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는 뭐가 되어가고 있을까

결과 없는 과정에 갇힌 거면 어떡하지
글 입력 2021.03.31 07:4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나는 뭐가 되어가고 있을까


 

 

어렸을 때부터 꿈이랄 게 없었다. 남들은 저마다 무엇이 되겠다는데 나는 딱히 진로랄 것도 없이 생각 없이 적당히 흘러갔다. 좋아하는 게 없는 것도 아니고 관심사도 있지만 그걸 업으로 삼을 생각은 한 적이 없다. 재능이 없어서 자신이 없었다. 노력하기엔 내 단점이 뚜렷해서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해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에 반박 없이 수긍했다.

 

그 수긍에 후회도 아쉬움도 없다. 여전히 좋아하는 글을 쓰고 손을 움직이면서 무언가를 만든다. 소일거리 삼아 돈을 벌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벼운 푸념이지 진심은 아니다. 그냥 능력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지난주에는 전 직장 사람들과 저녁을 먹었다. 나는 누군가의 상사였던 적이 없고 내 밥그릇 챙기지도 못하는 나부랭이라서 몰랐는데 팀장님은 팀장이라서 팀원들이 회사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많은 걸 신경 써주셨다. 나도 모르는 내 업무능력을 파악해서 업무분장을 하고 제 역할 다 해서 당당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사람이 뒤에 있었다. 집에 와서 대화를 곱씹다 보니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뒤에서 챙겨줘도 제 밥그릇 하나 챙기지 못하던 나는 지금 뭐가 되어가고 있는 거지.

 

**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끝이 있는 일에 한정된다. 결과는 없고 과정만 있는 일이라면 사절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뭘까. 내가 어떠한 과정을 지나가는 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러다 뚝 끊기고 결말 없이 끝나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지 않은 거 인정한다. 내가 나태해서 번듯한 무언가가 없다는 거 납득한다.


직업은 그렇다 치자. 근데 나는 좋아하는 일도 제대로 못 하고 있다. 책상 위에 널브러진 뜨개와 자수 용품들. 무엇 하나 완성된 게 없다. 지난번에 올린 에세이는 마음에 들지 않아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보다가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그냥 마무리했다.

 

그래서 최근에 알게 된 SF를 쓴다는 펜팔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토로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네가 말한 대로 남이 쓴 거랑 비교하지 않는 게 좋은 거 알지만 그게 잘 안된다고. 얘기하다 보니 안 풀릴 때는 자학하는 것보다 내가 잘했던 내 만족감을 다시 들춰보는 게 좋다는 걸 알게 되었다. 크고 작은 미완성이 많고, 완성이 결여된 최종본이 많아서 크게 위로는 되지 않았지만.

 

**

 

태생적으로 계획이랑 거리가 멀다. 내가 계획을 짜는 건 해외여행 가려고 준비할 때밖에 없다. 그때는 동선 다 짜고 이동 시간도 다 따져가면서 분 단위로 계획표를 만드는데 일상에선 그렇게 못 한다. 계획표에 나를 넣는 일이 진저리나게 싫다.

 

강제적이더라도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게 나를 위한 방향이라는 걸 알지만, 세상엔 변수가 많고 나는 가능성의 문을 열어두고 살고 싶어서 계획을 거부해왔다. 근데 상황이 이러니까 내 행동에 의심이 생긴다. 내가 유연하게 대처하려고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지 않은 건지, 싫다고 앞뒤 따지지도 않고 내팽개친 건지, 나에게 없는 게 계획이었지 생각은 아니었던 거 같은데. 후자면 내 인생 좀 큰일 날 거 같은데.


나는 나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정확하게는 ‘나는 괜찮은 사람이지만 그 생각이 틀릴 수 있다. 하지만 틀리지 않게 노력하면서 살자.’는 것을 마음에 품고 살고 있다. 하나가 의심스러우니 연달아 몰아친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며 살아온 게 맞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괜찮은 사람이 아닐 리 없는데 당장 눈에 보이는 것, 손에 쥐고 있는 것 하나 없으니 마음이 초조해지는 게 사실이다. 내가 결과 없는 과정에 갇혀 있는 거면 어떡하지. 그런 거면 얼른 출구 찾아 나가서 다른 과정에 진입해야 할 텐데.

 

**

 

며칠 전 적금 하나가 만기 되었다. 작년의 나는 티끌을 모으기 시작했고 올해의 나는 조금 더 큰 티끌을 마주했다. 사람 사는 것도 이렇게 눈에 보였으면 좋겠다. 여기서 저기까지 선 그어놓고 그대로 가면 뭐라도 나오는.


사람 사는 것도 그랬으면 좋겠다. 눈에 보이든가 손에 만져져서 안심할 수 있게. 삶이 터널을 통과하는 것처럼 컴컴하지 않다고 해서 막막하지 않은 건 아니니까.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4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