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미술관의 향기를 배달해드립니다

글 입력 2021.03.29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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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현의 오 다흐 꽁떵포헝은 미술관 향기 키트이다. 이 키트의 이용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동봉된 미술관의 향을 맡으며 미술관에 온 듯한 감각을 환기한다. 그다음 작품의 이미지를 보면서 A, B, C 향을 차례대로 맡는다. 그중 작품과 가장 잘 어울리는 향을 고른 후, 간단한 이유와 함께 설문을 제출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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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키트를 체험하는 내내 나는 웃음이 터져서 입을 씰룩거렸다. 미술관의 향은 정말 미술관을 떠올리게 했다. 향에 대한 특징이 없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종이 냄새와 은은한 향긋한 향긋함이 정말로 입장권과 팸플릿을 챙겨 전시장으로 향하는 자신을 상상하게 했다.

 

그림을 향으로 대면하는 것 역시 신선했다. 온라인으로 대면하던 그림들이 나에게 해소해주지 못했던 단절감이 풀어지는 느낌이기도 했다. 한 편으로는 오프라인에서의 전시 감상과 전혀 다른 새로운 체험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비대면이라는 하나의 요소 역시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게 재밌었다.

 

이 향기 키트에 대한 경험을 기록해보려 한다. 나에게 향과 작품은 어떻게 연결되었는지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을 공유할 것이다. 누군가의 감상과 전혀 다를 수도, 혹은 공감될 수도 있다. 작가의 의도와도 다를 수도 같을 수도 있다. 다행히 향은 그만큼이나 주관적인 것이니 어떻다 해도 괜찮을 것 같다. 향과 작품을 함께 상상하며 읽어 주시길 권한다.

 

 

 

1. 'Towards-김보희'와 어울리는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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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 대한 홈페이지의 정보 중 한지에 그려진 작품이라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 한지에 그려진 그림은 왠지 다 비슷한 냄새가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동네 서예실에 다닌 적이 있었다. 노인정 안에 들어가 있는 작은 서예실이었다. 그곳에 가면 항상 같은 할머님들이 계셨는데, 꼭 같은 시간에 오셔서 세 시간이고 네 시간이고 그림도 그리고 선생님과 수다도 떠셨다. 나보다는 좀 어린 동생들도 많았는데, 어느 서예실이 다 그렇듯 어린이들은 다들 시끌벅적했다. 그다지 정숙하고 평화롭기만 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다정하고 단란한 곳으로 기억한다.

 

나는 거기에서 글씨도 배우고 그림도 그렸다. 판본체를 쓸 줄 알았고, 난치는 법을 배웠었다. 미술책에서 봤던 난초 그림들은 하나도 감동적이지 않았는데, 내가 집중해서 그린 난초는 무척 감동이었다. 나름대로 붓 가는 데마다 심혈을 기울여 그린 진지한 그림이었다. 할머님들과 선생님이 칭찬해주시면 나는 신나서 엄마 아빠도 보여드리고 방에도 붙여 두었다.

 

그곳에서 본 누군가의 모란꽃 그림은 이제 겨우 난 몇 개 그려본 내 마음을 뛰게 하기에 충분했다. 채색도 되지 않은 미완성인 그림이었지만, 그 그림이 주었던 임팩트를 나는 오래도록 기억했다. 한지와 먹으로 그린 그림들을 더는 시시하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서예실을 항상 좋아했다. 한지의 포슬포슬한 냄새와 쌉쌀한 먹 냄새도 좋았고, 서예실 한구석에 내 이름 달린 붓이 대롱대롱 매달려 나를 기다리는 것도 좋았다.

 

한지에 그려진 이 작품은 이런 미약한 연결고리만으로 순식간에 내 어린 시절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나에게 이 그림은 필연적으로 서예실의 냄새와 연결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가장 쌉쌀하고 달지 않은 향을 골랐다. 푸릇푸릇한 그림과도 잘 어울리지만, 한지와 먹물 냄새 가득했던 소중한 서예실과도 잘 어울리는 향기였다.

 

 

 

2. '노란풍선-김영섭'과 어울리는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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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보고 느끼는 감상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인 것 같다. 어디선가 감상에는 자신의 마음이 투영되기 마련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스피커 사이 흔들리는 노란색 풍선. 작가의 의도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풍선이 애처롭게 느껴졌다. 실로 묶여서 어디 도망갈 데도 없이 스피커 사이에서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스피커에서 큰소리라도 한 번 빵하고 난다면, 터져버릴 것 같아서 불안했다.

 

내가 놀랐던 건, 다른 사람들이 이 풍선을 어떻게 느꼈는가였다. 내가 그랬듯, 이 향기 키트를 받은 다른 분들도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감상과 선택한 향을 올려 두었다. 궁금증에 해시태그를 검색해 다른 분들의 감상을 찾아보았다. 둥둥 뜬 풍선, 노란색이라는 요소에서 누군가는 보름달을 떠올렸고, 다른 누군가는 가벼운 나른함을 느꼈다. 신기하게도 이런 감상을 떠올린 사람 중에는 나와 같은 향을 고른 사람도 있었다.

 

위태위태해 보이는 풍선을 보며 나는 가늘지만, 어딘가 찌르는 듯한 향을 골랐다. 그런데 이걸 맡고 누군가는 달고 안락한 향이라고 느꼈다니, 이걸 맡던 당시의 내 코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감상만큼이나 향에 대한 느낌도 사람마다 천차만별인 모양이었다. 심지어는 감상과 향에 대한 매치 역시 천차만별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한편, 나에게 노랑풍선은 왜 불안감으로 느껴졌는가. 사실 아마도 나의 상황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이렇다 할 또렷한 답이 없는 취업준비생. 졸업을 앞두고 있으니 조만간 실업 인구로 분류될 것이 뻔하고, 코로나 19로 채용 시장이 어떻다는 이야기는 이제 더는 감흥이 없다. 내가 불안하니 괜히 저 풍선도 불안해 보이는 것이다. 내가 거슬리는 게 많으니 향도 괜히 편치 못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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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이미지와 향기가 만나니, 확실히 떠오르게 하는 생각의 양이 풍부해지는 것 같았다. 키트를 체험하기 전까지, 이미지가 향으로 해석될 수 있을지, 특히나 해석된 향에 공감할 수 있을지에 대해 조금은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역시 시각과 후각은 기억의 지배를 손쉽게 받는 것 같다. 현재와 과거의 어떤 기억들이 금세 되살아나면서 이미지와 매치할 향을 찾는데 확신이 들었다. 나의 공감을 확실하게 받는 향이 세 개의 선택지 안에 놓여있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다.

 

이 글은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을 둔 감상일 뿐이고, 어떤 그림과 향을 상상하였든 실제로 맡아보면 터무니없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데도 향기를 통한 작품에 대한 경험은 개개인에게도 공유하기에도 충분히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다. 개인에게는 나 자신을 들여다볼 기회를 준다. 공유하기에 좋다는 건, 사실 그냥 재밌어서 그렇다. 우리가 서로 얼마나 다른 감상을 하고 살아가는지 확인해볼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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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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