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일을 시작한 지 딱 2주가 되었다. 그리고 오늘은 빨간 날, 쉬는 날이다.

 

일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갖는 쉬는 시간에 전날부터 굉장히 들떴다. '이것저것보다 새벽에 자야지.' 들뜬 마음에 이렇게 생각했지만 5월 4일에서 5월 5일로 넘어가는 새벽 1시가 되지 않아 잠들고 말았다. 누적된 피로로 긴장이 풀린 모양이다.

 

8시 40분이 조금 넘어 씻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일이 조금 있었지만 2시의 약속을 바라보며 즐겁게 끝냈던 것 같다. 옷을 고르는 것도 일이었다. 매일 입던 검은색 슬랙스에서 벗어나 방구석 패션쇼를 열었다. 방이 엉망이 되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크기변환]dress-2583113_1920.jpg

 

 

코로나의 여파로 학교에 못 간 지 어느덧 2년이 다 되었고, 친하게 지냈던 동기들은 모두 고향으로 내려가 우습게도 SNS 친구가 되었다. 인별그램 DM, 카카오 메시지, 이야기는 나누지 않지만, 가끔 '좋아요'로 소통하는 얼굴 책까지. 소통 창구는 다양했지만 그만큼 심리적 거리감은 멀어진 동기들이 적지 않다. 어느덧 DM을 보내기도 민망해진 동기들이 있다.

 

그러던 와중에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고향에서 서울로 잠시 올라와 있다는 친한 동기의 말에 당장 날짜를 잡았다. 평일에 일하니까 이날은 패스, 저 날도 패스. 이날 저녁은? 너무 보는 시간이 적은 데.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게 5월 5일, 어린이날이었다. 이름은 '어린이날'이지만 고맙게도 어린이를 탈피한 성인들도 쉴 수 있는 날.

 

너무 좋아 메시지로 난리를 쳤다.

 

 

 

점심 - 카페 - 저녁, 뻔한 루트, 뻔한 대화, 신선한 재미


 

 

"뭐 하고 지냈어요?"

"나야 뭐 그냥 있었지."

 

 

굉장히 뻔한 대화였다. 음식도 마찬가지였다. 점심은 양식, 카페에선 케이트, 저녁은 한식. 늘 먹던 메뉴이고 늘 하던 대화였지만 그런데도 재미있었던 건, 2년 만에 대학 내에서 '가장' 친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크기변환]drinks-2578446_1920.jpg

 

 

만남은 변수의 연속이었다. 만난 장소는 예상치 못하게 사람이 너무 많았고, 카페는 만석이었다. 휴일이라는 걸 고려했어도 사람이 너무 많았다. 비 오는 것보다는 낫지만, 날은 더웠고 바람은 강했다. 이게 무슨 날씨냐며 한참을 웃었던 것 같다.

 

별거 아닌 일에도 웃음이 터졌다. 대학 입학 후 인사하는 친구들은 많았지만 정작 마음을 터놓을 친구가 별로 없었기에 그랬을까. 가벼운 만남만으로도 속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무엇을 먹든, 무슨 대화를 하든, 어디로 가든 크게 상관없었다. 그저 만남만으로도 좋으니.

 

 

 

어른의 어린이날


 

저녁을 먹고 헤어지며 풍선을 들고 뛰어가는 아이들을 봤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그때는 여기가 아니라 어린이 대공원을 갔었던 거 같기도 하고. 이제는 기억도 안 나는 어린 시절이지만 어린 날의 향수에 젖어 들기엔 충분했다.

 

 

[크기변환]balloons-1786430_1280.jpg

 

 

'우리가 선물을 받던 나이에서 선물을 드려야 되는 나이가 됐네, 우리 뭐 했지.' 이 얘기를 하며 또 웃었다. 최근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그리고 주변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아쉬운 과거를 돌아보곤 한다. 조금 더 노력해볼 걸, 조금 더 해볼걸. 분명 그 시절 난 최선을 다했음에도 남는 건 아쉬움뿐이다.

 

지금 하고 있는 게 잘하는 건인지도 모르겠고, 일단 답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다른 걸 하고 싶지는 않고. 쉽지 않은 고민의 연속이다. 꿈은 점점 작아져 가는데 흔히들 이야기하는 '워라밸'은 포기 못 하겠고, 이것마저도 욕심일까 하는 생각이 눈앞을 검게 칠한다. 문득 이런 생각들이 내 운명을 좌우할 것 같은 느낌마저 두렵게 다가온다.

 

이런 불안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건 축복받은 일이다. 물론 지향하는 바가 비슷해서 그런 것이지만, 한 사람이 이야기할 때 다른 사람은 듣고, 또 다른 사람이 이야기할 때 다른 사람은 듣고. 쉼 없이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그 누구 하나 말을 헛되게 듣지 않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용기를 담은 말은 상대를 기쁘게 만들곤 한다.

 

 

 

아쉽게도 커버린 몸



막연히 노는 날에 불과했던 오늘이 기억 속 최고의 날로 남을 것으로 생각되는 건 서로의 이런 이야기가 묻어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른이 된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어린이라고 하기엔 몸이 너무 커버린 '나'는 가끔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다.

 

완전히 어른이 되고 싶지만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아직은 그늘 속에 있고 싶기 때문인 걸까. 일을 시작해도 어른이 되는 게 아니구나. 괜히 씁쓸함을 느꼈다.

 

작년, 그리고 재작년까지는 '휴강일'에 불과했던 어린이날이 오늘 약간의 어른의 맛을 보았다. 진정한 '어른이 날'이 되는 날까지, 생각하고, 행동하고, 만나려 한다. 정리되지 않은 잡다한 생각을, 내가 원하는 걸, 그리고 내게 정말 소중한 이 사람을.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