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빈의 비밀스런 다락방 [공간]

<빈 미술사 박물관 > 편안함의 미학
글 입력 2021.02.22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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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의 뜻에는 적절치 않지만, 이 속담을 들을 때마다 머릿 속을 스치는 도시가 하나있다. 빈. 이 도시가 위치한 오스트리아라는 나라는 늘 오스트레일리아로 오인되기 일쑤이지만, 빈은 그 이름만으로 와본 적도 없는 사람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요상한 도시이다. 우습게도 빈(Wien)이라는 본래의 이름보다 비엔나(Vienna)라는 영어식 이름으로 더 유명한 도시. 이름을 잃어버린 그 곳에는 내가 숨겨둔 오래된 다락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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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에는 알베르티나, 벨베데레 궁전, 레오폴드 뮤지엄, 응용미술 박물관 등 유럽의 느낌을 물씬 풍기는 다양한 미술관이 존재하지만, 그 중 한 곳을 뽑으라면 단연 미술사 박물관이다. 이곳은 1891년에 설립되었으며, 피터 브뤼겔의 주요작 12점을 소장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U3를 타고 Volkstheater역에서 내리면 멀지 않은 곳에서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건축물을 찾을 수 있는데, 바로 빈 미술사 박물관(Wien Kunsthistorishes Museum)이다. 맞은 편에는 거울로 비춘 듯 대칭으로 위치한 자연사박물관이 있다. 두 건축물은 모두 “카이저포럼(Kaiserforum)”이라는 미완성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건설되었으며, 미술사 박물관의 경우 1891년에 개장하여 130여 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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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빈 미술사 박물관에 방문할 때마다 눈을 떼지 못했던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이탈리아 화가 루카 조르다노의 <반란을 일으킨 천사들의 추락(The Fall of the Rebel Angels)>이라는 작품으로, 늘 나의 발걸음을 1층 전시실로 향하게 만든 동인이였다. 캔버스 상단에서 루시퍼의 가슴을 살포시 딛고 있는 우아한 미카엘의 자태는 말할 것도 없고, 하단에 자리한 가지각색의 악마들은 대천사가 살고 있는 천상의 세계와 완벽한 대조를 이룬다. 나는 특히 우측 하단에 위치한 악마에게 시선이 갔는데, 귀를 막고 괴로운 표정을 한 그 생명체는 마치 그 '공간'에서 벗어나, 평화로운 우리의 세계로 넘어오고 싶다고 관람자에게 말을 거는 듯 했다.

 

악마에게 홀린 탓인지, 나는 악마가 욕망하는 이 공간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하기 시작했다. 원체 박물관이나 미술관이라는 공간을 사랑하기도 했지만, 빈에 위치한 다른 미술관과는 다르게 나를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다.

 

공간이 주는 느낌은 참으로 신비롭다. 출근길 만원의 지하철을 타면 누구와 함께이든 숨이 턱하고 막히듯이, 아무리 상쾌한 척 해보려해도 지하실의 꿉꿉한 습기가 모든 활기를 죽이듯이, 완벽한 공간이란 사람과 나, 그리고 공간의 삼박자가 완벽히 맞아떨어져야만한다. 어쩌면 미술사 박물관은 내게 그런 완벽함을 대변하는 장소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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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규모와 고전적인 건물이 지닌 안락함 때문인지, 관광객 뿐 아니라 현지인들이 편하게 방문하는 곳이라는 점은 눈여겨 볼만하다. 부산스럽기보다 정돈된 분위기로 인해서 들떴던 마음도 금세 차분해진다. 이 공간은 유학생으로서 눈에 띄는 외모를 가진 내가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몇 안되는 공간이기도 했다. 박물관의 매력적인 점이 바로 그것이 아닌가 싶다. 대부분에 상황에서 우리는 언제나 타인과 섞여들어야하고, 타인에게 관심 가져야할 것만 같은 부담감에 시달린다. 그러나 박물관이라는 공간은 유물이나 작품에 대한 호기심으로 방문하는 공간이기에, 우리는 잠시나마 이러한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비로소 죄책감 없이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류의 침잠은 도서관에서 독서를 할 때에나 맛볼 수 있는 것이었으나, 미술관이라는 공간에서 이제 비로소 사람로부터 멀어지지 않고도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가능성을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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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면 개장 시간 전부터 학생무리가 박물관 앞에 길게 늘어서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상대적으로 평일 늦은 오후에는 사람들이 적은데, 그럴 때면 전시실 내부에 있는 소파에 앉아서 카페에 온 듯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커플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십대부터 장년층까지 그야말로 남녀노소 불구하고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전시실로 모여든다. 미술관 내부 1층에는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넓직한 카페가 있지만, 왠일인지 사람들은 하나같이 전시실로 모여들어, 때로는 그곳을 거닐면서, 때로는 그림 앞에 우두커니 서서 삶의 파편들을 공유한다.

 

나는 단순히 카페에서 음료값을 지불해야하기 때문에, 그들이 전시실에서 어슬렁거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시실에는 카페처럼 구획이 나누어진 테이블 대신에 나의 말소리가 옆사람의 발소리와 쉽게 섞인다. 나의 뒷모습은 저 멀리 떨어진 관람객의 시야를 방해하고, 저 앞쪽에는 내 시야를 방해하는 또다른 관람객이있다. 그는 거북이처럼 스멀스멀 움직이다가, 조심스레 내 쪽을 흘깃 돌아보더니 잽싼 걸음으로 옆으로 물러나 내 시야를 열어준다. 전시실이라는 공간은 이런 공간이다. 서로 상호작용하며, 무언의 소통이 오가는 곳. 사람들은 전시실에 소통을 하러 방문한다. 그것이 동행과의 작은 속삭임이든, 처음보는 이와의 어색한 장단 맞추기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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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로 “박물관”이라는 단어가 종종 “산책하다”라는 의미의 동사인 “spazieren”과 함께 쓰인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분위기가 꽤 편안하고 자유롭다는 것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한국어로 “박물관을 거닐었다”라는 말이 여전히 그리 자연스럽지 않은 것을 보면, 한국 박물관을 향한 편견에 휩싸인 나 자신이든, 아직 나의 편견을 깨뜨리지 못한 대한민국의 박물관이든 앞으로 열심히 나아가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김은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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