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누가 누구를 관찰하고, 공격하는가 - 아무도 없는 곳

어둠과 빛이 즐비하는 경계 속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글 입력 2021.03.31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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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영화를 같은 날 두 번 본 대만 영화가 있다. 그 후 한 번 봤던 영화를 굳이 다시 영화관에서 볼 기회가 없었는데 <아무도 없는 곳>이 영화관에서 두 번 볼 영화가 될 것만 같다. 김종관 감독이 극장 관람을 염두에 두고 제작한 영화라 그런지 시작하자마자 주위에 미세한 고요가 들리지도 않을 만큼 스크린 속에 집중됐다.

 

요 근래 이렇게까지 집중해서 본 영화가 있나 했을 정도로 온 신경을 몰두했는데, 뭐랄까. 나에겐 이 영화가 굉장히 어려웠다. 이 어려움은 단순히 스토리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단순한 의미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주인공 창석이 미영, 유진(편집자), 성하(사진가), 주은(바텐더)를 만나면서 죽음과 상실이 퍼뜨리는 어둠의 공기를 느끼며 어느 지점에서 빛을 찾을 수 있었는지에 대한 생각을 꿰뚫어 보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 곳>은 밝은 기운이라곤 하나도 볼 수 없다. 어둠이 밑에서부터 위까지 덮여있는 작품이다. 그런 배경을 가지고 있는 4명의 사람들을 만나 창석은 캐묻거나 반문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들의 입을 열게 만든다. 그 후 자극을 받아 창석 또한 이제 어딘가 얽히고 얽혀진 짐을 내려놓고 싶어 한다.

 

이는 창석이 창작자의 관점에서 볼 수 있었기에 어두컴컴한 그림자 영역에서 빛을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어둠을 볼 수 있는 자가 빛을 볼 수 있다고 하듯, 늘 우리 곁에 있는 죽음과 삶에 대한 경계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는 창석의 태도가 그가 그를 다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원동력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김종관 감독은 공간 안에서 대화를 만들어내는 것에 세심한 공을 들인다. 특히 대화 신을 구성할 때는 ‘누가 누구를 관찰하고, 공격하는가’로 접근하는 구성을 좋아한다고 한다. 감독의 전작 <최악의 하루> <더 테이블>등을 보면 두 사람의 대화 형식 안에서 여러 실험적인 면모를 보여줬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나오는 창석과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지켜보면 상당히 밍밍하다. 한 사람의 일방적인 에피소드를 창석이 묵묵하게, 또 말없이 들어주고 있는 시간이 길기 때문이다. 이 지점 때문인지 오히려 이 영화가 가슴 깊이 진동을 울렸다. 어느 순간부터 대화라는 행위 자체가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고, 너무 어렵다고 판단한 시점에 대한 가려움을 긁어줬기 때문일까.

 

대화의 공백이 있으면 안 된다는 어떤 압박감 때문에 상대가 하는 말을 차분히 들으려는 것보다 대화 도중 또 다른 대화를 이어갈 주제를 생각해내기 바빴다. 어느 정도 속도감 있는 대화의 템포가 안정적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대화의 공백이 주는 여운을 유심히 지켜볼 기회가 생기니 확실히 더 편안하고 안정적이라는 것을 느꼈다.

 

이 또한 감독이 이런 상황을 의도적으로 연출을 했다기보다는 지금까지 감독이 추구해왔던 관계 속에서의 익숙해진 템포가 시나리오에서부터 촬영의 전 과정 안에 자연스레 녹아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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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석 역을 맡은 연우진 배우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처음 캐릭터를 준비하는 동안에 이 역은 알쏭달쏭 어려웠다. 그러다 감독님과 위스키를 한잔했는데, 재즈 음악을 들으며 옆을 바라보는 감독님의 얼굴이 주는 이미지가 마치 내가 계속 고뇌하던 창석과 비슷했다. 감독님이 영화에 담고자 하는 이미지가 이런 것이구나 하고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우리 둘은 말이 많은 편은 아닌데, 함께 있을 때 침묵과 고요가 내 마음을 정화시킬 수 있었다.” (씨네 21)

 

김종관 감독의 평소 일상에 대한 비움 미학이 <아무도 없는 곳>에 깊게 잘 파고든 것 같다. 여백을 억지로 꾸며냈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 자체로도 넉넉한 대화라는 것을 관객들에게 인지시켜주기에 마땅했다.

 

일대일의 대화는 주로 테이블을 앞에 두고 이야기가 오고 갔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장소는 창석이 미영과 카페에서 만났을 때다. 길거리에 돌아다니면서 쉽게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카페의 안과 밖의 속도가 확연히 다르게 느껴지는 공간이 궁금증을 유발했다. 분명 이 또한 감독님의 의도가 들어 있을 텐데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 장소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했다. 인테리어에서도 느낄 수 있지만 약 40년 정도 된 공간으로 보이며 주 고객층도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다. 카페 안에서 투명한 문밖을 바라보면 사람들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향해서 속도가 빨리 움직이지만, 이 카페 안에서만큼은 속도라고 표할 수 없는 공간의 기운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이 시대의 공중전화박스처럼 그 자리에 묵묵히 서있지만 (현재는)‘아무도 없는 곳’이자 (미래에는)‘진짜 아무도 없는 곳’으로 변할 수 있는 공간에서의 경계는 삶에서 가지고 갈 영역이라는 뜻을 의미하는 바 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살아가는 공간에서 경계를 두고 살지 않는 창석, 미영, 유진(편집자), 성하(사진가), 주은(바텐더). 그리고 그들과 접점이 있는 우리들. 우리와 겹쳐지는 그들이 카페 외의 다양한 공간에서 말을 더 맛깔스럽게 할 수 있도록 들어주러 가는 것은 어떨까 살포시 권유해본다.

 

 

 

조우정-아트인사이트 명함.jpg

 

 

[조우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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