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차마 버리지 못한 것들에 대해 [사람]

글 입력 2021.03.19 09:1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내겐 세상에 단 하나뿐인 보물 상자가 하나 있다. 열어보면 이런 것들이 있다. 친구가 써준 손 편지, 선물, 다이어리, 사진, 일정관리표, 노트 필기 등 다양한 것들이 담겨있다. 이 보물 상자에는 비밀이 하나 존재한다.

 

 

treasure.jpg

 

 

모두 차마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다.

 

이는 모두 애정과 집착 사이에서 머무르는 나의 습관으로부터 생겨난 것들이다. 나는 내게 남겨진 것들, 나의 LEGACY에 대한 끈끈한 감정이 있다. 예를 들면, 옛날에 친구가 써준 편지, 선물, 다이어리, 사진, 일정관리표, 노트 필기 등 스스로 중요한 물건이라 생각되면 절대 버리지 못하는 고질병이 있다.

 


 

애정: 버리지 못하는 것들


 

시간이 지나면 쓰임이 사라지는 것들이 있다. 그럼에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오래된 나의 물건들을 살펴보면 그 이유가 확실히 드러난다.

 

 

stack of books.jpg

  

 

이미 너덜 해진 빛바랜 연습장과 다이어리를 보면, 그 시절 치열했던 흔적이 가득하다.

 

과거의 노력이 헛되지 않음을 보여주었고, 그 끝에 현재의 내가 존재할 수 있음을 설득시켰다. 대개 친구들에게서 받은 손 편지에는 애정과 감사의 글들이 가득했다. 당시 그 친구와의 추억을 되새기는 것을 넘어, 그들에게 난 어떤 존재였는지 관계 속 객관화된 나의 모습을 확인시켜 주었다.

  

불과 2년 전 ‘나는 어떤 사람인가’와 같은 정체성이 흔들리는 순간에도 나를 단단히 잡아 주었다. 너는 이런 사람이라고. 있는 그대로 너의 모습을 사랑하라고. 내 주변에 남겨진 것들은 '나’에 대한 기록이었고, '나'를 위한 기록이었다. 그래서 시간이 흘러서도 나 스스로를 향한 위로가 가능했다. 이는 '나'에 대한 사색이 깊어진 이유이기도 하다.

 

가끔 생각날 때마다 편지를 꺼내보면 그때 당시, 몇 년 전, 그리고 최근까지 드는 생각과 감정들이 다르다. 공통적인 감정이 있다면, 오래된 편지들로부터 받는 특별한 애틋함 같은 것이 있다. 때로는 그 애틋함이 그리움, 위로, 새로운 생각 또는 변화로 이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빨리 더 많은 과거의 기억들은 사라져 갔지만, 편지 속 글자들은 시간이 흘러도 그 자리 그대로 남아있었고 그 덕분에 기억이 미화되거나 흐려지는 것을 막아주었다. 아직 방 한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오래된 물건들이 함께 파묻힌 소중한 기억을 다시 되살아나게 했다.

 

그런 사소함이 묻어있는 것들을 사랑하였다.

 

 

 

집착: 그럼에도 버려야 하는 것


 

남겨진 것들에 대한 애착은 날로 늘어났고, 시간의 흐름만큼 쌓이는 짐은 겹겹이 늘어갔다. 어느덧 나의 보물창고 안에는 더 이상 종이 한 장도 비집고 들어갈 공간이 없어 보였다. 그 광경을 직접 눈앞에서 보자니, 애정이라 여겼던 나의 습관은 그저 집착일 뿐이라며 나를 무작위로 흔들어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면 또 들어갈 수 있을까 집착의 날을 세워가며 빈 공간을 노리는 나를 보며, 엄마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말한다.

 

 
"다 쓸모도 없는 것들
뭐 하러 쌓아두니?"
 

 

엄마의 뼈 있는 한 마디가 나를 쿵 내려앉혔다. 분명 시간이 흐르면 쓸모없는 것들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분명 나에게는 가치 있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계속해서 나의 사정거리 안에 두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스스로 되물었다. 아직도 버리지 않고 남겨야 할 이유가 있는지. 그러나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는다. 대신, 차마 버리지 못하겠다는 마음이 앞선다.

 

 

 

애정과 집착 그 사이



values.jpg

 

 

여전히 난 감정을 관리하는 데 있어서 미성숙하고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 안에 눈에 보이는 위로를 찾고 있다. 그중 가장 큰 위로는 나의 크고 작은 오래된 것들이었다. 마음이 무너져도 언제든 우뚝 다시 일어서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 낸 일종의 방어 장치와 같았다. 그렇게 해서라도 지켜내고 싶은 나의 자그마한 보물들이다.

 

기록들은 애초에 쓰임을 목적으로 남아있는 것이 아니다. 남겨져 있다는 것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나에게도 차마 버리지 못하는 것들은 그 자체로 소중한 것들이라, 여전히 애정과 집착 사이 그쯤으로 남겨두고 싶다. 그것이 나의 작고 큰 소중한 보물들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아트인사이트 신송희 에디터.jpg

 

 

[신송희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4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