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여돌이 살아남는 미래를 꿈꾸며 - 여신은 칭찬일까?

글 입력 2021.03.04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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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은 칭찬일까?> 리뷰를 쓰기에 앞서 말하자면, 사실 아이돌을 깊게 좋아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별 관심이 없다가도 논란으로 알게 된 팀들은 많다. 명백한 범법 행위와 열애설을 제외하고, 이런 것까지 논란이 되나 싶었던 경우는 남자 아이돌(이하 '남돌')보다 여자 아이돌(이하 '여돌')이 많았다. 구체적인 이름을 언급하지 않아도 몇몇 장면은 생생하게 그려진다. 아이돌이라는 특수한 위치에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더해질 때 그들을 향한 억압과 검열은 겉잡을 수 없이 커지고, 거기에 명분마저 생긴다. 대중 앞에 서는 직업은 모두 마찬가지지만 여돌만큼 '소비'된다는 느낌이 강한 경우도 드물다.


<여신은 칭찬일까?>는 대중들의 입방아에는 그토록 자주 오르내리면서, 제대로 분석되거나 평론의 대상이 된 적은 좀처럼 없는 여돌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여돌의 계보부터 여돌만의 특성과 성과, 한계 그리고 앞으로 여돌이 나아갈 길까지. 20년차 대중음악 평론가인 저자가 지금껏 납작하게 존재하던 여돌에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아이돌 그룹에 큰 관심이 없더라도 10년 전 '텔미 열풍'을 기억한다면, 2년 전 방영했던 <캠핑클럽>을 재미있게 봤다면, 머릿속에 맴도는 여돌 노래가 한 곡이라도 있다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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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돌의 특성은 남돌과 나란히 놓여 있을 때 보다 명확히 드러난다. 여돌의 이름에는 여성성을 강조하기 위해 '걸', '소녀'와 같은 단어가 자주 들어가는데, 남돌은 그런 경우가 드물다. 색깔을 강조하는 이름 역시 여돌이 더 많다는 것도 독특하다. 음악의 성격 면에서도 남돌은 팬덤의 영향력이 세서 실험적인 음악을 선보이기에 유리한 반면, 여돌은 팬덤이 약해서 대중적인 음악이 중심이 되는 경향이 강하다.


이처럼 같은 아이돌임에도 남돌과 여돌은 그 이름부터 콘셉트, 팬덤의 성격까지 뚜렷하게 다른 경우가 많다. 하지만 때론 같은 콘셉트를 선택하는데도 그 결과가 세부사항이 완전히 다를 때가 있다. 책에서는 '투애니원'을 예시로 든다. '빅뱅'이 대히트를 친 직후 데뷔한 투애니원은 당시 일반적인 여돌과 달리 힙합 풍의 음악에 길거리를 배경으로 자유로운 안무를 펼치는 등 빅뱅과 여러 가지로 비슷한 노선을 취했다.


그러나 빅뱅이 인기를 얻고 아티스트로서 이미지를 굳히는 데 성적으로 문란한 남성, 이른바 '플레이보이'의 특성을 무대 안팎에서 적극적으로 이용했다면 투애니원은 오히려 성적인 요소를 제거한 채 대중 앞에 선다. 즉 한쪽은 불량한 남성성을 과시하며 대중에게 인정받고, 다른 한쪽은 여성성을 아예 소거함으로써 실력 있는 아티스트라는 것을 설득한다.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여돌은 매력을 대중에게 어필하고 인기를 얻기 위해 여성임을 드러내는 단어를 이름에 자주 사용하지만, 결과적으로 여성성을 드러내는 것이 실력을 과소평가 받게끔 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

 

이는 4장 '여돌은 어떻게 생존할까'의 내용과도 이어진다. 요즘 아이돌계에서는 실력파임을 드러내기 위해 음반 작업에 직접 참여해 창작을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창작의 영역에서도 남돌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여돌은 드문 편이다. 뒤집어보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여돌에게 자기 목소리를 내는 아티스트보다는 청자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신비하고 아름다운 요정 또는 여신 같은 존재이기를 기대 또는 '허용' 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대중은 빠르게 변한다. 많은 여돌이 생겨나고 또 사라지는 동안 사회는 많이 변했다. 특히 2010년대 중반에 나타난 페미니즘 리부트를 논하지 않고 2021년의 여돌을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모두에게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닿았을 페미니즘이라는 물결은 여돌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어떤 부분에서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여돌에게 가해지는 검열과 압박은 더욱 심해진 것 같기도 하다. 특정 도서를 읽거나 특정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집단 린치의 대상이 된 이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비난하는 이들이 남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돌은 페미니즘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밝혀 여성의 지지를 얻다가도, 그 다음 말 한마디, 옷 하나를 잘못 입으면 '백래시'라며 비난의 대상이 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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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페미니즘 리부트는 우리가 여돌을 바라보는 방식, 그리고 여돌이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을 바꿔놓기도 했다. 책에서도 다뤘듯 2019년에 방영한 <퀸덤>은 이러한 변화를 잘 보여준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많은 팀들이 무대에 대한 고민과 열정을 설득력 있게 보여줬고, 시청자들의 반응 역시 뜨거웠다. <퀸덤>은 전에 없이 다양한 콘셉트의 여돌 무대를 볼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기억된다.

 

 

어릴 때부터 현실과는 괴리된 생활을 하는 아이돌은 이른바 '개념'과 인성을 갖춰야 하면서도 현실 세계에 개입하지 않는 아이돌 캐릭터로서만 살아야 한다. 이는 특히 여돌에게 강조되는 덕목이다. 현실 자본주의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경쟁적인 아이돌 시스템으로 인해 누군가는 이 세상을 떠났고 다른 멤버를 미워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았다.

 

-38쪽

 

 

그렇다면 여돌은 어떻게 생존하여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까.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해도 2021년, 여돌이 장수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저자는 섣불리 답을 내리기보다 여러 가능성과 함께 여돌 개개인의 역량보다 우리 사회가 여돌을 소비하고 바라보는 방식에 질문을 던진다. 많은 이들이 <퀸덤>에 열광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여돌에게는 주체로서 자신의 음악과 무대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 또한 대중은 그들을 외모와 가십거리로 소비하는 게 아니라 이 산업을 이끌어가는 주체로 바라보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때 중요한 건 역시 여돌과 대중을 잇는 매체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여돌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여신은 칭찬일까?> 역시 지금 꼭 필요한 책이다. 최근에 SBS 문명특급에서 활약 중인 재재가 떠오르기도 한다. 재재는 아이돌, 특히 여성아이돌에게 기존에 흔하던 질문-외모나 몸매관리, 이상형 등-을 제외하고 인터뷰이의 가치관이나 음악관에 대한 질문으로 많은 호평을 받았다.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이러한 인식 변화가 더 많은 여돌이 자신만의 색깔을 지닌 채 오래 오래 살아남을 수 있게 도울 것이라 믿는다.


끝으로, 내가 말하는 '살아남는다'라는 데에는 단순히 업계에서 밀려나지 않고 경력을 이어간다는 의미만 있는 게 아니다. 근 몇 년 사이 같은 세대의 여성 몇몇을 떠나보낸 나는 이제 아무도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30년 뒤 가요무대에서 함께 나이 든 여돌의 웃는 얼굴을 보고 싶다.

 

 

*

 

여신은 칭찬일까?

여성 아이돌을 둘러싼 몇 가지 질문

 

 

저자: 최지선


쪽 수: 288쪽

 

가격:  15,000원

 

출판사: 산디

 

ISBN: 9791190271103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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