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멋진 어른은 굽히지 않는다 - 그랜마 [영화]

글 입력 2021.05.04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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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떤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하는 일은 늘 막막하다. 멋대로 살라고들 하지만, 주위를 보면 삶에는 정해진 모양새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기준은 답답하다고 반항적으로 외치면서도, 나는 범주에서 벗어난 나를 잘 상상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랜마>처럼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들은 아주 소중하다. 내게 선택지가 더 있다는 걸, 그리고 내가 불만족스러운 선택에 안주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려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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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마>의 주인공 엘은 은퇴한 교수이자 페미니스트 시인이며, 레즈비언이다. 영화는 애인과 막 헤어지고 난 뒤 홀로 감상에 젖은 그녀에게 손녀 세이지가 갑작스럽게 찾아오며 시작된다. 세이지는 엘에게 600달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원치 않게 임신을 해서 낙태를 하려고 병원을 예약했는데, 아직 돈을 구하지 못해서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신용카드를 모조리 잘라버린 엘에게도 돈이 없기는 매한가지였고, 원래 돈을 구해올 예정이었던 세이지의 남자친구는 연락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결국 둘은 돈을 구하기 위한 로드 트립을 떠난다.


세이지에게 줄 돈을 구하면서 엘은 오래된 인연들을 찾아간다. 먼저 무료 여성 의료 센터를 찾아가보지만, 센터는 없어진 지 오래고, 두 번째는 자신에게 갚을 돈이 남아있는 한 타투이스트 친구였는데 친구 역시 돈이 없었기에 몇십 달러를 받는 데에 만족해야 했다. 문득 카페를 운영하던 한 친구가 자신이 가진 초판본에 관심을 보였던 것을 떠올린 엘은 책을 팔아 돈을 마련하기 위해 카페로 향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헤어진 연인 올리비아와 우연히 재회한 뒤 심하게 다투고, 예상치 못하게 계획이 틀어지면서 엘은 마지막으로 오래전 헤어진 전남편 ‘칼’을 찾아간다. 그러나 결국 돈을 구하지 못한 둘은 어쩔 수 없이 세이지의 엄마이자 엘의 딸인 주디를 찾아가 모든 걸 털어놓는다. 예약 시간을 간신히 맞춰 병원에 도착한 세이지는 무사히 수술을 받고, 엘 역시 집에 돌아가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600달러를 얻기 위한 엘의 하루를 그린 영화인만큼 러닝 타임은 짧은 편이고, 배경도 화려하지 않다.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톤 역시 잔잔하고 가볍다. 말하자면 크게 돋보이는 것이 없다고 해야 할까? 그러나 이 영화는 돋보이는 점이 없다는 바로 그 부분에서 돋보인다. 어디서나 무겁게 다뤄지는 낙태라는 주제를 일상적인 유머와 대사, 세심하게 고안된 인물들로 풀어낸 <그랜마> 속 엘의 세계에서 아이를 언제, 어떻게 낳고 기를지는 여성이 ‘선택’하는 것이고, 그러므로 낙태 또한 여성의 선택이다. 엘의 세계에서 ‘내 몸은 내가 결정한다’라는 문장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그러한 시선은 낙태를 다루는 엘과 주디의 행동에서 잘 나타난다.

 

임신 사실을 고백하는 세이지에게 단순하게 “그렇구나.”라고 답하는 엘의 반응, 세이지를 탓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단지 ‘무책임했다’고만 말하는 주디의 모습,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세이지의 가족으로서 그녀의 안전과 건강을 가장 먼저 따지는 둘의 태도는 엘이 어떤 세계를 만들어왔는지 보여준다. 여성이 분노, 비난, 또는 경멸과 혐오감 없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낙태를 말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하는 세계, 혐오로 가득 찬 현실에 맞서 싸우며 엘이 평생을 걸쳐 실천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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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주디, 세이지라는 세 인물은 신체적 자기 결정권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여러 세대의 여성을 대표한다. 엘은 레즈비언으로 정체화하기 전,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칼과 결혼했지만, 곧 그를 떠났다. 떠날 당시 칼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지만 칼에게 이를 알리지 않고 낙태 수술을 받았는데, 칼이 엘과 세이지가 돈을 빌리는 목적을 듣고 불같이 화를 낸 이유도 칼과 엘 사이의 이러한 역사 때문이었다. 엘이 낙태를 받은 것은 그녀가 당시에 아이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자 제공자인 칼과는 상관없이 10달 동안 부푼 배를 안고 견뎌야 하는 주체로서 엘은 그것이 스스로의 권리라고 믿었고, 그래서 칼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한편 주디는 정자기증을 받아 딸 세이지를 낳았다. 그 이유는 확실하게 나오지 않는다. 어쩌면 결혼하지 않고 가정을 만들고 싶었을 수도 있고, 남성에게 끌리는 성적 지향이 아니어서였을 수도 있는데,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이런저런 개인적인 이유를 바탕으로 주디가 어느 시점에 아이를 낳아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고, 이를 자유롭게 실행에 옮겼다는 점이다. 세이지는 아직 어리고 미숙해서 ‘실수’를 저지른 인물이다. 엘은 누구나 하기 마련인 실수라고 말하며 세이지를 달랜다. 세이지는 임신이란 두려워할 것도 숨길 것도 아니며, 여성이 원한다면 중단될 수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엘로부터 위로와 격려를 받는다.

 

견고한 여성주의적 세계관과 연대 속에서 엘은 늘 당당해 보인다. 그러나 칼과의 과거나 영화에서 짧게 등장하는 갈등 장면들은 엘의 세계, 즉 여성주의가 외치는 세계가 낙태가 죄악시되는, 여성이 쉽게 ‘걸레’라고 낙인찍히고 마는 불편한 현실과 얼마나 많이 부딪혀왔는지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은 칼에게 사과하지 않는다. 말도 없이 떠난 건 미안하지만, 그 외의 것은 온전히 자신의 선택이었고 그러므로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연락도 받지 않는 세이지의 남자친구를 찾아가 흠씬 두들겨 패주기도 하고, ‘낙태’라는 단어를 큰 소리로 말하자 불편함을 표시하는 이에게 한 방 먹이기도 하는 엘의 단호한 신념은 아마 몇십 년 동안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그건 내게 새로운 선택지였다. 신념이라는 건 중년이나 노년에 들어서 가지기에는 너무 크고 뜨거운 무언가이며, 그렇기에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내가 아끼던 것들을 더 이상 아끼게 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해왔는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열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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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지의 수술이 끝난 후 올리비아를 찾아가 사과하고, 홀로 어두운 거리를 씩씩하게 걸어 나가는 엘의 모습은 ‘살아있음’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는 듯하다. 염세적이고 괴팍한 성미에 친구도 별로 없다고, 자기 생각이 맞다는 걸 자신에게 증명하기 위해 신용카드를 자른 멍청이라고 자조하지만, 굽히거나 지치지 않는 엘의 모습은 한없이 멋져 보였다. 나의 신념이 지겨운 싸움 끝에도 살아서 움직일 수 있다면, 그래서 나도 <그랜마>가 그리는 것처럼 편협하지 않은 세계를 꾸릴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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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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