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모두의 패션 - We All Wear [패션]

글 입력 2021.03.26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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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은 대칭이다. 오트 쿠튀르에 대한 반란은 스트리트 패션을 만들었다. 부유한 자들의 테일러링에 대한 반항으로 테디 보이가 태어났다. 지나치게 사치스러워 모든 것이 넘치는 스타일에 대한 반작용으로 미니멀리즘이 태어났다. 뭐든지 한 가지가 태어나면 그에 대응하는 것이 태어나며 균형을 이루던 것이 패션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어느 한쪽도 소외하지 않고 모두를 포함하게 되는 것이 패션이었다. 지금도 패션은 그렇다.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소외당하는 이들에게도 함께 하자는 손을 내밀었다.

 


 

나이키 고 플라이 이즈; NIKE Go Fly E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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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via NIKE Official Website

 

 

나이키에서 새로운 신발을 출시했다. 신발 끈이 없다. 손을 쓸 일도 없다. 발을 넣으면 제 알아서 내 발에 맞춰 변한다. 디자인도 썩 나쁘지 않다. 레트로 느낌의 SF 디자인이다. 우리 부모님보다는 삼촌/이모뻘 되는 분들이 어린 시절에 봤던 공상과학 영화에서 신을 것 같은 신발이다. 해도 그리 촌스러운 느낌은 없다. 어림잡아 레트로와 미래의 중간 점에 놓인 디자인이다.


나이키에서 의도한 바인지 그냥 점점 더 게으르고 편한 삶을 추구하는 고객의 니즈를 겨냥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결과적으로는 손을 쓸 필요가 없어졌기에 몸이 다소 불편한 사람도 편하게 신을 수 있는 신발이 됐다. 기존에도 그런 사람들을 위한 패션 아이템들이 꽤 나오기는 했지만 디자인적인 면에서 예쁘다고 하기에는 다소 힘든 것들이 많았다. 이번에는 다르다. 디자인도 시각적인 만족을 제공하고 스포츠웨어 브랜드에서 만들었기에 기능적인 면에서도 훌륭하다.

 

 

화면 캡처 2021-03-26 173321.png
Photo via NIKE Official Website


 

나이키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당찬 포부가 느껴진다. 모두가 신을 수 있는 신발도 아닌 “누구나 쉽게 신을 수 있는 신발”을 추구한다. “쉽게”라는 짧은 단어에서 오는 울림은 작지 않다. 발만 있으면 신발은 신는다. 손이나 팔이 불편하거나, 몸을 숙이기 힘들다거나, 다리가 조금 불편한 사람들은 신발을 신기 위해서 손을 뻗는다든지 신발 끈을 묶는 것 따위가 힘들다. 신기는 하되 쉽지는 않다. 신발 하나 신는 것에도 남의 도움을 빌리거나 쩔쩔매야 한다는 사실에서 상실감을 느낄 수 있다. 고 플라이 이즈는 그저 발을 넣으면 끝이다. 더 이상의 박탈감이 없다. 쉽게라는 작은 일이 박탈감이라는 커다란 짐을 날려버린다.

 

 


브래들리 타임피스: BRADLEY TIME PIECE


 

화면 캡처 2021-03-26 173401.png
Photo via BRADLEY Official Website

 

 

역설적인 것이 되려 매력적인 경우가 종종 있다. 시간도 그렇다. “시계를 본다”라는 말하듯이 우리는 눈으로 시간을 보지 소리로 듣거나 하는 일은 잘 없다. 원하면 볼 수 있는 사람에게는 보거나 말거나가 선택이지만 그 선택에 대한 권리를 잃어버린 이들은 시간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었다. 그들에게 시간을 볼 수 있는 도움을 주고자 노력하는 이들은 없었다.


꿩 대신 닭이라고 한다. 플랜 B라고도 한다. 본래 하려던 것이 잘 풀리지 않으면 다른 대책을 찾아야 한다. 생각하면 바로 나올 단순한 해답이건만 이 간단한 것을 떠올리려 노력하는 누군가가 이제서야 나타났다. 눈으로 시간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손으로 읽어낼 수 있는 시계를 내놓았다. 눈금을 입체적으로 디자인하고, 각 시각에 맞춰 움직이는 구슬을 달았다. 시간을 확인하고 싶을 때는 손으로 이들을 느끼면서 시각을 확인할 수 있다. 눈을 잃고서도 수영으로 세계 기록을 깬 브래들리에서 이름을 따 온 것처럼, 눈으로 보지 못해 막막하던 시간에 대한 시야를 깨워주는 것이다.


흘러가듯 본 글 중에 죄인의 형벌에 관한 것이 있었다. 죄수에게 가장 괴로운 것은 복역 기한을 알려주지 않고 수감생활을 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끝을 모르는 것에서 오는 지루함과 피로, 거기에 더해지는 공포는 아마 쉽게 떨쳐내지 못할 괴로움이리라. 본인의 잘못이 아님에도 그런 답답함을 달고 살았을 이들이 많다. 우리의 시간은 볼 수 있는 사람에게만 문을 열었고, 그것을 당연히 여겨왔다. 모두가 같은 사람임에도 우리의 사고는 그들의 손은 잡아주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조금씩 그들에게도 다시 한번 손을 내밀어간다.

 

 


The Ocean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제품은 기능적인 면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다 보니 디자인적인 면에서는 미흡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제품을 만드는 기업도 거의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이다. 자본력이 부족하다. 기능과 디자인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기능성”이라는 이름이 붙은 패션 아이템 대부분이 그렇다. 달리기할 때 신는 러닝화는 멋 부리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등산할 때 입는 등산복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도배하면 동네 아저씨 소리 듣기 십상이다. 트레이닝복 바지 입고 나오면 어디 동네 편의점 가는 사람 같다.


애슬레저 패션이 유행하면서 이제 이런 상황도 먼 옛날 일이거나 패션에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 한정된다. 스포츠 브랜드와 럭셔리 브랜드가 협업을 진행하는 일도 흔해졌다. 나이키는 디올, 언더커버, 슈프림 가리지 않고 협업을 통해 한정판 신발을 꾸준히 내놓는다. 그 한정판을 위한 리셀 시장까지 열리는 세상이다. 기업은 고객의 니즈를 찾아내야 한다. 이제 고객은 기능성만 좋은 제품이 아니라 디자인도 훌륭한 것을 원하고 있다. 미적 욕구를 충족하고자 하는 마음은 장애인, 비장애인에 관계없이 같은 사람으로서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구다.


그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기업은 많지 않다. 자본력에서 뒤떨어지는 기업은 둘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고객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분야라면 투자도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이키(NIKE) 같은 기업에서 플라이 이즈같은 제품을 출시한다는 것은 그 의미가 다르다. 나이키는 두 가지 모두를 충족할 수 있는 자본력과 인력을 갖췄다. 시장을 지배하는 대기업에서 하나의 흐름을 끊으면 다른 기업은 자본의 논리에 의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나이키 플라이이즈 홈페이지에도 떡하니 그들의 포부가 박혀있다. 손을 쓰지 않고 신을 수 있다는 게 별것 아닌 일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 작은 사실이 품은 변화의 시작은 전혀 작지 않다.


아직 개척되지 않은 미지의 시장을 블루오션이라 하고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른 곳을 레드 오션이라 부르기에, 시장 가치를 떠나 인간적인 가치로써 모든 이들을 위해 개척하는 시장은 바다 그 자체(The Ocean)다. 브래들리 타임피스나 고 플라이 이즈는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것을 잃게 된 사람을 위해 만들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타인을 위한 것을 만드는 회사의 제품을 구매하면서 그들을 돕는다는 작은 보람을 제공한다. 디자인적으로도 충분히 매력이 넘치기에 미적 욕구를 충족시켜준다. 서로가 같은 것을 누리면서 일상 속에서 알게 모르게 느껴왔던 차이에서 오는 차별이 흐려진다. 서로가 같음을 느낄 수 있다. 모든 것을 품는 바다처럼 우리는 한 바다에서 헤엄치는 각자가 조금 다를 뿐인 하나의 공동체가 될 수 있다.

 

 

[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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