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앤디 워홀과 더현대 서울 - 앤디 워홀: 비기닝 서울 [전시]

다른 시대, 다른 존재, 같은 이야기
글 입력 2021.04.25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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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아트, 뉴욕, 마릴린 먼로. 세 단어를 차례로 읊어보면 한 사람의 이름이 떠오를 것이다. 앤디 워홀. 나에게 앤디 워홀의 존재감은 딱 이 정도였다. 판화를 찍어낸 그림으로 떼돈을 번 사람. 혹은 수프가 그려진 빨간 통으로 유명한 사람.

 

그 사람에 관심이 없다기보단 팝아트를 좋아하지 않는다. 되려 팝아트의 양극인 순수 회화를 좋아한다. 화폭에 담긴 화가의 필체, 느낌, 인상을 살펴보고 의미를 엮기가 어찌나 재밌는지.

 

하지만 상품을 그린 종이는 어떤 감흥도 주지 못했다. 쨍한 색감, 평평한 표면, 정직한 선, 화가의 아이덴티티가 없는 복제본. 느껴지는 것이 없으니 얹을 말도 없었다. 이런 사람이 앤디 워홀 전시회를 갔다니, 아마 전시를 기대한 건 아닐 테다. 궁금한 건 전시 장소였다.

 

 

 

공간의 이유 — 더현대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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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현대 서울 홈페이지

 

 

올해 2월 말에 개관한 국내 최대 규모의 백화점 ‘더현대 서울’. 백화점이라는 명칭 없는 백화점, 천장의 통유리를 통해 1층까지 들어오는 햇빛, 가우디의 건축을 닮은 유려한 내부곡선, 건물의 중심을 메운 초록 정원. 공간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는 요즘인지라 참신한 건축물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백화점은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 운영한다. 이윤의 극대화라는 최대 목표를 위해 첫째, 편안한 동선보다 제품군의 수를 신경 쓰고 둘째, 고객들이 시간을 체감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 때문에 동선이 불편하고, 시계가 없고, 창문이나 에스컬레이터를 찾기 어렵다. 이곳도 시계가 없던 거로 기억한다.

 

다만 사람이 많은데 적다고 느껴졌다. 동선 너비가 넓어서다. 각층의 천장고가 높고, 무엇보다 채광이 좋았다. 시간의 흐름을 체감할 수 있는 구조였다. 이 말은 곧 기존 백화점들과 경영 전략이 다르다는 것이다.

 

돈은 어떻게 버는가?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물음의 근본은 같다. ‘돈은 누가 쓰는가?’ 돈을 벌고 싶다면 돈을 쓰는 주체들을 모은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물건이든 예술이든 만물에 통용되는 제1 법칙, 사람이 모이면 돈이 모인다. 더현대 서울은 백화점 내 제품과 서비스만 파는 게 아니라 백화점이라는 공간 자체를 판매한다.

 

외관, 내관, 그리고 매장, 서비스, 제품이 하나의 이미지를 공유해야 하는 셈이다. 이쯤에서 첫 번째 전시로 앤디 워홀을 택했다는 점을 짚어보자. 상상해본다. 만약 세잔, 모네와 같은 인상주의 화가의 그림을 내세웠다면 어땠을까? 고풍스럽고 잔잔한, 혹은 짙은 향수 냄새를 풍기던 익숙한 공간이 떠오르겠다. 매력적인 화가들인 건 자명하지만, ‘더현대’를 앞세우는 것치곤 빛바랜 느낌이다.


‘예술은 상업적일 수 없고, 예술가는 돈만 좇아서는 안 된다’는 기존 예술계에 반발한 앤디 워홀과 정형화된 백화점을 탈피한 더현대 서울. 관람자는 앤디 워홀을 통해서 더현대 서울이라는 공간을 다시금 살피게 된다.


대중성과 혁신성을 교집합에 두고 한 사물과 한 사람을 이야기했으니 이제 전시장 내부에서 그를 만날 차례다.




미술의 이유 — 앤디 워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갤러리나 미술관은 독립적인 건물을 지녔다. 종종 미술관의 이름을 딴 카페가 있긴 하다. 다만 미술관과 ‘연결된’ 카페인데도 소비자는 카페와 미술관을 개별 공간으로 인지하기 쉽다. 카페와 예술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일까?

 

그보단 연결점이 없어서가 맞겠다. 미술관의 콘셉트에 맞춰 카페를 구성하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 카페나 메뉴 이름에 미술관 명을 붙인다. 하지만 그건 시늉일 뿐이다. 상업 공간과 예술 공간을 구분 짓기 때문이다. 좀 더 세속적으로 말하자면, '예술로 돈 벌긴 어렵다'고.

 

지금도 이러한 인식이 남아있는데 앤디 워홀이 활동하던 1900년대 후반이라고 달랐을까. 그러니 궁금해진다. 예술도 하나의 상품이라고 생각한 건 어떤 배경에서 나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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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을 연상케 하는 판화와 색채의 화려함 때문일까. 부유한 가정환경을 생각하기 쉽지만 앤디 워홀은 이민자 가정이었고, 가난했다. 미국은 빈부 격차가 극심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건강한 음식의 접근성에서 쉽게 알 수 있다. 한국은 채소의 문턱이 낮은 편이다. 김밥 한 줄로 나름 건강한 한 끼가 가능하다.

 

미국은 다르다. 배고픈 이들이 많은 동네는 아예 채소 가게가 없다. 질 나쁜 음식은 가격이 저렴하고 포만감도 크다. 푼돈으로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상황을 두고 누가 건강식을 먹겠다고 할까. 충분한 수요가 없어서 공급이 없고, 공급이 없으니 소수의 수요는 무시당한다.

 

결국, 이들이 향하는 건 대형 할인점이다. 통조림을 비롯한 가공식품이 선반 위에 즐비한 광경은 그에게 익숙했을 거다. 매일 보는 똑같은 통조림. 똑같은 맛. 똑같은 일상. 여기까진 다소 평범한 전개다. 다만 앤디 워홀은 미술에 관심이 많았고, 그의 어머니 줄리아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를 지지했고, 어린 날의 지독한 경험은 강력한 열망 하나를 만든다. 성공하고 싶다.

 

대개 경제적/사회적 성공을 목표 삼으면 자리에 앉아 책을 펴고 펜을 든다. 하지만 앤디 워홀은 자신의 어머,니 줄리아의 결단력을 닮았는지 좋아하는 일을 계속했다. 그리고 온몸으로 배운 지난 경험으로 의문을 끌어낸다. 일상적인 기호품들은 공장에서 대량생산 되는데 왜 예술만 권위적이어야 하는가.

 

생각을 표현하는 예술이 아닌 생각 자체가 예술이 된, 앤디 워홀의 팝아트였다.


첫 전시회에서 캠벨 수프를 선보이고, 전시는 말 그대로 대박 난다. 그의 예술관에 거부감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중은 앤디 워홀을 지지했다. 해석할 필요도, 의미를 담아낼 필요도 없다.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예술. 즉, 가판대에서 봤던 익숙하고도 흔한 예술이었다.

 

미술품을 하나의 상품으로 만들고, 그 상품의 가치를 높이고, 거액의 돈을 벌었다. 바람 대로 돈과 명예 모두를 얻은 것이다. 전시회 벽면에 이 과정을 한마디로 정리하는 말이 있었다. ‘돈 버는 것이 최고의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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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을 ‘팩토리’라고 명명하며 미술을 돈벌이로 여긴 그를 두고 예술가보단 사업가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전시를 보고 느낀 건 그는 사업가 겸 예술가일지언정 예술가는 맞다고 본다. 그의 미술품은 독창성이 없어서 독창적이고, 그의 목적은 단순하므로 강렬하다.

 

‘예술을 보는 대중의 시선을 바꾸자’ 혹은 ‘예술의 진입장벽을 낮추자’는 대의가 아니라 개인적이고 세속적인 욕망을 추구했던 앤디 워홀. 그 모습을 동경하는 이들이 많았다는 건 결국 잘 먹고 잘살고 싶은 이들이 많다는 방증 아닐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도, 사회적 지위도, 명성도 모두 갖는 삶 말이다.


끝으로, 전시 관련 짧은 이야기를 덧붙인다. 미술뿐만 아니라 음악에도 관심이 많았던 앤디 워홀,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들고 다니며 사람들을 찍었던 앤디 워홀, 어머니인 줄리아와 깊은 유대관계를 나눈 앤디 워홀 등 꽤 사적인 이야기는 전시장 곳곳에 담겼다.

 

또, 미술작품보다 전시장 벽면의 말과 설명문을 유심히 보길 추천한다. 그의 예술 철학을 따라가다 보면, 오디오 도슨트 없이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민트색, 흰색, 분홍색, 노란색, 연두색, 색색의 벽면이 꽤 오래 기억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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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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