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꿈꾸는 일은 착시가 아니니까 - 피넛 버터 팔콘

글 입력 2021.04.08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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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은 요양원에서 탈출하고 싶다. 비슷하게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다. 같은 풍경만 보고 싶지 않다. 그곳은 ‘요양’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자유를 누릴 수 없게 한다.

 

수차례 탈출을 시도하는데 번번이 붙잡힌다. 도주 시도가 누적되면 ‘위험군’으로 분류돼 더 삭막한 시설로 이동해야 한다는 엄포를 듣고 나서도 멈추지 않는다.


잭의 꿈은 레슬링 선수가 되는 거다. 10여년 지난 레슬링 비디오를 매일 재생하는 까닭도 그래서다. 그러나 시설 내 사람들은 잭의 꿈을 묻지 않는다. 꿈은 물론이고 미래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가족이 버린 다운증후군 환자의 미래란 시설을 옮기며 정해진 일과를 보내는 것뿐이다. 잭은 그런 삶이 싫다. 자기에게 무언가 묻는 사람들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그의 도주는 룸메이트의 도움으로 성공한다.


타일러는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다. 자신이 형을 죽였다고 생각한다. 발각돼 대가를 치러야할 게 뻔한데도 다른 어부의 구역을 침범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자해하는 것처럼 그 일을 반복한다. 두들겨 맞고 욕 듣는 일을 자처한다. 종국에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장비에 불을 지르고 도망친다.


그는 도망가는 과정에서 자기 배에 숨어든 잭을 만난다. 잭은 뻔뻔하다. 급류에 토사물을 뱉는 와중에도 자신을 비디오에 나온 레슬링 학교에 데려가 달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무시한다. 훨씬 어린 아이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잭을 구해주고, 자초지종을 들은 뒤부터 동행에 나선다.

 

연민인지 동정인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인지. 그것보다도 별 이유가 없다. 아량을 베풀어 잭을 ‘도와주겠다’는 의지의 발로가 아니다. 타일러의 태도는 이 여정에서 잭이 곁에 있으면 재미있겠다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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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장애인과의 관계를 다루는 지점에서 인상적이다.

 

타일러가 잭을 대하는 모습은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시설 내 보호사나 가족과 다르다. 열등한 존재라고 간주하거나 시혜를 베푸는 자세는 없다. 타일러는 잭을 친구로 본다. 레슬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게 필요하냐며 잭의 미래를 궁금해 한다. 타일러에게 장애는 결핍이나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정체성이다.


사회는 장애를 ‘교정’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혹은 당연히 장애인에게 도움이 필요할 거라 전제한다. 비장애인과 유사한 행동거지가 되게끔 훈련시키고, 그렇지 못하면 ‘보호’를 이유로 시설에 가둔다. 장애를 기준으로 정상과 비정상을 가름하는 셈이다.

 

인종이나 성별처럼 선택할 수 없는 것인데도 그렇다. 특정한 유형의 인간만이 사회에 섞일 수 있다는 식이다. 영화는 장애를 둘러싼 시선, 장애인의 자립을 위해 왜 탈시설이 필요한지에 대한 담론까지 이끌어내지만 피상적인 수준이다.


둘의 여정이 시작되고 난 뒤부터 영화는 ‘꿈’같다. 돈한 푼 없이 뗏목을 타며 목적지까지 이동하고 배고프면 농지에서 작물을 주워 먹는다. 길바닥에서 노숙하는 생활이 이어지는데 표정은 밝다. 만나는 이들은 친절하다. 잭을 찾으러 나선 요양사 엘리너 마저 타일러에게 설득당해 이들의 여정에 합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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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링 학교의 교장 솔트 워터 레드넥은 학교가 망한지 10년도 더 됐다며 난색하지만, 잭이 보고 싶어했던 레슬러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그가 꿈을 이루는데 도움을 준다.

 

다운증후군을 앓는 이와 자신에게 가혹한 이가 우정을 맺으며 서로를 치유해가는 과정이라기엔 그들이 처한 현실을 깊이 있게 다루지 않는다. ‘말도 안되게’ 낭만적인 구간이 많다.


꿈에서 깰 때가 됐다는 듯이 현실의 문제가 닥친다. 영화는 이 여정이 도피와 다를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종종 던진다. 꿈과 도피는 어떤 면에서 비슷하다. 타일러가 불 지른 장비의 주인인 던컨은 그를 추적하며 이를 갈고, 맞닥뜨리면 그가 저지른 일이 얼마나 문제적인지 환기한다. 잭 역시 시일 내 요양소로 돌아가지 않으면 지켜야할 규율이 훨씬 많은 시설로 이동해야 한다.


영화는 끝내 꿈꾸는 일을 변호한다. 잭과 타일러와 엘리너는 더 큰 여정에까지 함께한다. 던컨은 어떻게 됐는지, 잭의 처우는 해결됐는지 등이 생략됐지만 이들은 웃는 얼굴로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 그 얼굴은 좀 꿈 꿔도 괜찮을 거라고, 다 잘될 거라고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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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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