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간이 비로소 인간이 될 때, '데인저러스 메소드' [영화]

글 입력 2021.03.27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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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영화는 다양한 관전 포인트를 갖기 마련이다. 실제와 허구를 어느 정도의 비율로 배합했는지, 인물이 남긴 물질적 증거들 사이의 공백을 어떻게 채워냈는지, 그 안에 어떠한 감정적 서사를 부여했는지 등. 영화를 더욱 잘 읽어내는 기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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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데인저러스 메소드>는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정신과 의사이자 저명한 심리학자였던 칼 융, 그의 스승이자 학문적 라이벌이었던 정신분석학의 대가 프로이트, 그리고 그들의 임상 실험 대상이었다 후에 아동 정신학 전문가가 된 여성 사바나 슈필라인이 그 주인공이다.

 

프로이트와 융, 사비나의 관계는 흔한 멜로 드라마의 구조를 취하지만, 이들 사이에 촘촘히 들이찬 지적 긴장감은 서사에 남다른 매력을 심어준다. 그들 각각의 정신분석학적 의견과 실제 일상적 행위와의 괴리, 성심리적 태도 등을 고려해보면 영화는 분명 단순 치정극보다 많은 것을 담고 있다.

 

머리 싸움을 하는 것은 세 인물만이 아니다. 이를 지켜보는 관람객 역시 이들의 사생활을 관조하며 이들 역시 정신분석학적 프레임에서 언제든 벗어날 준비가 된 그저 '인간임을' 깨닫게 된다. 그 열쇠를 찾는 일은 분명 영화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이다. 아래는 이를 바탕으로 주요 인물들의 심리성적 태도를 나름대로 분석해본 결과이다.

 

 

 

칼 융과 지그문트 프로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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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융이다. 융은 프로이트가 주창한 성심리적 발달 단계의 구조적 모순에 의문을 가진다. 모든 것을 성적인 근간으로 설명하려는 그의 주장에 반기를 드는 것이다. 그는 프로이트와 달리 과학적인 접근과 초자연적인 접근에 동시에 관심을 가지며, 역사/사회적 맥락에서 형성된 정신적 요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프로이트와 사상적 갈등을 겪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영화에서 다소 과학지상주의적 태도를 드러내는 프로이트에게 융의 의견은 학문으로 발전되지 못하는, 그저 샤머니즘적인 신화일 뿐이었을 테니 말이다. 이는 정신분석학이 과학의 지위를 얻지 못했던 당시 학문적 분위기를 고려한다면 더 이해가 용이하다. 개인적으로 영화의 흐름이 프로이트의 심리성적 사유의 타당성을 증명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융이 시도한 ‘대화치료법’이 위험한 이유는 환자가 치료를 행하는 의사에게 감정을 전이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의사가 환자 애정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의 흐름 상 그것은 어김없이 현실이 되었고, 일부일처제를 고수했던 융은 모순적이게도 환자와 관계를 맺게 된다. 그 환자가 바로 사바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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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의 성심리적 태도는 다양한 승화 과정, 즉 아내와의 성관계를 포함한 일상의 안전함과 꾸준한 지적 연구 등을 통해 조절되어 왔다고 느꼈다. 하지만 이것이 좌절되면서 그는 일종의 정신적 외상을 입게 되는데, 현 정신의학적 문제는 과거의 성적 좌절 및 방황에서 비롯된다는 프로이트의 성심리적 사상과 맞닿은 부분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융의 슈필라인에 대한 사랑은 스스로의 욕망을 인식하고 받아들였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슈필라인은 융의 환자였으나, 또 다른 측면에서는 그를 정신분석학자가 아닌 그저 '인간'으로 계몽한 인물이기도 하다. 둘의 관계는 이처럼 수평적이기 때문에 그들의 사랑이 피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그것이 불륜이라는 점에서 완전히 옹호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사바나 슈필라인, 영화의 주제와 맞닿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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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사비나 슈필라인의 경우이다. 그녀가 성도착적 증세를 극복하고 뛰어난 학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의 마조히즘적 욕망을 이해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환자로서의 사바나는 인간으로서의 그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것은 융과는 정확히 반대의 과정을 거친 결과이다. 융은 자신의 존재와 유리시켜 건조한 심리학적 탐구를 지속하다 사바나의 존재에 심리적 방황을 겪는다. 그러나 사바나는 스스로의 인간됨을 받아들인 후 이를 지적 탐구의 밑거름으로 삼았다.

 

우리는 무엇이기 이전에 먼저 인간, 나 자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지점이다. 사바나는 융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 이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중요한 매개체로 작용한다.

 

사바나와 융이 친구뿐 아니라 연인으로서 욕망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연구했기 때문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지니고 있는 한계를 지적할 수 있었다. 가족주의적인 사상으로만 정신분석학과 지식을 이해했던 프로이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마련했음에 그들의 관계는 큰 의미를 가진다.

 

앞서 그들의 사랑이 필수불가결했다 언급한 또 다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둘의 사랑은 개인적인 영향력을 넘어선 힘을 가졌다는 것을 영화는 100분의 러닝 타임 동안 끊임없이 서술한다.

 

 

 

오토 그리스, 본능을 끌어 안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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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가장 강렬한 인물이었던 오토 그로스이다. 몇 씬 등장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서사의 추동에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그는 프로이트의 설명에 입각하면 성욕기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인물처럼 보이는데, 의사인데도 불구하고 일에 있어서도 철저히 본능적 쾌락에 몸을 맡긴다는 점에서 그렇다.

 

도발적이고 본능적인 그는 환자들의 파격적인 욕구를 모두 충족시켜주는 방식의 치료법을 채택한다. 개인적으로 그가 쾌락원칙을 현실원칙으로 대체하지 못한 성심리적 태도를 지녔다고 느꼈다. 쾌락을 추구하는 인간 본능이란 그 자체로 숭고하며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그의 생각은 외적 규제에 억눌려 본능을 들여다보는 것에 소홀하게 된 우리의 초상에 대해 사유 거리를 제공한다.

 

여타 도덕적인 문제는 존재하지만, 그가 의사와 환자 사이에 정상과 비정상의 계급적인 태도를 고착화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의 테라피의 가치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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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세 인물의 성심리학적 태도가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영화 <데인저러스 메소드>는 정신분석학이 과학과 의학의 한 분야로 공고히 자리잡은 오늘날 색다른 시사점을 제공한다. 욕망과 섹슈얼리티, 세 인물의 정신분석학적 관점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지표들이 곳곳에 심어져 있다.

 

2011년 처음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홍보사는 '파격적인 19금 영화', '정신분석가의 은밀한 사생활' 등의 자극적인 캐치프레이즈를 앞세웠었다. 그러나 이러한 묘사는 영화 <데인저러스 메소드>만의 지적 긴장감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한다.

 

다양한 비판점 역시 존재하긴 하나, 영화 <데인저러스 메소드>는 역사에 기념비적으로 남은 정신분석학이 어떻게 구조화되어 왔는 지를 드라마화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스스로를 임상 실험 대상화한 정신분석가가 관찰과 경험을 통해 산발적으로 얻은 것들을 이론의 형식으로 체계화하는 과정이 드라마적으로 펼쳐진다는 점에서 충분히 매력있는 작품이다.

 

 

[오송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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