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각지대의 사람들 - 영화 '타인의 친절'

글 입력 2021.04.09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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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과 '친절' 사이의 거리를 좁히다


  

'타인'과 '친절'. 이 두 단어의 조합이 아주 자연스러워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는 언제부터, 왜 '타인'과 '친절'이라는 단어 사이에 거리를 두게 되었을까.

 

내 시선이 약간 다른 걸까. <타인의 친절>에 대한 글이나 홍보물을 볼 때 종종 보이는 ‘힐링 영화’, ‘따듯한 영화’와 같은 수식어가 영화에 통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따듯하다면 따듯하지만, 힐링이 된다면 힐링이 되지만, 그렇지만... 하면서, 단어들을 앞에 두고 망설이는 기분이 들었다. 그냥 나는 그랬다.

 

4월 7일에 개봉한 영화 <타인의 친절>은 화려하고 복잡한 대도시, 뉴욕 안에서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타인들의 교차점을 그리고 있다.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인물들은 서로에게서 상처와 위안을 주고받으며 조금씩 자기만의 길을 찾아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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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


 

사각지대. 관심이나 영향이 미치지 못하는 구역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리고 <타인의 친절>속의 인물들이 살아가는 곳이기도 하다. 그들은 사각지대에서 살아가고 있다. 사회의 사각지대, 복지의 사각지대, 그리고 감정의 사각지대.

 

폭력을 휘두르는 경찰 남편에게서 도망친 클라라(조 카잔), 젊고 건강하지만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빈번히 직장에서 쫓겨나 노숙인 생활을 하고 있는 제프(캐일럽 랜드리 존스), 기다릴 사람과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외로움을 일과 용서 모임으로 달래는 앨리스(안드레아 라이즈보로). 그들이 있는 곳이 사각지대인 이유는, 그냥 흘끗 보는 시선으로는 그들의 어려움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클라라와 제프와 모두 젊은 편이고, 건강해 보인다. 누군가는 그들을 보고 나이도 젊은데 저렇게 지내는 것은 온전히 그들의 능력과 노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삶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들이 겪는 어려움은 이미 스스로의 힘으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영역에 있는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클라라는 이미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을 경찰이라는 이유로 신고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사회의 사각지대에 있다고 할 수 있으며, 남편도 신원도 확실하고, 언뜻 타 노숙인들보다 나아보이는 클라라의 겉모습은 그 자체로 복지로부터 그를 멀리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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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는 젊고 신체가 건강한 남성이다. 영화 속에서 그는 경계선 지적지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려진다. 영화가 명확하게 장애를 드러내진 않으나, 그가 겪는 일들은 현실 속 경계선 지적지능을 가진 이들이 겪는 일들과 매우 흡사하다. 직장에 입사했으나 일에 적응을 하지 못해 빨리 그만두게(혹은 잘리게) 되고, 외관상으로는 비장애인들과 다를 바가 없고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에 어떤 배려나 보호도 받지 못한다.

 

제프조차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문제는 자신조차 볼 수 없는, 누구도 들여다 보지 않는 사각지대에 있었기 때문에. 결국 제프는 직장에서 잘린 후 집세를 제대로 내지 못해 살던 곳에서도 쫓겨나 추운 날 노숙을 하다가 병원에 실려 가고 만다. 후에 이 일은 그가 앨리스를 만나고, 새로운 삶과 일을 찾는 계기가 되어준다. 그리고 이 때 앨리스와 만나게 된 제프는 앨리스로 하여금 스스로를 위해 살아가도록 돕는 계기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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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는 간호사로 일하면서 교회 용서 모임을 주관하는 인물이다. 영화 등장인물 중 가장 타인에게 보살핌과 친절을 베푸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의 노력은 반드시 다른 친절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그가 끊임없이 삶의 중심을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두려고 하는 이유는, 첫째로 그가 스스로를 귀히 여기지 않기 때문이고, 둘째로, 그가 매우 외로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밖으로 집중을 돌리지 않으면 자신의 외로움과 공허함을 직면하게 되기 때문이다. 너무나 흔하게 평가절하 되는 간호사라는 직업과 교회 용서 모임의 주관자라는 위치는 타인들이 그의 외로움을 살피지 못하게 한다. 그렇기에 앨리스는 감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그런데 사실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은 영화의 주요 인물들 뿐만이 아니다. 클라라가 아이들을 데리고 머물 곳을 찾다가 한 여관에 들어갔을 때이다. 클라라에게 있는 것이라곤 남편의 명의로 되어 있는 차 한 대와, 아직 어린 아들 둘, 그리고 자신의 몸뿐이다. 머물 곳도 아는 사람도 없는 그녀는 타인의 친절에 기대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클라라는 데스크 직원에게 이렇게 사정한다. “좀만 봐줘요. 잃을 것도 없잖아요.” 직원은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제 직업을 잃죠. 제 방을 잃고요.” 누가 ‘다정과 친절은 체력에서 나온다’고 했던가. 이 도시에는 사람도 사연도 너무 많다. 발 디딜 틈 없는 대도시에서 나의 방이라도 가지기 위해 이미 고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타인을 위해 베풀 체력이 남아있지 않다.  알고 보면 우리 모두가 각자의 사각지대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모두 타인이다


 

그래서 나는 영화 <타인의 친절>을 단순히 ‘힐링 영화’라고 부르기가 어려웠다. 결말로 ‘힐링’ 받았으니 ‘힐링 영화’이라고 이름 붙이고 넘어가는 데는 무리가 있다. 그 훈훈한 결말 속에는 꽤나 첨예한 문제의식이 있고, 영화가 전개되는 내내 현실과 사회의 문제점을 똑바로 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영화를 ‘힐링 영화’, ‘따듯한 영화’ 라고 부를 수 있다면, 사각지대에 놓인 인물들을 결국 그 사각지대로부터 빠져나오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물들의 어려움과 타인에게 친절하지 않은-친절할 수 없는-사람들을 보여주며 삭막한 현실에 집중하지만, 동시에 그 어려움들은 '타인의 친절'로 하나둘씩 해결되어 간다.

 

그 과정이 결코 순탄하다고는 할 수 없다. 이런 세상에서는 친절을 베푸는 것만큼이나 받는 것도 어렵다. 그렇기에 사람이 사람에게 건네는 손길은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정말 '이런' 세상이기 때문에.

 

한 편 영화는 왜 우리가 현실에서 서로에게 친절해지기가 어려운지까지도 알려준다. 관객들은 등장인물에게 친절하지 않은 타인을 보며 씁쓸함과 약간의 분노를 느끼지만, 한 편으로 그들의 모습이 현실 속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가 없음을 알게 된다. 나아가 영화가 제시하는 ‘타인에게 친절하기 어려운 이유’를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용서하게 된다.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의 특징은 겉으로 보기에는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 사람이 지금 어떤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관심을 더 기울여야 한다.  영화는 타인과 타인이 교차하는 자리에 무엇이 남을 수 있는지를 알려주고, 내 몸 챙기기가 힘들어 삭막해지는 이 팍팍한 현실 속에서도 타인에게 친절해져야 하는 이유를 제시해준다. 결국 나 또한 타인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또 다른 타인일 뿐이라는 사실과 함께.

 

그래, 우리는 모두 누군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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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세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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