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속는 셈 치고 그림 읽기 - 63일 침대맡 미술관

글 입력 2021.03.09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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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시작은 이렇다.

 

 

이 책은 루브르 미술관에 소장된 … 작품을 선별해 미술사적으로 ‘읽고 이해하는 법’을 소개한다. ‘보는 법’이나 ‘느끼는 법’이 아니라 ‘읽고 이해하는 법’이다.

 


책을 아직 읽지 않은 당신의 생각이 궁금하다. 혹시 흥미가 생겼는가?

 

내 의견부터 말하자면, 일단 난 아니었다. 솔직히 ‘잘못 걸렸다’라고 생각했다. 나는 미술관에 가서도 사람들이 몰리는 도슨트 설명시간은 피하고, 오디오 가이드도 잘 듣지 않는다. 그런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박식하고 아는 게 충분해서가 아니다. 누군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성격이라 그렇다.

 

설령 내가 본 이 그림의 첫인상이 그다지 감동적이지 않더라도, 오디오 가이드에서 걸작이라고 한두 마디 거들어주면 거짓 감동이 밀려온다. 감히 명화도 못 알아본 관람객이 되고 싶지 않은 내 자존심이 지어낸 감동일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림에 대한 설명을 읽거나 듣고 있으면, 그림 자체가 아닌 텍스트에 눈과 귀가 먼저 쏠려버린다. 설명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다 보니, 정작 그림과 눈 맞추는 시간은 짧아져 버린다. 그 바쁜 순간에 그림에 대한 나의 감상이 개입할 여지는 더욱이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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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시행착오를 거쳐 나름대로 쌓아 올린 전시회 행동 수칙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다른 사람들의 그림 감상법에 급격하게 관심이 많아졌다. 나의 감상 방법도 종종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계획 없이 한 미술관을 갔을 때였다. 엄청난 중세 종교화 컬렉션이었다. 작품들의 오래된 제작 연도로 보나, 뜯어 놓은 건축물까지 모아둔 장대한 규모로 보나 확실히 대단한 전시였다. 그러나 정작 나는 이 어마어마한 그림들 속 초점 없는 눈동자들을 보며 땀만 삐질삐질 흘릴 뿐이었다. 그래 봐야 내 눈에는 온통 어딘가 어색하고 심지어 비슷비슷한 그림들인데, 무엇을 보며 감동을 하여야 하려나.

 

별다른 설명 없이도 관람자를 압도하는 아우라를 가져야만 명화라고 우기고 싶지만, 그러기에 어떤 작품들은 너무 불리한 조건들을 갖추고 있다. 나와 동떨어진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작품들이 그렇다.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아름다움과 감동을 마음에 꽂아 줄 작품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감동이 없다고 불평불만 하는 것보단 조금 더 부지런해지는 편이 낫다. 나는 그래서 작가의 말을 한 번 믿어 보기로 했다. 이번만큼은 작품 ‘읽기’에 충실한 관람객이 되어 보고자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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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콘셉트는 루브르 박물관에 가지 않고도, 책을 통해서 루브르를 다녀간 것과 같은 간접 경험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에 충실하게, 실제 전시처럼 국가별로 몇 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었고, 각 장이 시작될 때는 필요한 설명 들을 제시해 두었다. 주로 해당 국가의 미술사적 흐름을 간단히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꽤 익숙하고 굵직한 흐름에 관한 내용이라, 언젠가 듣고 머릿속 어딘가에 흘려두었던 화가와 미술사조들을 다시 떠올리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림 하나하나에 대한 설명 역시 도슨트 투어나 오디오 가이드를 듣는 것 같은 내용이었다. 간결하긴 하지만 앞서 등장한 미술사 지식과 연결되어 핵심이 있었다. 정보의 양이 적진 않지만 한 가지 편리한 점이 있었다. 종이책의 장점은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면서 보기 편하다는 것이다. 헷갈리거나 궁금한 내용이 있으면 언제든 앞으로 돌아가 내용을 참고하고 돌아올 수 있었다. 이런 점은 어쩌면 실제 전시의 오디오 가이드보다 편리할지도 모른다.

 

나는 굵직한 내용은 간단히 필기하면서 꼼꼼히 읽었다. 원래 내 독서 습관대로라면 거의 없는 일이었다. 그림 역시 읽어내는 것이 목적인 만큼, 앞선 내용을 머릿속에 담아가며 읽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모두가 이렇게 할 필요는 전혀 없다. 나는 그동안의 해오던 전시 관람 방식인 ‘느끼기’와 새로 시도하는 ‘읽기’의 차이를 명확히 해두고 싶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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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니 한가지 명확한 차이가 느껴졌다. 그동안의 내 전시관람 방법이 주목하였던 것은 작품 하나하나였다. 그러나 책을 읽으며 가장 눈에 들어오는 건 흐름이었다. 이 작품과 다음 작품의 관계, 관계들이 이어지면서 생겨나는 변화 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 재미있었던 건 프랑스 회화의 흐름이었다. 예전에 미술사 수업을 들을 때, 교수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있었다. 미술사에 등장하는 여러 미술사조는 상당히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은 언제나 앞선 사조에 반발하며 새로운 사조가 생겨난다는 것이었다. 당시 추상표현주의와 미니멀리즘의 대두를 설명하시며 해주신 말씀이었는데, 이러한 관계는 프랑스 회화의 역사에서도 반복되고 있었다.

 

귀족 중심 사회로 변화하며 등장한 로코코 회화는 프랑스 고전주의에 대비되어 나타났다. 이후 프랑스 혁명으로 사치스러운 귀족 문화에 대한 반발심리와 함께 등장한 것이 신고전주의. 이러한 이성적인 그림의 반대편에서는 다시 색채와 감성을 중시하는 낭만파가 등장한다. 책에서도 ‘이처럼 19세기의 프랑스 회화는 이성과 감성 사이를 추처럼 오가며 역동적으로 발전해나갔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내 눈에는 비슷해 보였던 회화들은 이렇게 구분되어가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신화나 유럽 역사에 정통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런 것들을 더 알았더라면 더 많은 것들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

 

그래서 그림을 읽어보니, 역시 앞으로도 영원히 그림은 읽어야겠더라는 결론을 내려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다른 사람들의 감상법에 대한 나의 관심은 지속할 것이다. 결국, 장단점을 찾아서 내가 미술관에서 가장 즐거워질 방법을 찾는 것이 목표이다. 그러나 그림을 읽었을 때 어떤 즐거움이 있는지를 알아보는, 혼자서는 시도해보기 어려웠을 과제에 관해서 이 책이 좋은 가이드가 되어준 것은 사실이다.

 

이 책을 언제든 다시 읽어보면 또 다른 시도를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는 지금보다 설명을 더 수월하게 읽어 넘기면서 그림 하나하나에 더 집중해볼 수도 있고, 그 과정에서 지금은 보지 못했던 것을 느낄 수도,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감상에 대해 여러 실험을 해볼 수 있는 공간이 생겨 뿌듯하다. 이렇게 코로나로 사방이 막힌 상황에서도 언제든 되돌아갈 수 있는 침대 맡 루브르가 생긴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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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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