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잃어버린 자기 자신을 되찾아가는 이야기, 윤희에게 [영화]

글 입력 2021.02.27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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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홋카이도의 '오타루'라는 작은 마을에는 겨우내 눈이 내린다. 온통 흰 눈으로 뒤덮여, 지붕의 색이 모두 하얗게 변한 마을. 그중 한 집에는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이 가득 담긴 편지가 우체통으로 향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오늘도 그 편지는 부쳐지지 못할 것 같다. 애틋한 마음을 담아 정성 들여 편지를 썼음에도 '쥰'은 매번 편지를 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고모가 우연히 그 편치를 발견하고 쥰을 위해 자신이 그 편지를 보내버리는 장면을 비추며, 영화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대한민국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윤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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쥰의 고모가 보낸 애틋한 편지는 공교롭게도 윤희가 아닌 그녀의 딸, '새봄'에게 전해진다. 엄마에게 편지가 온 것이 신기해서였을까, 새봄은 편지를 열어 그 내용을 읽게 되고, 그 편지는 엄마를 향한 애틋한 그리움과 따뜻한 사랑이 담긴 편지라는 걸 알게 된다.

 

 

윤희에게,

잘 지내니?

오랫동안 이렇게 묻고 싶었어.

너는 나를 잊었을 수도 있겠지.

벌써 20년이 지났으니까.

갑자기 너한테 내 소식을 전하고 싶었나 봐.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지 않니?

뭐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질 때가.

...

 

 

윤희는 남편과 이혼을 하고 고등학교 3학년 졸업을 앞둔 딸과 둘이서 살고 있다. 매일 아침 통근 버스에 몸을 싣고 온종일 급식실에서 일하며, 퇴근 후에는 집 앞 골목에서 담배 한 대를 피우는 것이 그녀의 일상이다.

 

눈보다 더 차갑고 공허한 눈을 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추운 겨울을 더 쓸쓸하게 만든다. 도대체 그녀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직장에 있을 때도, 딸과 함께 있는 집에서도, 타들어 가는 담배를 입에 무는 그 순간에도, 죽지 못해 사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새봄은 윤희에게 묻는다.

 

"엄마, 엄마는 뭐 때문에 살아?"

 

아마도 그때 처음으로 새봄은 자신의 눈에 비친 중년의 여자가, 엄마가 아닌 한 여자로 보였을 것이다. 엄마는 어떤 삶을 살아온 걸까. 엄마에게 행복한 삶은 무엇일까. 낯선 감정과 복잡한 생각들이 얽히고설켜, 새봄은 엄마에게 퉁명스럽게 쏘아붙인다.


"엄마 이제 나 때문에 안 살아도 돼.

나 서울로 대학 가면 여기 자주 안 올 거야.

나 자꾸 신세 지게 만들지 마.

그거 다 빚이야."



그리고 말을 덧붙인다.

 

"엄마, 우리 해외여행 가자. 눈 많이 오는 곳으로"


새봄은 엄마 몰래 읽었던 쥰의 편지를 다시 제자리로 갖다 놓고서, 바다 건너 먼 길을 달려온 편지는 그렇게 윤희에게 전해진다. 편지는 윤희의 멈춰있던 시계를 움직였다. 휴가를 줄 수 없다는 냉정한 직장 상사의 말에도 기죽지 않고 회사를 그만두고서, 오랫동안 가슴에 담아두었던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새봄과 함께 홋카이도의 오타루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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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잃어버린 자기 자신을 되찾아가는 이야기



영화는 상처 입은 한 여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20년 전 이루지 못한 첫사랑과 함께, 자신의 삶을 놓아버린 윤희. 그녀는 사랑도 꿈도 모두 놓아버린 채, 벌을 받듯 자신의 인생을 살아간다.

 

그녀에게 쥰과의 사랑은 어떤 의미를 가졌을까. 누군가에겐 단순히 애틋한 추억거리일 수도 있었던 첫사랑은, 어쩌면 그녀에겐 자신의 정체성이자 온전한 자기 자신 그 자체였을 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처음 부모님께 동성인 '쥰'을 사랑한다 말했을 때, 가족을 포함한 모두에게 이상한 취급을 받았던 그녀는,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경험을 맛보아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쥰과 헤어진 그날의 기억이 깊은 상처가 되어, 평생동안 그녀를 괴롭혔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버린 채, 20년간 살아온 그녀에게 편지가 한 통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때의 상처를 마주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한시도 잊은 적 없었던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윤희는 겨우내 눈이 내리는 마을 '오타루'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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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배경보다 한없이 차갑고 생기 없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보고 있는 사람까지도 가슴을 시리게 만든다. 그런 그녀에게 따뜻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편지 한 통이 새봄에게 전해지면서부터 였다. 아마도, 감독은 일부러 딸의 이름을 '새봄'이라 짓지 않았을까. 언제나 추운 겨울 뒤에 따뜻한 봄이 찾아오니까. 차갑고 쓸쓸한 윤희의 삶에도 따뜻한 온기가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이 '새봄'에 담겨있는 것 같다.

 

이처럼, 영화 속에는 문학 작품처럼 다양한 은유적 표현들이 등장한다. 어둡고 칙칙한 윤희의 집 앞 골목에서, 온통 새하얀 눈으로 가득한 오타루의 거리. 점차 준과 가까워지면서 생기를 되찾아가는 그녀의 얼굴을 비춘다. 그리고 힘없이 방황하며 길을 걷는 윤희의 옆으로, 언제나 목적지가 분명한 기차가 힘차게 지나간다.

 

장면이 바뀌면서 홋카이도의 기차를 타고 오타루로 향하는 윤희와 새봄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윤희에게 조금씩 온기를 더한다. 또한, 영화 내에 자주 등장하는 달과 눈을 통해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 또한 자연의 이치처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것 같다.

 



마사코 : 눈은 언제쯤 그치려나 -

쥰 : 고모, 왜 그런 쓸데없는 말을 해? 여기서 산 지 몇 년째인데, 눈 그치려면 멀었잖아

마사코 : 막막하니까. 일종의 주문이랄까? 눈이 와서 눈을 치우면, 또 눈이 오고, 치우면 또 눈이 오고. 자연 앞에선 무력해지는 수밖에 없다니까?

...

 



초승달 다음에는 보름달이 오고, 겨울에 눈이 내리는 걸 사람이 막을 수 없듯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 또한 자연의 이치처럼 막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 당연한 마음을 이상한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현실이 어떻게 한 사람을 망가트릴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당연한 마음이 누군가에겐 자신의 정체성이자 삶 그 자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담담하고 따뜻하게 보여주고 있다.


용기를 내서 오타루로 떠난 윤희, 그녀는 무사히 쥰을 만날 수 있을까. 20년 만에 윤희를 만나게 된다면, 쥰은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할까. 윤희와 쥰의 애틋한 사랑을 아름답게 담아낸 영화. 차가운 겨울을 배경으로 그리움이라는 쓸쓸한 감정을 무엇보다 따뜻하게 표현한 영화. 상처 입은 한 사람이 잃어버린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영화 『윤희에게』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겨울을 보내며, 이 영화와 함께 새봄을 맞이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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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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