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들이 살아갈 작은 섬이자 커다란 세상인 바뢰이 섬에서 - 보이지 않는 것들

글 입력 2021.03.28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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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은 밤늦게까지 비가 세차게 내리고 강풍이 섬을 크게 덮쳐 큰 위험이 뒤따르는 이곳이지만, 또다시 봄이 찾아온다면 이따금 변덕스럽게 찾아온 차가운 바람이 곧 따뜻한 공기로 바뀌어 이곳에 잔잔함을 몰고 온다.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폭풍우 같은 상황을 늘 상 익숙한 듯 대처하고 치열하게 싸워나가는 마틴, 한스, 마리아, 잉그리드, 바브로가 그들의 성을 따라 이름 지어진 바뢰이섬에 살아간다.

 

 

아무도 섬을 떠날 수 없다. 간단히 말하면 섬은 곧 우주고 별은 눈 아래 풀 속에서 잠을 잔다. 하지만 간혹 섬을 떠나려고 시도하는 이들도 있다. 동풍이 거세지 않은 날에 말이다.

 

- 24p

 

 

이 책은 각 단락마다 작지만 커다란 바뢰이 섬의 모습과 함께 위기를 헤쳐 나가는 이들의 모습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그러면서 어린 잉그리드가 시간이 흘러 미래에 대한 혼란스러움을 거쳐 강인하게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함께 전달해 주기도 한다.

 

사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땐 조금 어렵게 느껴졌다. 굉장히 깊이 있고 신선한 표현력들이 이야기 속에 가득했지만, 섬에서 위기를 헤쳐 나가는 그들의 이야기가 섬의 외지인인 나에겐 조금은 낯설었고 겪어보지 않았기에 어려웠다. 하지만 잇따른 섬에서의 상황, 때에 따라 느껴지는 감정들에 대한 표현들이 나를 그들의 상황에 공감하고 이해하게끔 만들어주었다.

 

 

 

바뢰이 섬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감정 묘사력


 

 

어른들의 얼굴은 돌을 조각해놓은 것처럼 냉랭했다. 그들은 속삭이고 눈썹을 한일자로 모으고 웃어 보려고 했지만 가식적이라는 걸 스스로 잘 알아서 분위기가 한층 더 무거워졌다. - 58p

 

라스는 잉그리드를 슬쩍 살피고 마리아에게 시선을 돌렸다가 멈췄다. 너무나 골똘히 생각한 나머지 머릿속 톱니바퀴가 끽끽거리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였다. - 161p

 

일종의 절망이 한스의 인생에 찾아와 흰자위에 걱정을 드리웠다. 예측할 수 없는 위험한 징조이고 부자연스러운 위험이었다. 이런 여름의 끝은 어떤 모습일까? - 165p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놀랐던 부분이 그들이 느낀 감정을 우리가 공감할 수 있게 묘사했다는 점이다. 위에 적힌 문장들뿐만이 아니라 그가 쓴 글들은 우리가 그들이 처한 상황을 상상하게끔 만들어 내가 그들의 표정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게 만든다.

 

아이들이 힘들어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도 누구나 쓰는 간결한 문장이 아닌 ‘더웠고, 눈앞에 붉은 회오리가 보였고, 팔이 떨리고 등이 타는 것 같았지만’과 같은 문장을 통해, 우리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듯 그 아이의 상황을 떠올릴 수 있게끔 만들어준다. 그리고 마치 우리가 어지러울 때나 멀미를 할 때 느껴지는 메스꺼운 기분도 함께 느껴지게끔 한다.

 

그렇기에 이 책의 묘사력은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다.

 

 

 

죽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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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선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각각 다르게 표현해 준다.

 

 

라스는 울부짖으며 눈앞에 보이는 것을 닥치는 대로 부숴 버렸다. 한스는 말이 없었다. 바브로는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조용히 흐느꼈다. 마리아의 얼굴은 가뭄에 동물들이 죽을까 봐 걱정할 때처럼 굳고 핼쑥해졌다. 그리고 잉그리드는 어떤 슬픔은 자신이 아는 다른 슬픔보다 더 사무친다는 사실을 알았다. 잉그리드는 부두 창고 근처 해머로 가서 커다란 손이 나타나 자신을 바다로 쓸어버리고 파도가 숨을 앗아 가길 바랐지만 물속에 뛰어들 기력도 없고 육지에서 끝낼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저 온 마음을 다해 흐느꼈다.

 

- 171p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맞이한 그들의 기분은 ‘슬퍼했다.’와 같이 단순히 표현할 순 없다. 저자는 그렇게 표현할 길 없는 깊고도 허무한 감정을 때론 솔직하게 행동으로 표현해 보여주었고,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이 열심히 쌓아올린 마음속 깊은 공간을 누군가 무너트려 절망에 빠진 것처럼 표현하였다.

 

그저 단순히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해 펑펑 울고 슬퍼하며 무너지는 모습만 보여주기보단 그 사람의 빈자리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리워하고, 애틋해하며, 마음을 정하지 못해 헤매는 그들의 모습들을 모두 솔직하게 보여주어서 좋았다.

 

 

 

섬사람으로서의 잉그리드


 

 

잉그리드는 더는 나무 자르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아서 레프세를 굽고, 소젖을 짜고, 크림을 분리하고 치대서 달콤한 치즈와 피클 같은 고메를 만들고, 실을 잣고, 뜨개질을 하고, 노를 젓고, 수영을 했다. 이제는 거의 모든 걸 할 수 있었다.

열두 살에 잉그리드만큼 많은 걸 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 149p

 

 

마틴, 한스, 마리아, 바브로를 보며 자랐기에, 그리고 섬에서 살아가는 이들이기에 남들보다 좀 더 빠른 나이에 보고 자라는 것들이 있었겠지만, 어찌 됐든 잉그리드는 부딪히는 파도를 위험이나 위협으로 보지 않고 수단이자 해결책으로 보는 그런 강인한 아이였다.

 

그렇게 어릴 적부터 남들보다 빠르고 영민한 그녀이지만, 그녀에게도 한스의 죽음 후 미래를 향한 수많은 두려움과 시련이 찾아왔고 자신의 존재 자체에도 의문을 갖는다. 그리고 점점 그녀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 것만 같고 외부인 같은 느낌이 들어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잉그리드는 지금까지 기적을 부르기도 하는 침묵을 한스와 마리아에게 배웠다. 그렇게 침묵을 하며 힘든 순간들을 혼자의 힘으로 견뎌내고 위협이 가득한 이 섬 속에서 이겨나간다. 이 책에서 보면 ‘섬 사람들은 절대 두려워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나와 있다. 물론 그저 육지에 사는 사람들과는 다른 험난한 조건에서 살아온 이들이기에 용기 있는 모습을 당연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들이 지닌 고민을 털어놓기보단 침묵을 유지하고 독립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는 그들이 조금은 안타깝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크고 작은 시련들을 통해 성숙해져갔고, 스스로가 섬의 주인으로서 이 섬을, 그리고 스스로의 삶을 이끌어나갈 수 있도록 용기를 주며 그렇게 다시 살아나간다.

 

 

 

보이지 않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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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할 수 있는 시간이 반으로 줄었지만 어쩌면 하루 안에서 새로운 날이 다시 주어진 것이라 가족들은 낫을 들고 작업에 들어갔다.

 

- 274p

 

 

이렇게 이 책은 ‘어떻게 끝났다.’라고 명확히 명시하기보단, 위 글처럼 현재진행형으로 끝을 맺어 앞으로 나아갈 그들의 이야기를 우리가 상상하고 짐작하게끔 한다. 잉그리드의 행복한 어린 시절부터 어른이 되어 섬의 주인이 되기까지의 그녀의 모습과 섬의 이야기를 생생한 묘사력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해 주었다.

 

지금까지 마틴과 한스에게 일어났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녀의 섬에서의 인생은 험난하고 보이지 않는 것들로 가득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만의 작은 세상인 바뢰이 섬 속에서 그녀는 분명 때론 거칠고 힘겨운 폭풍우 속에서도 그들과 함께 자신들을 지켜나갈 것이다.

 

앞으로 끝없이 펼쳐질 넓은 세상을 향해 더 큰 꿈을 꾸고 나아갈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살아나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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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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