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공간과 장소를 누리는 미적 경험 [미술]

글 입력 2021.04.28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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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라는 단어와 장소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은 다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언제나 공간이 아닌 장소에 둘러싸여 있었던 것 같다. 벽이 사면을 야무지게 둘러싸고 있는 나의 방이나 집 앞의 널찍한 놀이터, 가구들로 가득 찬 카페, 조금 싸늘한 공기가 맴도는 지하철역의 중앙광장, 저녁마다 조깅하는 시민들로 붐비는 실개천 옆 트랙과 농구장—이런 일상적인 장소들은 대개 하나같이 동일한 공통점을 가진다. 언제나 존재들로 인한 포화상태에 놓여있어 공간을 온전히 감각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공간은 물질적이면서도 다소 관념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는 공간(空間)을 이루고 있는 두 한자의 뜻에서 착안한다. 빌 공(空)과 사이 간(間). 여기서 ‘빈 곳’은 물리적으로 텅 비어 있다는 의미도 맞겠지만 보다 추상적인, 아무것도 채워져 있지 않은 빈칸의 상태라는 의미가 더 적확하다. 이를 토대로 곱씹어볼수록 ‘공간’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진다. 이 거리감이 당연한 것은 우리 기억 속의 모든 곳은 무엇이 되었건 간에—물질이나 경험 혹은 대부분 둘 다—늘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추억과 서사에 물들지 않은, 백색의 공간을 옛 기억에서 떠올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일상에서 공간을 순수하게 감상할 기회는 거의 없는 셈이다.

 

물질로 꽉 채워진 곳에서는 공간을 구성하는 선과 면, 재료의 물성을 확인하기 어렵다. 시선은 언제나 쉽게 분산되어 다른 지점에 머무른다. 공간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요소들이 산재해 있다. 개인이 발 딛고 서 있는 곳이 기실은 빈(空) 상태였다는 것을 상상하기가 극도로 어렵다. 우리의 탓은 아니다. 건축가가 아닌 이상 누가 건물 안에서 해당 건물의 재료를 궁금해하고 골조를 머릿속에 그려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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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공간이 너무 좋았다는 문장으로 감상을 표현한다. 공간의 무엇이 좋았는가? 공간을 꾸민 오브제들이? 조명이나 채광이? 흘러나오는 음악이? 어쩌면 그 모든 것들이 쌓여 자아낸 분위기가? 그러나 앞서 언급한 요소들은 모두 잘 꾸며진 공간이 가질 수 있는 속성일 뿐, 공간 자체를 지칭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순수하게 ‘공간’이 좋았다는 표현을 쓰는 것은 다소 어폐가 있는 것처럼 들린다. 물론 영역을 채우는 여러 요소 또한 감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임은 자명하다. 다만 본질적인-설계자가 의도하여 빚어낸 태초의 구성상태를 맛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공간 지각 불능성은 인간에게 불가피하다. 공간이 공간감상 이외의 목적으로 설계될 때부터, 기실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이 살아가는 대부분의 곳은 뚜렷한 기능적 목적 하에 설계된다. 공간(空間)은 사람의 흔적으로 덮인 장소(場所)로 변모한다. 장소는 마당 장(場)과 바 소(所)의 결합으로 탄생한 단어로, ‘어떤 일이 이루어지거나 일어나는 곳’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공간(space)이 ‘공(空; emptiness)’의 특성을 가진다면, 장소(place)는 인간과 인간이 보낸 시간, 즉 개인의 맥락과 깊게 관계한다.

 

따라서 장소는 매우 개인적이고 다채로운 구체성을 띤다. 사건과 그 이미지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연속적인 생의 파편들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삶의 순간과 자신을 분리하여 생각하기 어려운 것은, 우리에게 삶이 관찰의 대상이 아닌 자연스러운 시공간의 흐름으로 피부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머무른 3차원의 영역은 대부분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몸을 둘러싼 지리적 실재에 불과하다. 의도적으로 의식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이상, 공간은 인식의 영역이 아니다. 오직 장소만이 인식의 영역에 자리한다. 우리는 자신의 경험을 기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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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세라, Band, Steel, 2006, 153 x 846 x 440 inch, LACMA

  

 

그러나 미적 목적으로 창작된 거대한 공간(공공조형물 등)은 우리에게 새로운 장소성을 선사한다. 관람자는 조형물이 새롭게 생성해낸 영역을 감상하고 거닐면서 개인의 기억을 형성하고, 작품이 자리한 곳은 하나의 장소가 된다. 그러나 장소가 비로소 인식의 범주에 포함되면서—실재하는 공간이 관찰의 대상으로 규정되면서—주변환경과 조형물을 이루는 요소들에 집중하게 되면서 해당 장소는 기존과 다른 성격을 갖는다.

 

개인은 미술관에서 2차원의 회화를 감상할 때와 같은 수동적 감상자에서 벗어나, 장소에 직접 동적으로 개입하면서 상호작용하는 감상방식을 사용하게 된다. 감상자는 더 이상 장소를 무심히 지나치지 않고 세밀한 시선으로 뜯어본다. 이는 작품과 설치된 장소와의 연결성을 찾고 맥락과 의미를 파악하려는 시도로 이어진다. 이 일련의 참여 과정은 개인에게 공간/장소에 대한 인식이라는 낯선 기회를 선사함과 동시에 착실하게 미적 경험을 적립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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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세라, Band, Steel, 2006, 153 x 846 x 440 inch, LACMA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에 위치한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의 작품 Band를 처음 마주했을 때를 기억한다. 거대한 내후성 강철로 제작된 이 작품은 재료의 거칠고 딱딱한 속성과는 달리 아주 얇고 유연하게 물결쳤다. 이완된 곡선들은 굽이치면서 전시장 안에 또 다른 공간들을 생성하고 있었다. 나는 넓고 좁은 공간을 하나씩 정복하면서 강철의 질량, 부피감, 표면에 보이는 색의 그라데이션을 열정적으로 관찰했다. 작품 내부를 휘저으며 근거리 관찰을 시도한 후에는 거대한 외부곡선을 따라 돌며 전체적인 선과 형태를 파악하려고 애썼다.

 

서로 떨어진 섬들처럼 보이던 것이 어느 순간엔 발레리나의 흐트러진 리본 끈처럼 느껴졌다. 자유롭지만 고아한 유동성이 몸을 사로잡았다. 공간이 유려하고 우아할 수 있다는 것을 태어나서 처음 경험한, 완전히 새로운 순간이었다. 나는 비로소 공간을 감각했다고 생각했다. 강철과 나만이 존재하던 공간. 그러나 그 특정한 순간은 곡선을 따라 걷던 일련의 기억 파편들로 저장되어 내게 황홀했던 하나의 장소로 남는다. 하나의 의미를 가진 구체적인 공간으로 변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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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요이 쿠사마, <무한 거울의 방>, 2011, Tate Modern

 

 

나는 이제 예술에서 관람자와 공간 사이의 연결성에 대해 생각한다. 구분을 위해 다소 과격한 이분법으로 두 개념을 나눈 것은 아닌지 조금 두려워진다. 개인의 경험이 공간을 결국 장소로 변환시킨다면, 공간이라는 단어는 예술감상과 어떤 식으로 연결되는지를 자문해본다.

 

문득 추상적 공간에 관한 생각이 튀어 오른다. 예술은 때로 실재하지 않는 완전한 미지의 세계를 창조한다. 하이퍼 리얼리즘과 신화적 판타지 사이를 유영하면서 작가는 순전한 무경험의 공간을 허공에 연다. 이차원의 회화나 영상, 삼차원의 조형물이나 건축을 통해 구현된 공간은 작품과 주변 환경 사이의 관계성을 인식하게 할 뿐만 아니라, 허구의 세계를 맥락 없이 관객 앞에 던져 놓는다.

 

관객은 저마다의 깊이로 몰입하고 공간에 흡수되면서 창작세계를 꿈꾸듯이 탐색한다. 야요이 쿠사마(Yayoi Kusama)의 <무한 거울의 방>을 감상하며 한 번도 목격한 적 없는 우주 속에서 정지해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맥락과 시간이 모두 부재한 공간에서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 수 있다.

 

결국 관람자는 예술작품이 설치된 장소에 대한 개인적 기억, 그리고 작품 자체 감상이라는 허구의 공간 탐색을 통해 장소와 공간 모두를 미적으로 향유할 수 있다. 그러나 공간이 되었건 장소가 되었건,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경험임을 밝힌다. 낯선 공간과 익숙한 장소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겪고 또 생각할 것이다. 그 수레바퀴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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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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