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배우는 오늘도, 달린다 [영화]

그리고 나도 오늘부터 달린다.
글 입력 2021.03.02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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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 리뷰지만, 이 영화를 평가하거나 비평할 생각이 없다. 그 이유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여배우 문소리가 시종일관 평가를 당했기 때문일까. 나는 그저 영화 속 여배우를 바라볼 뿐이었고, 여배우가 힘껏 소리를 지르며 달릴 땐 나도 그 옆에서 함께 소리 지르며 달리고 싶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는 2017년에 개봉한 감독 문소리의 데뷔작이다. 배우 문소리가 직접 연기하는 여배우 문소리 역은 대한민국에서 여자인 배우로 살아가는 한 인간의 모습을 실감 나게 보여준다. 문소리 감독은 작품 속 모든 에피소드가 허구지만, 100% 진심을 담은 영화라고 말한다. 이 말처럼 영화 속에는 주변에 실제로 있었을 법한 생생한 일상이 녹아있다.

 

영화 소개 멘트는 “배우 문소리는 오늘도 며느리, 딸, 엄마, 아내 역할로 만취 상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매일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우아하게 살 것이라는 편견을 달고 사는 문소리는 사실 말 그대로 취해있다. 영화 제작자 일행과의 술자리에서는 농담이랍시고 던지는 외모 평가, 무례한 언행 등 비난에 가까운 평가를 들으며 술을 들이켠다. 감독과의 술자리에서는 특별 출연 부탁을 어렵사리 거절하며 술을 마신다. 한 영화감독의 장례식장에서는 그의 인생과 예술에 대해 격렬하게 토론하며 술을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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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의 시간에는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고 떼쓰는 딸을 달래고, 치매로 요양원에 계시는 시어머니를 돌본다. 은행에 가서 대출을 받기도 하고, 치과의사가 임플란트를 할인해주기로 했다는 엄마의 부탁 때문에 치과에 가서 여배우로서 웃는 얼굴로 홍보 사진을 찍는다. 누군가는 맨날 드레스 입을 수 있어서 좋겠다는 말로 여배우의 삶을 재단하지만, 영화 속 문소리는 그저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여성이다.

 

이 시대의 워킹맘은 직장인과 엄마 사이에서 둘 중 어느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가장 괴로워한다고 한다. 영화 속 여배우 문소리도 며느리, 딸, 엄마, 아내, 배우의 역할 중 어느 것도 완벽하게 할 수 없어 괴로워 보인다. 영화에는 매니저가 운전하는 차 뒷좌석에 앉아 괴로워하는 문소리의 모습이 자주 등장하는데, “며느리, 딸, 엄마, 아내 역할로 만취 상태”라는 말처럼 그는 술을 마시지 않은 순간에도 숙취에 시달린다.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온 문소리는 남편과 이런 대화를 나눈다.

 

 

"여보. 힘들면 뭐라도 하나 줄여요."

 

"시어머니도 안 하고, 애기도 안 하고, 작품도 1년에 해 봐야 한 작품 하는데 뭐 줄여요. 내가."

 

"그럼 술이라도 좀 줄여요."



어제도, 오늘도 계속 달리는 중인 문소리는 취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뭐 하나도 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에 뭐 하나 줄일 수도 없다. 딸 연두는 유치원에 가야 하는 자신도 되게 힘들다며 “힘들면 쉬어야지. 나는 힘들면 쉴 거야.”라고 말한다. 그러나 문소리는 쉴 수도 없다.

 

연기력보다 매력이 더 중요하다고들 하는데 정작 매력을 발산할 만한 배역은 없다. 여배우는 달리고 싶어도 마음껏 달릴 수 없다. 그렇다고 여배우가 맡을 수 있는 배역의 폭이 날로 좁아져만 가는데 멈출 수가 있나. 그래서 여배우는 오늘도 달린다. 제대로 달릴 수도, 멈춰서 쉴 수도 없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문소리는 진짜로 달린다. 인적이 드문 도로에 별안간 차를 세우고 괴성을 내지르며 전력 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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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악을 쓰면서 전력 질주를 하는 이유는 결국 그녀가 영화를 사랑하는 배우이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인 3막에서 문소리는 흥행에 실패한 영화감독의 썰렁한 장례식에서 동료 배우와 신인 배우를 만난다. 신인 배우는 감독의 인간성이 훌륭했고 그의 예술 세계는 다른 사람이 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며 그를 열심히 변호하지만, 문소리는 아무리 그래도 영화를 그렇게 만들면 안 됐다며 그는 예술가도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후 문소리는 장례식장 벽에 비친 감독의 영상들을 보면서 눈물을 흘린다. 영상에는 파도, 모래, 하늘 등 일상적인 자연의 모습이 담겨 있다. 문소리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왜 무언가를 찍는가, 그것을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런 마음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스스로에게 질문”했다며, 그 영상에는 “아무리 보잘것없더라도 자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을 찍고, 그것을 사람들과 공유하려는 마음이 정말 대단하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생각을 담았다고 말했다.

 

문소리라는 배우, 그리고 감독은 예술이 무엇인지, 누가 예술가인지, 내가 예술에 닿을 수 있는지 등 아름다움과 예술, 영화에 대해 질문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고 말한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신인 배우가 문소리에게 어떻게 하면 연기를 잘 할 수 있느냐고 묻자, 문소리는 “그냥 될 때까지 하는 거지, 계속”이라 대답한다. 예술에 대한 질문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답을 알 수 없지만, 계속 고민하고 질문을 던지는 것. <여배우는 오늘도>라는 영화의 역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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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라고 불리지 못하는 ‘여배우’의 삶은 녹록지 않다. 그러나 여배우는 오늘도 달린다. 그것도 온 힘을 다해. 영화를 사랑하기 때문에, 예술에 대해 평생 질문하고 싶은 영화인이기 때문에. 악을 쓰며 달리는 모습이 누군가에겐 괴상해 보일지 몰라도, 나에겐 끝없이 질문하는 진짜 문소리다움, 문소리만의 아름다움이 마구 분출되는 순간을 보는 것만 같다.

 

나도 그 옆에서 그렇게 달리고 싶다. 나의 아름다움을 찾아서. 답도 없고 끝도 없는 달리기일 수도 있겠지만, 가만히 앉아있는 것보단 소리 지르며 달리는 게 조금 더 시원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도 오늘부터 달린다.

 

 

[정다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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