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태양이 맨얼굴 위로 떨어지는 날까지 [전시]

글 입력 2021.05.04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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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연한 봄 내음이 코를 간지럽히는 오월의 시작이다. 나무의 말라비틀어진 옹이에서도 생기가 흐른다고 착각할 만큼 온 세계가 반짝거린다. 만물이 생동하는 거리를 걷고 있으면 마음이 들뜬다. 역치가 낮아진 탓에 담 위로 흐드러진 덩굴줄기만 보아도 쉽게 행복해지는 것이 조금 멋쩍다.

 

그러나 길가의 꽃을 코끝에 가져다 대고 향을 맡고 싶은, 그런 순간에는 박탈당한 것들에 대한 애도가 치밀어 오른다. 얼굴을 스치는 바람의 느낌을 떠올리려 눈을 감는다. 그러나 아무리 안간힘을 써봐도 그것이 얼마나 좋은 일이었는지 기억나질 않아 마스크 사이로 습기 찬 호흡만 뱉는다. 분명히 황홀한 감각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요즘 날이 좋으면 기쁘면서도 자못 슬퍼진다.

 

얼굴 하안부에 햇볕을 쬘 수 있는 권리만을 잃은 것이 아니다. 많은 상실과 억제와 인내가 공중을 떠돈다. 멸종해야 할 것은 죽지 않고 오히려 가엾은 것들만 계속해서 사라진다.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는 스러지지 않았고,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러나 그것 이외에 달리 위로가 될 만한 변화가 있었냐고 묻는다면 선뜻 입술을 떼기 어렵다. 그저 시간이 참 빠르다고 답하고 싶다.

 

불쾌하게 데워진 숨결과 동행해야 하는 여름이 다시 다가오고 있다. 모든 일에는 끝이 있다고 믿지만, 언제 올지 모르는 해방을 무작정 기다리는 일은 힘에 부친다. 우리는 거대한 것을 바라지 않는다. 있는 힘껏 웃는 얼굴을 마주하고 손을 잡은 채로 해변을 뛰어다니고 싶을 뿐이다. 서랍장에서 새로운 마스크를 꺼내며 오늘도 나는 이 인류 최악의 비극이 언제 종결되는지 궁금하다고 신에게 털어놓는다.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 광장 전광판에서 상영 중인 데이비드 호크니의

'태양 혹은 죽음을 오랫동안 바라볼 수 없음을 기억하라'

(Remember you cannot look at the sun or death for very long)

 

 

이렇듯 팬데믹 시대를 한탄하는 신음에, 5월 1일 서울 한복판에 공개된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의 신작 ‘태양 혹은 죽음을 오랫동안 바라볼 수 없음을 기억하라(Remember you cannot look at the sun or death for very long)’는 경쾌하게 답한다. 2분 30초 길이의 이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런던 중심의 디지털 아트 플랫폼 CIRCA의 기획 하에 총 5개국과의 협업을 통해 성사되었다.

 

서울 프로젝트의 국내 협력은 바라캇컨템포러리가 담당한다. 서울 삼성 코엑스 케이팝 스퀘어와 런던 피카딜리 라이트, 뉴욕 타임스퀘어, 도쿄 유니카 비전, 그리고 로스앤젤레스 펜드리 웨스트 할리우드에서 영상을 감상할 수 있으며, 5월 한 달 내내 송출 예정이다. 매일 오후 8시 21분, 동일한 시각에 호크니의 아름다운 영상을 만날 수 있다. CIRCA 웹사이트에서도 매일 오후 8시 21분(영국 표준시 기준)에 온라인 작품 감상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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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호크니의

'태양 혹은 죽음을 오랫동안 바라볼 수 없음을 기억하라'

(Remember you cannot look at the sun or death for very long)를

감상중인 런던 시민들

 

 

8시 21분을 향한 짧은 카운트다운이 끝나면, “우리 눈에 비친 세상은 어떠한가요?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대형 스크린에 펼쳐질 나의 작품과 마주할 모든 이들이 이를 경험하기를 바랍니다”라며 호크니가 짧은 메시지를 전한다. 이윽고 어두운 새벽의 장막을 느린 장밋빛 손길로 걷어내는, 노란 태양의 작열하는 에너지가 스크린을 뒤덮는다.

 

떠오르는 태양을 마주한 순간, 우리는 잠시나마 모든 근심에서 벗어나 오직 눈앞의 강렬한 형상에만 집중하게 된다. 웅장한 자연을 바라볼 때 느껴지는 벅찬 황홀이 스크린을 마주하면서 되풀이된다. 이내 빛줄기들은 유성우처럼 무성하게 쏟아진다. 왠지 소원을 빌고 싶어지는 풍광에서는 기묘한 경건함마저 느껴진다. 계시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노란 빛무리는 거대한 광휘가 되어 화면을 집어삼킨다. 곧이어 제목과 동일한 작가의 메시지가 화면에 드러난다.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되는 열세 개의 단어는 단단한 위로를 전한다.

 

 

[크기변환]do remember they can't cancel the spring.jpeg

데이비드 호크니의 '봄은 취소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라'

(Do remember they can’t cancel the spring), 2020, 아이패드 드로잉

 

 

살아있는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영국 아티스트 호크니는, 지난 해 코로나 봉쇄로 인해 프랑스 노르망디에 고립되어 있었다. 노르망디에 머무르며 그는 아이패드를 이용하여 일상적인 자연 풍경들을 디지털 화폭에 재현하는 작업에 열중했다. 심오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일상의 장면들은 화려하고 감각적인 색으로 재탄생되어 관람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번 신작은 그의 드로잉들을 애니메이션화하여 비디오로 제작한 것으로, 대형 스크린 상영을 통해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한다. 호크니 특유의 밝은 색채가 주는 생동감은 배가 되어 마음 깊숙한 곳까지 침투한다.

 

작년 삼월에 작가는 덴마크 루이지애나 미술관을 통해 노란 수선화 네 송이가 그려진 드로잉을 공개했다. 그 당시 전한 ‘봄은 취소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라(Do remember they can’t cancel the spring)’라는 메시지를 상기해보면, 작년과 올해의 드로잉이 건네는 메시지가 동일한 목적—희망을 띠며 하나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CIRCA의 설립자 조셉 오코너(Josef O’Connor)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에 빛나는 희망의 이미지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심어주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광고의 향연이 잠시 멈추고, 모든 개인을 하나로 연결하는 이야기가 상영되는 것 또한 큰 의미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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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니가 창조해낸 희망의 형상은 태양이다. 뜨겁게 타오르지만 언제나 하늘 꼭대기에 매달려 있는 것은 아니다. 태양은 움직인다. 마치 꽃처럼 피고 또 진다. 그러나 성실하게 다시 뜨고, 그렇기에 내일이 온다. 죽음 또한 마찬가지다. 상처 위를 덮은 딱지가 떨어지고 새살이 돋아나듯, 고통과 아픔도 언젠간 필멸한다. 생으로만 채워진 세계는 없으며 죽음만이 독존하는 시공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일은 조금씩 더 길고 또 짧은 순간일 뿐이다.

 

삶은 언제나 징그러울 정도로 공평하게 회전한다. 작품 속 끊임없이 순환하는 자연처럼, 호크니는 막을 수 없는 변화의 흐름을 상기시키며 지친 이들을 고무시킨다. 너무도 달라 보이는 두 단어—태양과 죽음이 한데 얽혀 희망차게 포개어진다. 생명을 상징하는 계절인 봄에, 생기를 잃은 이들의 가슴에 숨이 불어 넣어지길 기도한다.

 

기다림 끝에 태양은 다시 우리의 맨얼굴 위로 정직하게 떨어질 것이다. 지나치게 눈부신 햇살 탓에 찌푸려진 사랑하는 이의 양 볼을 쓰다듬을 수 있을 것이다. 정말로, 아침은 온다. 모든 것은 지나가기 마련이다. 호크니의 태양을 떠올리며 불안을 희게 점멸시키는 주문을 외우자.

 

This, too, shall pass a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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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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