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우리는 더는 함께 영화를 보지 않는다

21세기 키네토스코프
글 입력 2021.03.15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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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네토스코프와 영화의 3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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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영화의 3요소에 대해 배웠다. 영화의 3요소는 필름, 관객, 스크린이다. 이 중 하나만 존재하지 않아도 영화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 이유에서 에디슨이 만든 영화 기계 ‘키네토스코프’가 보여준 영상은 최초의 영화로 인정받지 못했다. 키네토스코프는 움직이는 영상을 보여주는 기계였으나, 영화 상영을 위한 기계는 아니었다. 영상을 한 사람씩 들여다보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즉, 영화의 3요소 중 스크린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최초의 영화가 될 수 없었다. 이것을 발명한 에디슨 역시 영상을 여러 사람에게 상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계 자체를 판매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고가였기 때문에, 기계는 널리 보급되지 못했다. 결국, 영화의 탄생에 대한 타이틀은 오늘날의 상영 형태를 처음으로 시도했던 뤼미에르 형제에게 돌아갔다.

 

스크린의 존재는 영화의 역사를 뒤집을 정도로 강력했다. 조금 낯설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통상적인 스크린 없이도 영화를 보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그걸 가능하게 하는 매체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같은 것들이다. 디지털 발전의 결과물들과 함께라면 방 안에서도, 혼자라도 손쉽게 영화를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휴대전화를 21세기의 키네토스코프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했다. 그렇게 수업은 끝이 났지만, 내 생각은 익숙한 현상을 부르는 낯선 단어에 꽂혔다.

 

오늘은 영화가 아닌 ‘영화 관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코로나 19와 영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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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현장 활동으로 받은 무료 영화관람권은 아직도 쌓여 있다. 영화관에 거의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코로나 19로 인해 모든 것이 멈춘 뒤로, 영화관으로 향하는 관람객들의 발걸음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영화관들은 부진을 겪을 수밖에 없었고, 이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한국경제 기사에 따르면 지난 1월 관객 수와 매출은 전년 동월 대비 약 89% 줄어들었다. (한국경제, 코로나에 얼어붙은 극장가…1월 영화 관객 수·매출 역대 최저)

 

그러나 영화관을 가지 않는다고 하여 영화를 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도, 영화관에 가는 횟수는 확연하게 줄어들었지만, 본 영화의 수 자체는 늘어났다. 넷플릭스나 왓챠 플레이 같은 OTT 서비스를 이용하여 집 안에서 휴대전화로, 태블릿 PC로 많은 영화를 봤다. 실제로 OTT 서비스들의 성장세는 코로나 19 이후 더 두드러졌고, 대표적으로 넷플릭스는 작년을 기점으로 유료 구독자가 2억 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지디넷코리아, 넷플릭스 유료가입자 2억 명 넘었다)

 

코로나 19는 사람들의 영화관람 형태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우리는 이제 더 많은 시간 혼자서 영화를 본다. 그러나 휴대전화는 영화관을 대체할 수 있을까? 이 두 가지 관람경험은 어떻게 다른 걸까?

 

 

 

영화에서 관객의 영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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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영화의 3요소로 돌아와서, 스크린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본다. 여러 사람과 영화를 ‘함께’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에 관해 공유하고 싶은 경험이 한 가지 있다.

 

작년 초, 코로나 19의 공포가 시작되기 이전, 나는 독일에 있었다. 유학을 하던 도시를 떠나 여행객으로 방문한 베를린에서 <기생충>을 보았다. 당시 아카데미 상 수상으로 인해 이 영화가 세계적인 관심을 받게 되면서, 베를린 한복판의 영화관에서 한국말로 된 영화를 볼 수 있는 영광을 누릴 수가 있었다.

 

한국 영화관에서 이미 <기생충>을 봤던 나의 관심사는, 영화의 내용이나 결말이 아니었다. 독일 관객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번역된 영화를 보며, 사람들은 같은 곳에서 웃고 울게 될지. 언어도 문화권도 다른 이 영화에 대한 반응이 우리나라 관객과 같을 수 있을지 궁금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종종 웃을 수 있는 포인트가 달랐다. 번역이 가져오는 한계이거나 혹은 문화적인 맥락이 조금 복잡한 유머일 때 그랬다. 내가 여기에서 강조하고 싶은 건, 그사이에 놓여있던 나의 반응이다. 나는 이 영화의 반전과 대사를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내 반응은 주변 관객들을 자연스레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아무도 웃지 않는 포인트를 나 혼자 이해했다고 해서, 조용한 영화관에서 큰 소리로 웃기는 좀 그랬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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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CJ 문화재단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건, 결국 주변 관객들과 호흡을 같이하는 일이다. 영화관이라는 공간의 역할을 고민해보기 위해, 코로나 19 이후 영화관들이 진행했던 마케팅들을 살펴보면 좋을 것 같다. 영화가 떠난 자리에도 영화관이라는 공간이 필요했던 콘텐츠들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라이브 콘서트이다. 지금도 진행 중인 밴드 새소년의 라이브 공연은 전국 CGV를 통해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사람들은 공연장 대신 극장에 모여서 아티스트의 라이브 공연을 감상하고, 극장은 이들에게 몰입감을 선사한다. 이렇듯 영화관은 관객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현장감과 몰입감을 제공하는 공간이다.

 

 

 

혼자 영화를 보며 달라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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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혼자서 영화를 보는 행위에는 무엇이 달라져 있을까. 나는 먼저 몰입감의 결여를 꼽고 싶다. 내가 영화를 보는 내 방 침대는 영화관만큼의 몰입을 제공하지 않는다. 너무 힘을 들여서 보아야 하는 콘텐츠의 경우 피로감을 가져온다. 그래서 내가 OTT 서비스를 통해 검색하는 많은 콘텐츠는 이미 본 것, 아니면 킬링타임용인 경우가 많다. 마치 배경음악처럼 집 안에서 생활하는 틈틈이 영화를 틀어두는 때도 있다.

 

넷플릭스에서 가벼운 주제와 짧은 러닝타임의 콘텐츠들이 사랑받는 이유 역시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종종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특유의 가벼움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물론 아닌 것들도 많다.), 그것이 많은 돈을 들여 자체 콘텐츠를 생산해내기 어려움에서 비롯되는 문제가 아니라 적합성에 대한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시청 환경이 필연적으로 가져오는 몰입감의 결여는 콘텐츠에도 영향을 주지 않을까.

 

재생 버튼이 가져오는 변화도 있다. 내 친구는 빨리 감기 버튼을 꾸준히 눌러가며 영화를 본다. 반면 나는 대사나 맥락을 놓칠 때마다 뒤로 감기를 누르느라 러닝타임이 길어질 때가 많다. 각자의 책상 위, 침대 위에서 영화는 2차로 편집되는 과정을 거쳐 우리에게 들어온다.

 

나와 내 친구가 받아들인 영화는 아마도 좀 다를 것이다. 영화를 보게 되는 방식은 그만큼 개인화되고 다양해진다. 각자에게 맞는 최적의 옵션을 우리는 손가락 하나로 선택할 수 있다. 여기에는 그 어떤 룰도 없다.

 

 

 

영화는 변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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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 K에서 작곡가 주영훈이 고음의 곡들이 사라진 이유에 대해 언급한 내용을 본 적이 있다. 90년대에는 큰 스피커를 통해 길거리에서 노래를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 탄탄한 고음을 가진 곡들이 대중에게 어필이 잘 되었다. 그러나 요즘은 대부분이 이어폰을 통해 음악을 듣는 만큼, 고음을 강조하는 음악들이 상대적으로 유행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대중들의 청취 방식의 변화는 음악의 트렌드에도 반영이 되었다. 그렇다면 영화의 시청방식 변화는 영화의 트렌드에도 영향을 주게 될까? 코로나 19가 바짝 당겨온 개인화된 영화 관람은 영화라는 콘텐츠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지 궁금하다. 21세기 키네토스코프를 통해서 우리는 또 어떤 콘텐츠를 접하게 될지. 공간과 콘텐츠는 변화를 어떻게 마주해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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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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