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입시가 끝났다. [사람]

그리고 난 수능을 망쳤다.
글 입력 2021.03.09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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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재 대학교 2학년 학생이다. 그 말은 즉, 내가 수능을 치른 지 2년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2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수능이 끝났을 때의 그 심정을 생생히 기억한다. 내 생애 가장 중요한 시험이라고 여겨서 그랬던 건지,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감정을 느껴서 충격을 받았던건지 아직까지 그때의 감정, 수능이 끝난 후 들었던 생각이 선명히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3월이 됐고, 새 학기가 시작하면서 마스크를 쓰고 한 손에는 단어장을 들면서 등교하는 고등학생들을 보면서 2년 전의 내 모습이 생각났다. 대학교에 오고 나니 고등학교 때 나의 모습을 생각하니 뭐가 그리 심각했는지, 웃겨 보이기도 했다. 물론 그들에겐 대학이 최종 목표와 같겠지만, 입시를 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기를, 그들이 자신을 스스로 갉아먹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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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나는 매사에 열심히인 학생이었다. 대학이 내 인생의 전부였고, 대학에 가서 배우고 싶은 분야도 분명했기에 흔히들 말하는 '생활기록부'를 내 진로와 관련된 글로 채우기 위해 다양한 활동들을 했었다. 동아리도 여러 개 하고 대회도 많이 나가서 상도 타고, 수업 시간에 발표도 열심히 했다. 내가 대학을 갈 수 있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 학과에 얼마나 들어오고 싶었는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당시 나의 꿈은 PD였고, 3년 내내 내 꿈을 향한 의심 하나 없이 PD를 향해서 달려나갔다.

 

*

 

그런데 고등학교 3학년 때 깨달았다. 난 내신 성적이 부족하구나, 이렇게 해서는 내가 가고 싶은 대학을 못 가겠구나, 난 다른 아이들에 비해 떨어지는구나. 그래서 급하게 다른 방향을 찾아봤다. 그리고 수능 최저 점수가 필요한 논술 전형으로 내 입시 계획을 틀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심적으로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고등학교의 모든 시간을 생활기록부 채우는 데에 힘썼는데 그 2년간의 노력을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던 나였다. 논술은 한 번도 써본 적도 없을뿐더러 이미 오랜 시간 논술 전형을 준비해온 친구들이 있을 텐데 나 같은 사람이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뒤덮어서 내 자존감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렇지만 해내야 했다. 재수는 싫었다. 이 힘든 걸 1년 더 하려니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난 내가 힘들어하는 줄도 모르고, 내가 나를 나락으로 떠밀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꾹 참으면서 해나갔다. 지금은 나의 무기 중 하나가 '긍정'이지만, 그 당시 나는 '긍정적인 것처럼 행동하려고 하는 부정적인 인간'이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으니, 남들보다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에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과거의 나에게 공부를 왜 더 하지 않았냐고 책망해보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젠 책망할 시간도 아까웠다. 그렇게 수능날이 다가왔고, 그 누구보다 컨디션이 좋다고 생각했던 나는 수능에 자신이 있었다. 지금까지 모의고사로도 수능 최저점을 못 맞춰본 적도 없고, 이대로면 내가 제일 가고 싶은 대학에 떡하니 붙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수능을 망쳤다. 평소에 제일 자신 있었던 과목인 국어에서부터 모든 게 꼬였다. 마음을 차분히 먹었는데도, 이전엔 술술 잘 읽히던 글이 하나도 눈에 안 들어왔다. 긴장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편히 먹었더니 이번엔 또 너무 편히 먹었던 탓인지, 시간이 부족했다. 3년의 고등학생 생활에서 난 한 번도 국어를 풀 때 시간이 부족한 적이 없었는데. 제일 중요한 수능에서 그 첫 실수를 해버리고 만 것이다.

 

그렇게 어영부영 국어 시험을 끝내고 나서 멘탈을 최대한 붙잡으려고 했다. 이기적인 마음이었지만 다른 사람도 다 나처럼 못 봤기를 기대했다. 그리고 다음 과목부터 잘 보면 된다는 마음을 가지고 시험을 쳤다. 하지만 내 생각보다 나에게 가해진 수능이라는 무게가 너무 컸던 것인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내 시험은 더욱 망했다. 그리고 마지막 교시가 됐을 때에는 다 포기하고 싶었다. 이 시험장에서 나가서 그냥 다 끝났다고 외치고 싶었다. 그래서 제2외국어를 신청했지만 포기하고 나왔다. 단지 그 장소에 있기 힘들다는 이유로.

 

그렇게 수능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수능이 끝나서 기쁠 줄 알았는데. 웃으면서, 소리 지르면서 집으로 갈 줄 알았는데 그냥 허무했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가 고작 이 시험을 위해서 그 12년간, 아니 그 3년간 그런 고생을 한 건가. 이게 뭐라고. 하루면 끝날 시험인데. 이게 뭐라고. 이런 생각들이 집을 가는 동안 내 머릿속에서 계속 돌아다녔다.

 

*

 

집에 가서는 가채점을 하고, 처참한 나의 점수를 보며 엉엉 울었다. 예상 등급컷이 나왔는데 나는 좋은 점수를 받기는 글렀다. 재수가 확정이었다. 엄마 아빠는 나를 건들지 않으셨다. 울음이 그치고 난 후에는 날 위로해 주셨다. 수고했다고. 이깟 시험은 내 인생에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하지만 내 귀에는 그게 들릴 리가 없었다. 그렇게 논술을 열심히 준비했건만 내가 볼 수 있는 논술 시험은 딱 하나뿐이었다. 그것도 내가 제일 자신 없는 학교의 것이었다. 내가 너무 원망스러웠다. 공부 좀 더 하지. 그것밖에 못하는 사람이라니 너무 창피했다. 내가 너무 싫었다.

 

만신창이가 된 내 몸을 억지로 끌고 시험을 봤다. 시험이라도 좀 쉬워라 기도했건만, 안 그래도 자신 없는 학교의 시험에서, 문제도 어렵게 나왔다. 나만 어려운 게 아니었길 바라면서 시험이 끝나고 인터넷으로 학생들의 반응을 뒤졌는데, 나만 어려웠나 보다. 대부분은 시험이 쉬웠다고 했다.

 

그 후로 난 재수를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재수하지 뭐, 어쩔 수 없지. 나를 향한 원망과 분노를 넘어선 체념이었다. 그리고 난 그 대학에 논술 전형 최초합으로 떡하니 붙었다. 내가 잘못 본건 아닐까, 내 수험번호, 내 이름이 맞나 다시 한번 확인했다. 웃음이 실실 나왔다. 그리고 엄마한테 전화로 내 합격 소식을 전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분명 마음속으로는 재수를 결심하고 있었으면서도, 막상 하려니 겁이 났나 보다. 나를 괴롭히고 있었나 보다. 내가 입시에 '성공'했다는 생각과 이 힘든 일을 두 번 겪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나를 감쌌다.

 

 

그렇게 난 내 6지망 대학에 합격했다.

 

  

지금까지의 글을 보면 난 성공한 사람이다. 비록 6지망 대학이었지만, 어쨌든 내가 원서를 썼던 대학, 그리고 내가 원화던 학과를 갔으니. 성공한 사람이 이 글을 써서 도대체 무슨 위로를 주려고 하는 건가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진정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지금부터이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난 계속 생각했다. 과거 공부를 소홀히 했던 나를 향한 책망, 내가 공부를 더 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상상,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말처럼 차라리 반수를 할까라는 고민.

 

그리고 그와 함께 과거의 나를 돌아보았다. 고등학생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공부를 절대 손에서 놓지 않았다. 시험 기간엔 밤 새가며 공부도 했고, 수업 시간에도 항상 집중했다. 문제도 열심히 풀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랬다. 최선을 다했다. 대학을 합격하고 입학하기 전까지 나를 끊임없이 돌아보고 돌아본 결과 난 알 수 있었다. 그게 내 최선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을 만큼, 그 당시 나에게는 그만큼 공부하는 게 최선이었던 것이다. 나는 항상 최선을 다해서 살아왔던 것이다. 그것을 알고 나니 내가 했던 상상과 고민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수능은 내 생각보다 훨씬 허무했으며,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 같아서 나 자신을 책망했지만 사실 나는 그 누구보다 최선을 다했고, 이젠 내 현실에 만족할 수 있게 되었다. 그와 함께 내가 나를 벼랑 끝으로 떠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미안해졌다. 내 인생에서 나보다 중요한 것은 없는데 대학이라는 눈앞의 목표에 멀어서 내가 나를 학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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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입시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이거다. 여러분은 최선을 다했고,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이미 지난 일에 대해, 이미 지난 성적에 대해 자책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 당시 나에겐 그게 최선이었고, 내 최대한의 노력이었다.

 

나를 책망하는 대신 나를 좀 더 아껴주기로 하자. 그깟 대학이 뭐라고 나를 괴롭히나 생각해 보자. 그동안 너무 달려온 것은 아닌지, 나를 벼랑 끝으로 밀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며 나에게 하루의 휴식을 주기로 하자. 그러고 나면 조금 더 편해질 수 있다. 나를 짓누르고 있던 부담감을 내려놓을 수 있고, 나를 괴롭혔던 자책감을 버릴 수 있으며, 나 자신을 미워하던 마음을 지울 수 있다. 대신 나는 앞으로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을 수 있고, 과거의 나를 위로해 줄 수 있으며, 나 자신을 응원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나는 어리석게도 이 모든 것들을 입시가 다 끝난 후에야 알았으니,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나보다 더 빨리 깨달아서 더 많이 힘들어지기 전에 그 고난을 멈추기를 바란다. 부디.

 

 

[여민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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