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김이나의 우주 안에서 숨 쉬는 "보통의 언어들" [도서]

글 입력 2021.04.2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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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월 종영한 ‘싱어게인(무명가수전)’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이승윤(30호), 이무진(63호), 정홍일(29호) 등 여러 무명 가수의 등장은 우리를 즐겁게 했다. 반면 심사위원으로 출연했던 작사가 김이나에게 반한 사람들도 많았다. 그가 무대를 감상할 때마다 내뱉는 적확한 코멘트는 시청자들의 공감을 대변했고, 그를 ‘싱어게인의 히로인’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생겨났다.


사실 필자는 이미 유튜브 ‘고막메이트’라는 프로그램에서 김이나의 매력에 빠진 전적이 있다. 주로 연애 상담에 관한 내용이라 TV 방송보다 더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데, 그가 툭툭 지나가듯이 던지는 표현이 좋았다. 사랑을 할 때 드는 모호한 감정들을, 우리가 흔히 쓰는 단어의 조합만으로도 참신한 표현으로 재탄생시키곤 하는 그의 머릿속이 궁금해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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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전작인 『김이나의 작사법』과 달리 신작 『보통의 언어들』 은 그가 쓰는 언어를 작사법으로 한정하지 않았다. 책 뒤편 미공개 발표곡 가사가 실린 것을 제외한다면 그저 직업이 작사가인 사람이 쓴 대중적인 에세이에 가깝다.

 

처음엔 무수히 많은 명곡의 가사를 쓴 작사가의 작품치고는 책 제목이 다소 평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책의 부제로 붙은 ‘나를 숨 쉬게 하는’이라는 미사여구를 곱씹을수록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하긴, 나를 숨 쉬게 하는 언어는 아름다운 가사나 소설의 한 구절이기보다, 주로 평범하고 꾸미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가진 언어일 때가 대부분이니까.


『보통의 언어들』은 세 개의 챕터로 구성되어있고, 각 챕터는 관계의 언어, 감정의 언어, 자존감의 언어로 나뉜다. 좋아한다, 사실 단 한 번도 내가 평소에 쓰는 언어들을 이렇게 여러 묶음으로 분류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그때그때 흘려보내기만 바빴는데, 새삼 언어에도 큰 줄기가 있고, 다양한 가지가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됐다.

 

 

 

관계의 언어



관계의 언어는 ‘좋아한다, 사랑한다’는 기본적인 언어부터 ‘염치가 있다’는 태도에 관한 언어까지 인간관계에서 쓰임새가 있는 표현을 다루고 있다. 프롤로그에서는 파동의 형태에 관련해 언급하며 첫 챕터의 포문을 연다.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에 있어서 서로 다른 주파수가 맞으려면 박자를 맞춰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새로운 관계는 기차의 방향처럼 시간을 따라 앞으로 가고 있지만, 우리는 자꾸만 거기에 거꾸로 올라타 지나간 기억을 본다. 앞으로 펼쳐질 새롭고 아름다운 것들을 놓친 채. 마주 보고 앉아 다른 곳을 바라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두 사람이 만든 새로운 우주는 생명력을 잃어간다. ... 당신은 지금 연애에서 정방향 좌석에 앉아 있는가, 아니면 반대 좌석에 앉아 있는가? -43p

 

곳곳에 움츠러든 곳이 있는 사람들은, 귀신같이 서로를 알아본다. 상처가 하나도 없는 사람보단 나본 사람들이 훨씬 많기에, 우리는 저마다의 빅데이터에 근거해 상대를 대한다. 배려라는 것은 어쩌면 피 냄새를 맡을 줄 아는 감각이다. -75p

 

 

 

감정의 언어


 

감정의 언어에선 ‘부끄럽다, 외롭다’ 등 감정의 상태를 나타내는 언어들이 등장한다. ‘슬프다, 서럽다, 서글프다’라는 표현의 각기 다른 어감이 주는 차이를 설명하기도 한다. 저자는 수많은 경험을 통해 감정은 내 맘대로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임을 인정했다고 했다. 그가 제시한 해결책은 바로, 억지로 누르지 않고 자연스레 곁에 두는 것.


 

감정이 탄생하는 순간을 상상해보면 단어의 속성이 더 와 닿는 경우가 많다. 어떤 감정은 아래에서 위로 나무처럼 자라고, 또 어떤 감정은 위에서 아래로 비처럼 내린다. ... 한 예로 ‘분노’와 ‘용기’는 아래에서 위로 움직인다. ...  반면, 사랑과 행복은 비처럼 내려오는 감정들이다. ... 쓰다 보니 아래에서 위로 오른다고 느끼는 감정들은 크게 터지든 열리든 내가 그 꼭지를 가진 것에 비해,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감정들은 어딘가에서 열린 꼭지 탓이지, 내 것이 아니라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이 감정들은 어떤 형태로 탄생을 했든, 결국에는 유기적으로 물고 물린다. 어떤 사랑은 ‘용기’로 쟁취되고, 그로 인해 ‘행복’을 느끼며, 지켜야 할 사람 때문에 ‘분노’하기도 하지 않던가. -113p

 

 

 

자존감의 언어



서점 매대에서 베스트셀러를 보면 늘 빠지지 않고 있는 책이 바로 자존감에 관련된 에세이집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자기계발서 혹은 ‘힐링’에 관련된 책이 쏟아져나왔다면, 최근 들어서는 단연 ‘자존감’에 대한 키워드를 가진 책의 판매량이 압도적으로 높다.

 

외적 성장에 비해 내적 성장을 이루지 못한 현대인들의 삶을 대변하는 결과가 아닐까 싶다.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들과 나이는 들었지만, 마음은 아직도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는 어른들의 낮아진 자존감을 조금이나마 회복시켜줄 챕터다.

 

 

〈고막메이트〉라는 프로그램을 하게 되면서 알게 된 ‘싱어송라이돌’ 정세운. ... 그는 예능 프로그램에 나갈 때, 음악을 만들 때, 또 부를 때, 라디오 DJ를 할 때 등의 상황에 따라 다른 장가 있다고 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특히 방송을 하는 음악인은 반드시 겪게 되는 정체성 혼란의 시기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결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는 결이 다른 여러 가지 일들을 해내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다고 했다. - 171p

 


저자는 책 속에서 “한 사람은 하나의 우주”라고 언급했다. 독서는 가장 훌륭한 간접 경험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책을 다 읽고 나니 정말로 내가 그의 우주에 잠시 들어갔다 나온 것만 같았다. 누군가가 저 기억의 한 구석, 메모장이나 일기장에 적어두었던 고민 조각을 나열하고, 함께 해결책을 상의한 기분이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앞으로의 나 전부 어느 것 하나 미워하지 않고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한 저자의 초연한 자세가 꽤 부럽기도 했다. 평소 걱정이 너무 많은 나는 아직 자신이 없지만, 노력해보려고 한다. 나를 숨 쉬게 하는 언어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나만의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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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하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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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제이다
    • 기사 정말 좋습니다. 그런데 이상윤이 아니고 이승윤입니다.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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