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생긴 일] 대학생활의 끝에서 (3) 해피엔딩이 될 수 있을까

글 입력 2021.05.12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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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지하철에서 무언가를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버스 및 다른 교통수단에 비해 소음이 크고 사람들의 이동도 잦아 무엇이든 집중하기가 어렵다. 다년간의 통학경험이 있으면 그러한 방해 요소에 무뎌지지 않을까 했지만, 사람과의 접촉은 여전히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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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나마 가장 즐겁고 시간을 알차게 보냈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넷플릭스와 왓챠로 드라마를 보는 것이었다. 재미도 있지만, 영어를 공부한다는 명분도 내세울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바람직한 취미생활인가. 물론 자막을 끄고 보면 그 명분이 더욱 확실해지겠지만, 몇 번 시도했다가 짜증이 나서 그만두었다.

 

그렇게 넷플릭스와 왓챠를 통해 본 드라마가 80여 편 정도 된다. 물론 시즌제 드라마는 각 시즌을 한 편으로 계산한 결과다. 드라마에 따라 조금씩 다르나, 넷플릭스는 일단 시즌 1의 성과를 보고 다음 시즌의 제작을 이어갈지 말지 결정한다. 그래서 여러 시즌이 나온 드라마면 어느 정도는 재미나 의미가 보장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시리즈의 결말이 팬들을 만족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더 많은 회차를 계획하고 뿌려둔 ‘떡밥’이 제대로 회수되지 못하고 급하게 개연성이 떨어지는 결말을 내놓는 경우가 가장 많다. 꼭 시즌제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16부작으로 완결된 줄거리를 제공하는 한국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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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 <스카이 캐슬>은 전 회차에 걸쳐 과도한 입시경쟁에 내몰려 인간이 어디까지 도덕적으로 추락하는가를 고발하는 것처럼 보이다가, 마지막 회에 이르러 이전까지 전달한 메시지를 모두 무효화시키는 허무한 결말을 내놓았다. 때로는 이런 성급한 해피엔딩이 제대로 떡밥을 회수하지 못한 결말보다도 더 무책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만족스럽게 전 시즌을 마무리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는 <굿 플레이스>,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크레이지 엑스 걸프렌드>가 있다. 세 드라마 모두 넷플릭스 시리즈답게 다양한 정체성의 인물과 문화가 어우러지며, 끝없이 다음 회를 재생하게 하는 탄탄한 줄거리로 호평을 받았다.

 

또 세 드라마가 모두 결함이 있는 인물들의 성장기를 그려낸다는 점에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각각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굿 플레이스>는 숨쉬듯 악행을 일삼고 주변 사람들을 괴롭혔던 주인공 엘레노어와 치디, 타하니, 제이슨이 실수로 천국에 떨어지면서, 억지로 착한 척을 하며 천국의 천사들을 속이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인물들은 시즌이 진행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은 중산층 백인 여성으로 특권층의 삶을 살던 파이퍼 채프먼이 애인 알렉스 보즈의 밀고로 감옥에 들어가 생활하는 내용으로, 미국 여성 감옥의 현실을 충격적으로 그린 드라마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크레이지 엑스 걸프렌드>는 하버드 대학교와 예일 대학교를 졸업한 후 뉴욕의 로펌에서 변호사로 승승장구하던 레베카 번치가 캘리포니아에 살던 첫사랑을 만나 돌연 ‘웨스트 코비나’라는 작은 마을로 이사를 가 사랑을 쟁취하려 노력하는 이야기다. 뮤지컬처럼 각 회차마다 두 개의 넘버가 들어가며, 그중 'Don't Be A Lawyer'는 수많은 패러디를 낳기도 했다.


세 주인공은 나라면 감당할 수 없을 만한 위기를 수없이 맞이한다. 감옥에 들어간 첫날부터 밥이 맛없다고 불평했다가 요리사의 미움을 사 도저히 먹을 수 없는 것들을 배식받거나, 살인자라는 누명을 쓴 것에 더해 인터넷에 자신의 사진이 퍼지는 등 아주 사소한 것부터 인생의 트라우마로 남을 일들까지 고통의 정도는 다양하지만, 주인공들은 어떻게든 위기를 헤쳐나간다.

 

세 드라마에 어느 정도 판타지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데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이 위기의 내용이 다분히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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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학년 1학기가 막 끝난 지난 12월에는 ‘졸업’, ‘마지막’이라는 말이 그다지 와 닿지 않았다. 막연히 생각했던 4학년 2학기는 모든 진로 고민이 해결되고, 학생을 대신해 나의 정체성을 설명할 다른 이름이 정해져야 하는 시기였으므로, 그 작업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끝이라는 느낌이 별로 없었다. 떡밥은 많이 뿌린 것 같은데, 뭐 하나 회수가 된 것이 없었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취업 상담을 받았다. 대학교에 들어올 때 그랬던 것처럼 일단은 높은 등급의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돈도 되지 않으며, 자신의 딸이 그 정도의 연봉을 받으면 많이 아까울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취업이나 돈과는 거리가 먼 취미, 동아리, 수업들로 학교생활을 해왔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런 말을 직접 듣고 나니 갑자기 낭떠러지에 선 기분이 들었다.


삶을 살아가는 게 벅차서 견딜 수 없었다. 심장을 조여오는 듯한 압박감에 몸서리치며 온종일 잠을 자는 시간만을 기다렸다. 내 인생의 전성기는 벌써 지나버리고, 이제는 내리막길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학교를 벗어나 평생을 아등바등 허겁지겁 눈앞의 일들을 해치우면서 살아갈 것이 막막했다. 마지막 학기의 불안감은 생각보다 심했다. 더는 이 시리즈를 이어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뒤의 에피소드가 궁금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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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가 행복했던 순간들이 언제였는지, 내가 정의하는 해피엔딩, 훌륭한 엔딩이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했다. 앞서 언급한 세 드라마의 주인공은 ‘그 이후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Happily ever after)’ 하는 디즈니 식의 해피엔딩을 맞이하지 않는다.

 

오히려 높은 확률로 주인공은 또 비슷한 위기들을 맞이하고, 여전히 그 위기를 한 번에 해결할 만능 해결책은 없다는 뉘앙스를 주는 결말이다. 누군가는 망한 인생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는 캐릭터조차도 인생의 모든 부분을 망쳐버린 것은 아니며, 버티고 걸어가다 보면 가끔씩 좋은 순간들이 온다는 메시지를 준다. 또 드라마를 보다 보면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일도 많다.


내 인생 드라마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작품을 돌아보며, 인생이라는 시리즈에서 너무 멀리 있는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정해두고 개연성이 떨어지는 에피소드를 붙이는 일은 그만두기로 했다. 어차피 하나를 해결하고 나면 또 새로운 위기가 오는 것이 이 드라마의 운명이니까. 주인공의 과거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도 아니니까. 실수에서 배우고, 그간의 어려움을 겪어온 것만으로도 나는 많은 성장을 한 것이니까.

 

 

[김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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