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물이 눈에 보이는 것보다 친밀하다 - 마르첼로 바렌기展

마르첼로 바렌기展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
글 입력 2021.05.06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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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퍼 리얼리즘 아티스트이자 세계적인 유튜버인 마르첼로 바렌기의 <마르첼로 바렌기展 - "It's Life"> 전시를 보고 왔다. 집 근처이기에 어릴 적부터 심심하면 나의 놀이터가 되었던 용산 아이파크몰의 6층에 전시관이 자리했다. 1호선과 경의중앙선, 그리고 ITX 청춘과 KTX도 함께 정차하는 용산역에 위치한지라 관람객이 방문하기에 최적화된 곳이라 느꼈다.

 

독립적이고 이례적인 아티스트인 마르첼로 바렌기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나 예술과 건축을 전공했다. 2013년에 그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과일의 조각이나 음료수 캔과 같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들을 극사실적으로 그림으로써 영상을 업로드했다. 그는 일상의 사물을 실제만큼, 아니 실제보다 더 사실적이고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것에 열중해 왔다. 이러한 작품에 대한 지속적이고 뜨거운 열정을 일반인들과 끊임없이 공유한 끝에, 그는 현재 261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게 되었다.

 

 

 

사물이 눈에 보이는 것보다 친밀하다



자동차 사이드 미러에 있는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이라는 문구를 내 나름의 느낌대로 패러디해 보았다. 마르첼로 바렌기가 그린 작품들을 보면, 일상적인 사물들이 우리 생각보다 더욱 가까이 그리고 친밀하게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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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6년전 유튜브에 올린 영상 중에는 '현실 밖으로 튀어나오는 그림?'이라는 제목의 컨텐츠가 있었다. 바로 위 사진에서 보이는 병을 그린 영상이었다. 이 그림을 그리기까지 4시간 반이 걸렸다고 하는데, 놀라운 것은 지우개를 사용하지 않고 논스톱으로 그림을 그려나갔다는 것이다.

 

이 병을 자세히 살펴보면 희미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보이는 병에 비친 배경이 있다. 아무래도 커튼과 창문처럼 보인다. 병에 비춰진 배경을 인식하는 순간, 나는 처음 보는 이 사물에 친밀함과 친숙함을 느끼고 말았다. 그리고 내가 손에 쥐었던 수많은 사물들에 이런 뒷이야기를 포착한 적이 있는지 되물어보았다.

 

 

나는 작업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노출한다. 거짓도 리터치도 없다.

 

 

그가 작품을 그리는 과정의 A부터 Z까지는 모두 유튜브 영상에서 공개가 된다. 4시간 반동안 작품을 그린 여정은 4분 내외의 짧은 영상으로 압축해 볼 수 있으며, 그의 말대로 '거짓도 리터치도 없는' 작업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전시를 통해 영상으로만 보았던 그림들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작품을 둘러보면서 순간적으로 계속 헷갈렸다. '내가 사진전에 와 있는건가..?' 실제보다 더 실제같은 그림들, 현실에서 만났던 사물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사물과 가까이 있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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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물은 각자의 이야기와 아름다움이 있다. 아무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일상의 사물을 표현할 때 그 순수함에 매료된다.

 

 

그는 말한다. 모든 사물은 특유의 이야기와 아름다운이 있는 '순수함'이 있다고. 그리고 그는 그가 그린 극사실주의에 입각한 작품을 통해 사물들이 미처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아, 그는 사물과 인간을 이어주는 번역가같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위 그림에서 보이는 사물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와인잔에 담겨있는 포도주, 그리고 잔에 선명하게 비치는 와인잔 앞의 배경들. 마르첼로 바렌기는 이 와인잔을 그릴 때 '와인잔'이라는 사물 자체만을 그린 것이 아니다. '와인잔이 담는 순간'을 그렸다고 보는게 더 어울릴 것이다.

 

내 블로그의 소개글은 'Seize the moment'인데, '순간을 잡아라'라는 뜻을 담고 있다. 결국 삶은 순간의 연속이고, 순간이라는 점이 이어지는 점-선-면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 마르첼로 바렌기는 어쩌면 나와 비슷한 삶의 가치관을 지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사물을 그려내며 순간을 움켜쥐고, 그 순간을 작품으로써 영원토록 보관하기 때문이다.

 

 

 

천재성 그 뒤에 끈기와 집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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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업의 목표는 보는 이의 감각기관을 교란하는 것이다.

 

 

다른 작품들을 감상하는 것도 놀라움의 연속이었지만 나는 유독 이 '자수정' 그림에 연달아 감탄사를 내뱉었다. 정말 내 눈 앞에서 자수정이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할 정도로 표현과 디테일이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특별히 이 작품은 전시회의 스크린에서 상영하는 비디오를 통해 작업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찰할 수 있었다. 영상을 통해 흰 도화지에서 연필로 처음 테두리를 그리고, 색연필과 펜으로 점차 색을 채워가는 모습을 보니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마르첼로 바렌기가 어떤 기교로 작품을 완성해가는지.

 

처음 1분간은 '어, 나도 따라할 수 있겠는데' 생각했지만 이내 오만이란걸 깨달았다. '그는 천재구나' 느꼈다. 뇌구조와 감각이 일반 사람과는 전혀 다른 무엇임을 확실히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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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렌기는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그림 솜씨를 뽐냈다고 한다. 그는 주로 일상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고. 하지만 그가 다니던 예술학교의 교수들은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그림자는 필요 이상으로 완벽하고, 여백 처리는 이상할만큼 깨끗하다"라고 비판했다고 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렌기는 이러한 비판에 굴하지 않으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존재로 발돋움했다. 그는 남들의 강요를 거부하고 그림을 그리는 테크닉과 관점을 바꾸지 않았다. 대신 그 자신만의 스타일대로 꾸준히 나아갔다.

 

 

그림의 한계와 불완전함은 나의 스타일을 나타내며, 예리한 안목을 가진 사람이라면 내 그림을 알아볼 것이라 믿는다.

 

 

바렌기는 분명 자신이 무엇을 제일 잘하는지, 어떤 순간에 가장 행복한지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한동안 예술의 길과는 먼 곳에서 방황했다. 하지만 결국 실직자가 된 순간에, 그는 자신의 열정을 되살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유튜브 채널을 오픈하고, 방치된 미술 도구를 다시 꺼내 잡고, 수많은 전세계 사람들에게 작품을 공유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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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그린 작품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나와 스쳤던 사물들을 소중히 생각하게 된다. 사물이 놓여진 장소, 배경, 그림자, 빛, 질감, 구겨짐 등 모든 것들이 '별 거 아닌 것'이 아닌 '별 거'임을 깨닫게 된다. 익숙함에 속아 사물의 특색과 이야기를 완전히 잊고 산 건 아닌지 회고하게 된다.

 

더 나아가 사물뿐만 아니라 우리네들 사람의 모습 또한 더없이 귀하고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사물만 바라보아도 그 특유의 개성과 스타일에 감탄을 하는데, 사람이라면 얼마나 더 경이로운 순간을 지닌채 모습을 띠고 있을까.

 

마르첼로 바렌기전은 용산 아이파크몰 6층 '대원뮤지엄'에서 관람할 수 있다. 2021년 올해 8월 22일 일요일까지 만날 수 있으니, 코로나로 인해 일상의 관성에 젖어 지루함을 느끼는 당신이라면 한번쯤 둘러보고 오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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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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