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는 살인청부업자를 고용했다'(1990) 속 우연과 아이러니 [영화]

글 입력 2021.02.20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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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는 활기를 가져다준다.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 겹겹이 쌓인 우연이 만들어낸 아이러니는 나 자신을 배신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수많은 타인들과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필연적인 결과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세상이라는 명백한 사실은  오히려 삶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데서 오는 삶의 생동감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우리는 삶을 계속 이어 나가게 된다.

 

영화 속 주인공인 앙리(장 피에르 레오)는 어느 날 해고된다. 죽고자 결심했더니 아이러니하게 자신이 뜻하지 않은 상황들이 연쇄로 일어나고, 이를 통해 삶의 활기를 되찾는다. 영화 초반부, 앙리는 다수에서 배제된 개인으로 묘사된다. 회사 점심시간에도 혼자 점심을 해결하고 그의 옆 테이블에 자리한  동료들은 그런 앙리를 개의치 않는다. 집으로 오는 지하철에서도 앙리는 신문을 읽거나 대화를 나누고 있는 다수와 달리 소외되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렇듯 건조한 삶을 유지해가던 앙리가 자신의 죽음을 살인청부업자에게 부탁하면서 돌연 그의 감정에는 긴장이 생긴다. 죽음은 건조하기만 했던 앙리의 삶에서 아주 강렬한 사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앙리는 그러한 자신의 생경한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 펍으로 간다. 죽을 수도 있다는 자극이 앙리에게 낯선 흥분을 가져다주고 이 감정의 작은 소용돌이는 앙리가 마가렛을 만나면서 사랑으로 변모한다. 죽고 싶었던 감정이 앙리에게 뜻밖의 용기와 활기를 갖다 준 것이다. 이제 앙리는 사랑하고자 하기 때문에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영화 속 아이러니를 부축하고 있는 것은 우연적인 사건들의 연쇄다. 아이러니가 ‘죽고자 했더니 살고 싶어진’ 결과적 상황으로 말할 수 있다면 우연은 아이러니로 향하는 과정의 일부가 되어 아이러니를 발전시키고 지속시킨다. 앙리가 가스레인지에 얼굴을 들이밀어 자살을 기도하는 그날 가스회사가 파업을 하는 우연은 죽고 싶어 했던 앙리가 다시금 살아남게 만들며 살인청부라는 다른 선택을 하게 만든다. 살인청부업자가 자신의 뒤를 쫓는다고 생각하자 앙리는 펍으로 향해 하지 않던 행동을 하게 되고 그곳에서 우연히 마가렛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렇게 아이러니가 발전된다. 살고 싶어진 앙리가 청부살인을 취소하러 가지만 호놀룰루 바가 있던 건물은 무너져 내린 상태다. 이러한 우연은 아이러니를 계속 유지시키며 후반부에 앙리가 우연히 펍에서 살인청부업자들과 조우해 따라가다가 보석상을 턴 용의자로 몰리는 결과를 낳는다. 우연의 연쇄는 앙리를 계속 쫓기는 상황에 놓이게 만들어 오히려 삶에 대한 갈망을 더 자극하는 역할을 한다. 마지막, 앙리와 살인청부업자가 만나는 순간 또한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이미 암 선고를 받은 시한부의 살인청부업자가 자신을 죽이는 비관적 선택을 해 앙리는 살아남는다. 영화는 우연에 발을 딛고 벌어지는 아이러니를 보여주며 실질적인 삶의 윤활제가 되어가는 모습을 자세히 묘사해나간다.

 

‘우리의 삶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세계 속에 속해있다’는 소설가 폴 오스터의 말은 삶이 아이러니하게 엮일 수밖에 없음을 얘기한다. 세계는 나와 수없이 많은 타인이 섞인 공간이기 때문에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범위의 것들이 우연으로 찾아오고, 수많은 확률들이 섞여 뜻하지 않은 아이러니를 만들어낸다. 영화가 마지막 쇼트를 앙리와 마가렛이 아닌 햄버거 가게 사장인 빅에게 할애하는 것도 그러한 맥락일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자리하는 빅의 쇼트는 타인의 존재를 통해 삶의 우연과 아이러니가 지속되고 있음을 짐작하게 만든다.

 

 

[김소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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