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의 영역'이란 작가의 기획

박경진 개인전 <색, 공간> 리뷰
글 입력 2021.02.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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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시 관람하는 것을 즐긴다. 부전공이 미대여서 영감을 얻기 위한 목적도 있겠지만, 작품을 감상하는 것만큼이나 전시 팜플렛을 읽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전시 팜플렛에는 전시를 기획한 의도, 작가의 프로필, 미술 전문가의 비평문 등이 담겨있다. 여기서 내가 가장 주의 깊게 읽는 부분은 전시를 왜 기획했는가이다. 개인전 같은 경우 큐레이터의 기획보단 단순히 작품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냐고 혹자는 말할 수 있겠지만, 그가 말하는 ‘나열’ 또한 최적의 작품 배치, 동선 등을 고려한 기획이 들어간 결과물이다.

그러나 내가 더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이러한 큐레이터의 기획보다 작가의 작품 기획이다. 거저 만들어지는 작품은 없다. 작품 자체가 작가가 끊임없이 생각하고 기획하여 만든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전시회란 큐레이터는 물론이고 작가의 기획물이라 볼 수 있다.

올해 1월에 내가 방문했던 박경진 개인전 <색, 공간>은 작가의 기획이 돋보였던 전시였다. 작품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작가의 생각을 읽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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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현(再現)이 아닌 재연(再演)으로 바라보기. 이것이 작가의 의도이다. 재현과 재연의 차이는 무엇일까? 국어사전으로는 둘의 차이를 확실하게 느낄 수 없어 한자를 찾아보았다. 재연(再演)의 演은 ‘연극’을 표현할 때 쓰는 한자인데, 연극을 상상하자 재연이란 '한 번 행했던 행위나 일을 다시 펼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회화가 외부의 사물이나 관념을 '재현'한다고 생각한다. 캔버스 위의 그림이 어떤 것을 재현한다면, 그림보다 더 똑같이 찍어내는 사진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한다면 회화의 존재가치는 없어져 버린다.

그러나 박경진 작가는 이 전시를 통해 회화란 단순히 모방의 매개체가 아니라 극장과도 같으며, 캔버스 위에서 펼쳐지는 연극이라고 작품을 통해 자신의 암시를 전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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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1층에서의 작품은 대부분 누군가의 노동 현장을 다루었다. 페인트칠을 하기도 하고, 빗자루로 바닥을 쓸거나, 용접기로 물건을 수리하는 등의 일상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평범한 일상이어도 이를 배우들이 연극을 통해 예술로 승화시키듯, 박경진 작가는 노동의 숭고함을 캔버스라는 연극장에서 재연하여 회화를 연극처럼 생동감 넘치는 장르로 탈바꿈해 놓았다.


마치 말이 없어도 노래가 되는 무언가(無言歌)처럼, 숨결과 땀방울이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그림 또한 얼마든지 연극을 행할 수 있다고 말하는 신선한 ‘기획’이었다.

전시장 2층으로 올라가자 아래층과는 달리 전시장 자체만 볼 수 있었다. 2층 전체에는 스프레이, 붓질이 가득했다. 즉, 전체 공간 그 자체를 캔버스로 사용하여 회화를 완성하는 것이다. 퍼포먼스나 조각 같은 경우 작품과 공간이 유기적인 관계를 맺는 ‘장소 특정적 미술’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회화의 영역까지 이 개념을 확장하는 것은 자주 볼 수 없었던 전시였다.

비록 이 전시는 1월에 끝이 났지만, 회화의 개념을 연극과도 같이 넓히고 캔버스라는 좁은 사물에서 해방시켰다는 점에서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다. 미래의 작가가 될 사람들은 물론이고, 동시대의 예술작품과 더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관람할 때 회화를 단순히 ‘그림’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 개념으로 접근하면 조금 더 다가가기 쉬운 현대미술이 될 것이라고.
 
 
[김현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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