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낯섦 속 친근함의 미학 - 딴소리 판

광대 탈놀이 <딴소리 판> 리뷰
글 입력 2021.04.06 20:3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포스터_딴소리판.jpg

 

 

판소리를 직접 공연장에 가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을 만큼, 한국인이지만 서양의 공연예술에 익숙하고 한국의 전통 연희는 매우 낯선 필자이다. 하지만, 공연이 시작하고 나서 곧 그 낯섦 속에서 한국인으로서 느낄 수 있는 친근함이 있었다.

 

이에 본 공연을 낯섦 속 친근함을 유발하는 부분을 중심으로 논평해보고자 한다.

 

 

공연사진_2.jpg

 

 

광대 탈놀이 <딴소리 판>은 암행어사가 아닌 아맹거사로 나타난 몽룡이 춘향에게 사랑 아닌 밥을 구걸하며 시작하는데, 몽룡과 거지들이 함께 판소리 다섯 마당 속 판을 깨고 비틀며 깽판 치는 내용을 담았다.

 

"거지거지 그런 거지 인생사 다 그런 거지"라며 팍팍한 삶 속에서도 숟가락을 들고 장단을 치며 유쾌하게 살아가는 광대 거지들의 모습은 근심 걱정을 잊고 한바탕 웃을 수 있도록 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야기로 시작하나, 몽룡의 신분이 달라져 있다. 또한, 고수가 북을 두드리고, 그 멜로디에 소리꾼이 창을 한다. 항상 오케스트라가 있는 공연만 보던 나에게 이런 단조로운 멜로디는 퍽 낯설었다. 하지만, 이 단조롭지만 단조롭지 않은 북소리(장단 변화)는 곧 창과 혼연일체를 이루며 관객을 몰입하게 했다.

 

 

공연사진_6.jpg

 

 

극의 전체 내용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춘향전을 시작으로 심청가, 적벽가, 수궁가, 흥보가로 전개되며, 마지막은 다시 춘향가로 돌아와 수미상관 구조를 띠며 극이 마무리된다. 하지만, 공연의 주제가 ‘판 깨기’인 만큼 각 판에서의 이야기는 기본적인 등장인물만 동일할 뿐, 내용 전개가 전혀 다르게 진행된다.

 

각 이야기의 주인공에게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 아니라 거지들에 초점이 맞춰진다. 거지들은 이야기의 중심 골자들을 파괴할 뿐 아니라, 그들이 직접 극중극을 펼친다. 이때, 흥보가와 같은 판에서는 사물놀이를 중심으로 공연을 펼치는 반면, 수궁가에서는 궁중 연희이므로 이에 맞춰 악기를 바꾸어 분위기를 다르게 전환한다.

 

그들이 비록 판을 깨서 이야기의 골자는 달라져 낯선 느낌이 드나, 곧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문제(무상급식, 갑질 등)를 꼬집거나 유행어(“빡치네” 등)를 사용함으로써 우리가 친근함을 느낄 수 있게 한다.

 

또한, “가만히 있으니깐 가마니로 보이나?” 등과 같이 관객들에게 익숙한 언어유희와 “어제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등의 노래를 부르며 관객들에게 친밀함을 느끼게 한다. 특히, 수궁가에서 용궁 애국가를 부르는데, 한국의 애국가를 변형하여 부름으로써 관객에게 웃음을 유발할 뿐 아니라, 마치 관객이 용궁에 속해있는 듯한 느낌을 유발하기도 한다.

 

 

공연사진_3.jpg

 

 

극을 보다 보면, 왜 판을 깨고 다니는 주체가 ‘거지’인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다. 거지는 어느 집단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으며, 심지어 가족조차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이 그들을 어디에든 자유롭게 속할 수 있게 하며, 누구나 될 수 있게 만들며, 떠돌아다니며 판을 깰 수 있는 조건을 만든다.

 

관객은 ‘거지’라는 등장인물에 처음에는 낯섦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 쉽게 감정이입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사회의 모습을 비추는 순간, 우리는 그들에게 감정 이입할 수 있게 될 뿐 아니라, 그들의 존재가 친근하게 느껴진다.

 

5개의 판이 존재하지만, 등장인물 중 어느 누구도 의상을 갈아입지 않는다. 단지, 소품이 추가될 뿐이다. 거지들은 모두 남성이지만, 남성과 여성 의복을 섞어서 입고 있다. 또한, 소리꾼은 선비 옷을 입고 있다. 극의 시작부터 끝까지 의상이 한 번도 바뀌지 않는 점과 의상에 상관없이 여러 등장인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 낯설었다.

 

하지만, 그 자체로 충분함이 느껴졌다. 화려한 의상과 무대 장치 없이도, 그들은 그 자체로 온전했기 때문이다. 서양의 공연예술에 익숙한 필자에게 낯선 공연양식이었지만, 그들의 모습을 통해 단순한 것이기에 오히려 어떤 것으로도 변모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들은 서양형식의 공연예술을 보는 관객들과 태도가 달랐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으며, 극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필자는 이런 관객의 능동적인 참여 형태가 낯설었지만, 곧 이런 관객의 참여가 무대와 관객 간의 장벽을 허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국 전통 연희는 관객과의 소통을 매우 중요시하며 그들과 함께 극을 만들어 간다. 이러한 관객의 능동적인 태도를 경험함으로써, 극의 본질적인 기능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전통공연에 익숙하지 않아 '낯섦 속의 친숙함의 미학'이라고 했으나, 전통공연에 익숙했던 사람에게는 역으로 '친숙함 속 낯섦의 미학'이 된다. 이런 측면에서 본 공연은 양자 모두에게 이색적인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소정 명함.jpg

 

 

[김소정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81956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1.04.11, 22시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부일로205번길 54 824호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1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