

[고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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