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모두가 있지만 '아무도 없는 곳'

글 입력 2021.04.01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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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은 마음의 이야기를 통해 관객에게 대화를 건네는 영화, '아무도 없는 곳'을 감상하고 온 리뷰입니다.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창석'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창석이 미영과 유진, 성하, 주은을 만나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들로 전개됩니다. 모두 저마다의 아픔과 상실, 외로움을 이야기하고 창석은 이를 들으며 내면의 변화를 겪어요.

 

영화 '아무도 없는 곳'은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 속의 행인이 되어 인물들의 대화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인물의 상황과 내면을 명확히 보여주지 않아서 대화의 내용과 겉모습을 통해 이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느끼는 감정에 대해 상상하도록 만들어요.

 

그래서인지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갈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성하는, 주은은, 유진은, 그리고 창석은 그다음에 어떻게 했을까?' 였습니다.

 

 

 

상실과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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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석이 만나는 4인은 모두 상실의 아픔을 겪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모두에게서 창석은 죽음을 듣게 되고요. 먼저, 미영과의 대화에서 창석의 아버지의 죽음이 언급됩니다. 묘한 위화감을 풍기는 미영과의 대화에서 우리는 창석의 부모님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미영이 고개를 기댈 때 우리는 그 위화감의 정체를 알게 되죠.

 

창석은 위로나 걱정의 말 대신 미영이 기댈 수 있도록 묵묵히 어깨를 내어줍니다. 이것이 첫 번째로 비춘 미영의 상실과 죽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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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인 유진과는 두 사람이 제법 오랜만에 만나 반가움의 대화를 나눕니다. 맥주를 마시고, 거리를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창석은 유진의 전 남자친구에 대해 듣게 되죠.

 

담배에 얽힌 이야기라며 시작하다 유진이 낙태를 했다는 말도 듣습니다. 이 영화에서 창석이 듣게 된 두 번째 죽음이죠. 유진은 그리워하고 잊지 못하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느 정도 털어낸 듯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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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엔 성하를 만납니다. 성하는 창석을 굉장히 반가워하며 신기한 듯한 눈으로 바라봐요. 그는 시한부 아내의 이야기를 창석에게 하며 실낱같은 희망을 절박하게 붙들고 살아왔음을 말합니다.

 

하지만 도중에 아내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고, 텅 빈 표정으로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말하는 성하는 아내의 끝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듯 보이기도 해요. 바로 이 장면에서 성하에게 들은 그의 아내의 죽음이 세 번째 상실과 죽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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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바텐더인 주은을 만납니다. 손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시를 쓴다는 주은에게 창석은 지어낸 이야기인지 사실인지 모를 이야기를 주은에게 해줍니다. 여기에서 주은은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 기억 일부를 잃었고, 이 기억을 손님들의 이야기로 채워 시를 쓴다는 말을 해요.

 

주은은 창석에게 타투로 덮인 흉터를 보여주며 흉터와 한쪽 눈도 그 사고에서 다친 것이라고 담담히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창석이 듣게 된 네 번째 상실의 아픔이에요. 그녀를 죽음의 문턱까지 이르게 한 사고에 대해 흉터를 덮은 타투처럼 계속 덮어두고 아파하지 않고 당당히 보여주는 주은의 태도에서 이를 극복하고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어요. 나아가 타인의 이야기로 자신의 빈 자리를 채워나가는 모습에서 그녀는 타인을 보듬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느꼈습니다.

 

위의 인물들이 이야기한 것이 모두 사실인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저마다 아픔을 갖고 있으며 나름의 방법으로 이를 견디며 살아왔음을 알 수 있어요. 창석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무언가를 느꼈을 것이고, 생각의 변화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도 없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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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감상할 때, 제목을 계속 되새기며 보았습니다. '계속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는데 왜 아무도 없는 곳일까?' 생각하면서요. 흐름에 몰입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제목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지 의문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영화를 본 후에도 '아무도 없는 곳'이 의미하는 바가 명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었어요. 하지만 도입부에서 미영과 대화를 나눌 때, 미영이 만들어진 이야기를 어떻게 믿느냐고 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이 부분이 영화 전체에 적용되는 말이었어요. 우리는 이들의 상황을 알지 못하고 대화만 듣고 있기에 진실과 거짓을 판정할 수 없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영화 속에서는 인물들의 외로움과 아픔으로 인해 그들이 '아무도 없는 곳'에 놓인다면, 관객에게는 창석이 지어낸 이야기와 듣고만 있기에 진실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 '아무도 없는 곳'일 수 있을 것 같다고 어렴풋하게 생각했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저마다 아픔을 겪습니다. 하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이겨내는 것으로 보여요. 누군가는 희망을 붙잡고, 누군가는 덤덤해지려 애쓰고, 누군가는 극복하는 방법으로요.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큰 의지가 없어 보였던 창석은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희망을 품고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창석이 모두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으로만 보였지만 변화하는 창석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거꾸로 다른 이들이 창석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느낌이 들었어요.

 

마냥 밝은 내용도, 희망찬 결말도 아니지만 그렇기에 등장하는 모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되고, 계속해서 상상하게 되는 영화였어요. 인물들끼리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것이 아닌, 관객이 이를 듣고 계속 생각함으로써 비로소 완성되는 듯한 결말이기에 저는 창석, 성하, 주은, 유진 모두가 나름의 방식대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살아내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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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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